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류여행기] 융가이, 양가누꼬호수, 카라스
상태바
[박종순의 페류여행기] 융가이, 양가누꼬호수, 카라스
  • 박종순
  • 승인 2005.02.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하얀 그리스도상 아래 아파트식 납골당
1970년 5월 31일 ‘불의 전차’라 불리는 강도 7.7의 강진이 페루를 습격했다. 그로 인해 중앙 페루 지역에서 7만 5천 명 정도가 죽었다는데, 와라스는 당시 3만 인구 중 절반이 죽고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이 와라스 북쪽에 있는 융가이라는 마을이다.

▲ 깜뽀 산또 융가이
당시 1만 8천여 주민 중 겨우 100여명만 살아남고 모두 마을과 함께 묻혀 버렸는데, 이렇게 피해가 컸던 이유는 마을 옆에 위치한 페루 최고봉 우아스카란에 쌓여 있던 눈과 얼음이 녹아 화산재와 섞여 흘러내리는 라하르(lahar)의 위력 때문이라 한다. 14km 떨어진 마을까지 겨우 3∼4분 만에 엄청난 양이 들이닥쳐, 미처 대비할 사이도 없이 그야말로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목숨이 파묻혔다.

지금 이 융가이라는 마을은 옮겨져 새로운 곳에 있고, 마을이 있던 자리는 깜뽀 산또(Campo Santo)라 하여 일종의 공동묘지가 형성되어있다. 마치 당시의 아픈 상처를 감추려는 듯 전체적으로 꽃과 나무를 심어 놓아 마치 큰 정원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곳곳에 감추지 못한 흔적은 남아 있었다.

▲ 무너진 건물의 흔적들
무참하게 일그러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버스며, 간간이 보이는 당시 건물들이 무참히 부서진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옛 마을의 아르마스 광장에는 까데드랄(대성당)의 뾰족탑이 세워져있고, 당시 성당의 제단이라고 마을사람이 알려주는데 그냥 넓적한 큰 바위일 뿐이었다.

또한 둥근 동산 같은 곳에는 하얀 그리스도상 아래 당시 죽은 영혼들이 마치 아파트식 납골당처럼 한곳에 모여 잠들어 있다. 하얀 그리스도상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우아스카란을 바라보고 있는데, 죽은 영혼을 위로하며 다 내게로 오라하는 듯하기도 하고 원망스레 우아스카란을 바라보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아스카란은 가득 낀 두꺼운 구름에 숨어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 구름에 가려진 우아스카란
각각의 납골당에는 지금도 꽃들이 바쳐지고 있으며 정성스레 꾸며놓은 모습들도 보여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등뼈를 형성하는 안데스 산맥은 지질학에서 이야기하는 판구조론에 따르면 서쪽으로 움직이는 남아메리카판과 동쪽으로 움직이는 나스카판이라는 바다 밑 대륙이 부딪치면서 지표면이 솟아올라 생긴 것으로, 이 충돌현상은 아직까지도 매년 9~15cm씩 진행되고 있다 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며 안데스 산맥은 지금도 조금씩 키가 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간 아레끼빠 지역에도 화산들이 많이 있는데, 잉카시절에는 그 화산 꼭대기에 인간제물을 바쳐 화산폭발을 막아보려 했다 한다.

밤 버스로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만 정하고 바로 투어버스에 올랐는데, 다음 일정은 우아스카란 아래 아름다운 호수 양가누꼬(Lagunas Llanganuco)였다.

우리에게 자연은 감당할 수 없는 재해를 주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나보다.

양가누꼬 호수는 우아스카란(6768m 께추아 어로 채찍이라는 뜻)과 우안도이(6395m), 초피깔꾸이(6354m), 차크라라쥬(6112m), 삐스꼬(5752m)를 비롯한 큰 산들로 둘러싸인 호수로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색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늘이 가까워서인지 햇빛이 비칠 때면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을 한없이 보이다가도 금방 변덕스레 구름이 끼면 옥색의 깊은 물색은 또다른 느낌을 주고, 한없이 맑은 투명한 느낌은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에도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부터 하얀산맥을 둘러보는 트랙킹 코스가 있는데, 보통 4~5일 정도 걸리는 코스라 아쉬움을 접어야했다. 이곳 말고도 와라스 지역에는 많은 트랙킹 코스가 있어 다음에는 트랙킹만을 위해 꼭 다시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호수에는 보트가 있어 호수 한가운데 부분까지 타고 갔다 왔는데, 차가운 바람이 어찌나 센지 내리자마자 따뜻한 꼬까차를 찾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끝내 우아스카란은 그 영봉의 모습을 구름에 감춘 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카라스라는 작고 조용한 산골 마을에 들렀는데, 그곳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굴렁쇠 놀이도 하고 모습도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카라스는 작고 매력적인 아르마스 광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중에 하나라는 알파마요를 등반하기 위해 또 양가누꼬 산타 크루즈 트랙킹을 떠나기 위해 또 파또 계곡으로 떠나기 위해 많은 산악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융가이의 슬픈 영혼들을 위해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리엘 라미레즈의 미사 크리올라 중 키리에를 쌈바 뀌삘도르의 노래로 들어본다.

1963년 바티칸 공의회가 카톨릭 미사에서 라틴어 외 다른 언어로도 미사곡을 쓸 수 있게 결정함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아리엘 라미레즈(Ariel Ramirez)는 카스틸랴어(라틴아메리카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를 텍스트로 하고 라틴아메리카의 민속음악 양식을 차용해 독특한 미사곡을 만들었다.

'크리올라'란 남미 지역에 사는 스페인계 혼혈인으로 이들은 토속적인 원주민의 풍습에 스페인의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음악적 특색이 이 곡에 잘 나타나 있다.

미사 크리올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어머니라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를 비롯해 세계 3대 성악가라는 호세 카레라스, 아르헨티나 그룹 로스 칼차키스, 쌈바 뀌삘도르의 음반이 있는데 아무래도 원주민의 정취가 가득 풍기는 쌈바 뀌삘도르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농민이자 가수였던 아버지로부터 민속음악이 갖춰야 할 깊은 지혜와 진정한 표현을 물려받았다는데, 독특한 깊이 있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박종순(서울 인치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