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믿음의 오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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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믿음의 오류들
  • 김광수
  • 승인 2011.10.26 12:21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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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김광수 논설위원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너무도 익숙히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이나라 정치가 국민들 마음에 따라서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가 잘 알고 있다. 그럼 누구 맘대로 되는가? 재벌 맘대로 되고, 일부 보수언론 맘대로 되고, 또 집권여당의 일부 계파 맘대로 되고, 군 권력자 맘대로 되고, 또 외세의 맘대로 된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렇게 되니 정치가 국민 맘대로 안 되는 것은 왕정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민주주의, 특히 대통령제 나라는 권력이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왕정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건 정치학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도 우린 국민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이제 민주주의가 되어서 좋고, 과거 이조시대나 고려시대의 왕조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했던가”, 혹은 “이조시대의 정치란 얼마나 끔찍했던가”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당시 천구백육십년대의 지극한 상식이 이제는 대단히 오류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지극히 당연한 듯한 믿음이라도 전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 우리는 어린 시절에 자유연애란 지극히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혹은 닥터지바고, 혹은 러브스토리나, 로미오와 주리엣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유연애와 그에 따른 결혼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단지 백년전만해도 중매라는 것에 따라서 여자를 보지도 못하고 시집 장가를 갔던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야만적이었으며, 그 당시 젊은이들은 얼마나 끔찍하게 불행했던가라는 생각을 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또 우리 선생님들은 잘도 그런 생각들을 우리들에게 주입시켰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중매에 따라서 시집 장가를 가도 잘만 살았고, 또 요즘 젊은 것들이 연애하고 이혼하는 광경들을 보면, 부모네들이 맺어주는 결혼이 연애결혼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문제가 적고, 검증이 철저히 된 것이라는 생각에 점차 경도되어 가고 있다.

연애결혼이란 것이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 영 경박하기 짝이 없고 툭하면 쌈질이나 하고 이혼이나 해 대는 것도 연애질이라는 충동적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그것이 부모네들을 통한 양가의 검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실패할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도 인생 육십을 거의 살아보고 나서 얻은 결론일 터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네들이 맺어주는 중매라고 하는 수 천년 내려왔던 합리적인 결혼제도를 끔찍한 야만적인 풍습으로 생각했던 저 육십년대의 우리들이야말로 얼마나 반지성적이었던가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과외를 하고, 처절한 입시 경쟁을 치르기 위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생활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이유는 바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왜인가? 좋은 데 취직하거나 혹은 좋은 직업을 얻거나 출세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취직자리란 무엇인가? 결국 돈 잘 버는 높은 지위의 자리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가? 그건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자리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사업을 하는 것도 결국은 돈을 잘 벌기 위해서이다. 치과의사가 되는 것도 결국은 좋은 수입을 얻기 위해서이다. 치과의사 그 자체가 좋아서 한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과의사 수입이 (보람은 있지만 고생만 되는) 유치원 보모의 수입만도 못하다고 한다면 전교에서 일등하는 아이들이 그토록 치과대학에 많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노력하는 것의 대부분은 돈을 잘 벌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우받는다.

혹자는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라는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이것이 변명이나 핑계로만 들린다. 인간에게는 가치라는 것이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소중한 것들이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하고 파괴하며 인간을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고, 돈의 노예로 만들고, 생산품을 팔기위한 소비시장으로만 만들고, 돈벌이를 위한 줄 세우기 경쟁으로 만들고,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으로 인간을 세뇌시킨다. 사람들은 이런 사회에서 살면서, 이런 사회에서 경쟁하면서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핑계하고 그렇고 그런 자본의 노예로 살아간다. 우리는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과감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돈에 의한 노예적인 생활을 분연히 거부할 수 없는 것일까.

마치 민주주의가 알고 보니 왕정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마치 중매결혼이란 끔찍했을 것이라는 과거의 상식이 지극히 오류였다는 자각이 드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자본주의라는 제도도, 출세라는 방식도 지극히 특수한,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각은 들 수는 없는 것일까?

10년 전쯤인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은 어느나라 국민인가” 라는 조사에서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부탄이라는 나라 국민이라는 조사가 있었다. 해마다 홍수를 겪고 콜레라를 겪는 찢어지게 가난한 방글라데시 국민도 상당히 행복하다는 조사도 있다. 반면에 국민소득이 높다는 미국이나 북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 자살이 많다는 통계도 있다. 많은 동남아시아 나라에서 돈벌러 들어오는 우리나라는 과연 또 얼마나 행복한 나라인가 말이다. 초등학생 자살률로만 따지면 우리나라가 세계 일위라고 한다.

그 나라 부탄의 젊은 국왕은 인간을 성장과 경쟁으로만 내모는 자본주의 경제는 결코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없고, 지옥과 같은 고통만을 줄 뿐이라고 하며, 인간의 행복은 결코 국민총생산(GNP)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iness)으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몰아내야 한다는 “행복경제학”의 반자본주의 선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해를 뼛속깊이 느끼는 많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이러한 사상은 많이 발전하였다.

지난번 글에서 썼던 강수돌 교수나, 앙드레 고르의 글들, 그리고 슬로라이프의 주창자인 쓰다 신이치, 혹은 도법스님의 인다라망 같은 농촌공동체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본주의도 어디까지나 매우 특수한(그리고 매우 이상한) 경제제도의 하나일 뿐임을 밝힌 위대한 경제인류학자 카알 뽈라니도 있다.
 

인간을 생산과 소비의 노예로 만들고, 물질의 노예로 만드는 지금의 제도는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이라는 괴물은 국경을 넘어,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서 새로운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 악마와 같은 자본이라는 것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얼마나 많은 아마존의 삼림이 파괴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부모 형제를 잃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말이다. 그것이 자본 자유화의 실상이고 무역 자유화의 실상이다. 우리가 FTA를 반대하고, 월가를 반대하고, 리만브라더스를 반대하고, 금융 자유화를 반대하고, 금융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IMF체제를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광수(본지 논설위원, 한양여자대학 치위생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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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호 2011-11-12 10:54:28
뒤늦게 보았지만 좋은 글입니다

이금호 2011-11-12 10:54:22
뒤늦게 보았지만 좋은 글입니다

안세연 2011-11-01 13:20:44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인간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정승화 2011-11-01 09:30: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삶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노래가 있죠..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지위 과연 그런것들에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두려운 맘도 없지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을 뿐인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정승화 2011-11-01 09:30:2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삶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노래가 있죠..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지위 과연 그런것들에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두려운 맘도 없지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을 뿐인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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