[전민용의 북카페 -46]나쁜 뇌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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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46]나쁜 뇌를 써라
  • 전민용
  • 승인 2011.10.1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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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화, 위즈덤하우스

 

미국의 초등생 프랭크는 ‘멍때리고’ 있다가 무아지경에 빠지면 누가 크게 불러야 제 정신으로 돌아오곤 했다. 샘은 안정부절 못하고 뭔가 계속 중얼거렸고, 버지니아도 계속 떠들어댔다. 토머스는 너무 설쳐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닉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버릇이 심각했다. 로버트는 너무 자주 공상에 잠겨 학교에서 쫓겨나기 까지 했다.

로버트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이고, 프랭크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작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샘은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버지니아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토머스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닉은 전기 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이다. 이 밖에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디킨슨, 버나드 쇼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주의력 결핍 장애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잉행동과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과잉행동이 없으면 주의력결핍장애(ADD)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집중도가 떨어지므로 학력부진 아동과 문제 아동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사실 주의력 ‘결핍’ 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오히려 주의력을 조절하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주의력 조절은 필요하고 중요한 자극에만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이다. 주의력결핍장애자들은 주위의 사소한 것들에도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한 곳에 집중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주의력의 결핍이 아닌 과잉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평범한 일에는 주의력 결핍을 보여 산만하지만 흥미로운 일을 만나면 과도하게 집중하기도 한다.

인간은 ‘잠재억제(latent inhibition)'기능을 가지고 있다. 새롭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자극을 무시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 기능이 없으면 세상 모든 자극에 일일이 새롭게 반응하느라 두뇌는 금방 지칠 것이다. 반면 우리 뇌는 이 기능 때문에 여러 자극에 금방 지루해 하고 식상해하기도 한다. 이 잠재억제 기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억제 기능이 강한 사람은 웬만한 자극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 기능이 약한 사람은 여러 번 본 것도 신선하게 느끼고 감동한다. 산만한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이 기능이 감소되어 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따분하게 생각하고 놓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신선한 느낌과 열린 마음을 갖는다. 이런 개방성과 민감성이 주의력결핍장애와 창조적 성향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물론 산만하다고 다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잠재억제기능이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마음속에 가득 찬 잡음들 속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찾아낼 수 있는 분석 능력이 맞물려야 한다. 어쨌든 주의력결핍장애는 주의 깊게 관찰되고 보살핌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산만한 아동이 곧 창의적인 아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아동의 잠재적인 창의성이 묻힌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있다. 농구 경기를 보면서 패스 하는 수를 세게 하면서 중간에 고릴라 복장의 사람을 지나가게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고릴라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실험이다. 여러 실험들로 확인된 ‘부주의맹’이나 ‘변화맹’의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눈앞의 사물이 네 개 이하일 때는 사물들을 잘 기억했다. 시각정보를 단기기억에 잡아두는 곳이 뇌의 두정엽인데 네 개가 넘어가면 포화상태가 되어 기억하기 어렵게 된다. 즉 부주의맹이나 변화맹은 인간의 뇌로선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실수나 오류를 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고릴라를 보지 못하면 부주의한 것일까? 농구공이나 고릴라 중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에 부주의해지기 쉽다.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하려면 주위의 소음에 부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주의와 부주의가 아니라 ‘선택적 주의’가 중요하다. 유명 명상가들이 명상을 할 때도 특정 뇌 부위의 기능이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의 뇌기능이 차단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실수를 줄이려면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무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부주의하고 산만한 뇌가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보통 우리는 멍하게 다른 생각에 빠질 때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멍하니 다른 생각할 때 전두엽의 실행조절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 이곳은 장기적인 중요한 목표를 향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뇌다. 또한 ‘디폴트 네트워크’라는 곳도 활성화되었는데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고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는 자기성찰적 사고를 할 때 작동하는 곳이다. 멍할 때 우리 뇌는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할 때 풀리지 않았던 난제가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를 때도 있다.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을 때는 잠시 떠나 있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이상은 “산만함은 과연 쓸모없는 뇌 기능일까?”라는 질문이 달린 집중과 산만함의 균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의 내용들이다.         
신경과 의사인 저자는 심한 언어장애와 마비 증세를 가진 뇌졸중환자가 질병 이후에 더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계획했다고 한다. 산만함은 쓸모없는 기능인가? 자기합리화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일까? 기억의 왜곡은 부정적인가? 기억은 좋은 것이고 망각은 나쁜가? 감정적인 결정은 잘못인가? 중독과 몰입은 어떻게 다를까? 병든 뇌는 불행한 것인가? 이 질문들 속에 이미 이 책의 답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인간이 실수하고, 산만하고, 합리화하고, 왜곡하고, 망각하고, 감정적이고, 냉정하고, 중독되기 쉬운 이유가 우리 뇌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나쁜 뇌’의 이면에는 긍정성과 창조성 같은 좋은 면이 숨어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저자는 좋은 뇌와 나쁜 뇌로 단순히 규정할 수 없는 우리 뇌의 양면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뇌와 연관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이미 알려진 연구와 새로운 연구들이 방대하게 언급되고 있다. 다소 전문적인 내용도 많지만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고 삶의 태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예컨대 금연이 어려운 분도 이 책의 ‘중독’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 메커니즘과 해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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