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47]미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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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47]미국의 몰락(?)
  • 전민용
  • 승인 2011.11.0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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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 김광기, 동아시아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놓고 연일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 처음 추진할 때도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때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시장만능주의와 금융자본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대로 FTA를 추진하는 한국과 미국의 권력자들은 이 역사적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이식하는 내용이 많다. 경제주권을 빼앗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 책은 2008년 경제 위기를 전후로 미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몰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몰락하고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그 시스템을 따라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에 살던 한국인들에게 유행하던 관용어구가 있었다. 사는 환경이 정말 좋아 천국 같지만 토종 한국인이라면 살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의미에서 미국을 ‘살고 싶지 않은 천국’이라 부르고, 한국은 지옥 같지만 살기에는 재미있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살고 싶은 지옥’이라 했단다. 그런 미국이 요즘 ‘살고 싶지 않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2010년 8월 CNN뉴스에 나온 사건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트 시 인근의 작은 도시 이스트포인트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포하는데 전체 인구의 2/3가 넘는 3만 명이 몰려들어 62명이 부상당하고 20명이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입주담청권도 아니고 신청서에 불과한데도 이것을 손에 쥔 한 시민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유는 집에서 쫓겨났거나 곧 쫓겨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고에 따르면 2009년 미국 전체의 노숙자 수는 156만 명이고 미국인 200명 중 1 명이  노숙인이다. 네바다주는 인구의 1%가 노숙자이고 오리건, 하와이, 캘리포니아, 워싱턴 주가 뒤를 잇는다. 이들은 친척집, 모텔, 자동차, 텐트를 전전한다. 야영장 외에 텐트는 불법이라 경찰과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골치 아픈 주정부는 편도항공권을 주고 노숙자를 쫓아내는 노숙자 떠넘기기를 하는데 같은 미국 내에서 미봉책일 뿐이다.

정원을 잘 꾸미고 미관상 빨래도 마당에 널지 않는 미국에서 고기와 달걀을 위해 닭을 키우는 집이 늘고 있다. 시골 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간이 닭장을 만들어 닭을 키우는 가구가 미국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병아리 부화 회사는 사상 최대 판매고를 갱신하고 있다. 닭들이 울어대는 소음에 민원도 커져 LA 시의회에서는 2009년 9월 집에서 키우는 수탉을 한 마리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단다. 같은 맥락에서 육류보다 값이 싼 스팸의 매출도 엄청 늘었다고 한다. 육식의 나라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시민들이 택하고 있는 대안 현상들이다.

처절한 경제 침체에 따른 높은 청년 실업률도 큰 문제이다. 한 일간지는 청년실업률이 54.4%로 2차대전 후 최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에 영어강사로 오는 것도 대박이라고 한다. 한 달에 2000달러를 받고 숙식과 항공편이 제공되는 것이 아주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이를 마다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류대학 출신들이 저소득층 교육 봉사 활동(Teach For America)에 많이 몰려든다며 모범사례처럼 한국의 언론이 다룬 적이 있는데 속사정을 한참 모르면서 한 보도라고 한다. 연봉 3만 5천 달러의 2년짜리 교육봉사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거의 1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은 인구의 60%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중산층이 두꺼운 나라였다. 기회의 나라, 아메리칸 드림의 근거였다. 하지만 지금 중산층이 소멸하고 있다. 미국 전체 기업 주식의 83%를 상위 1%가 독점하고 있다. 하위 50%의 미국인들이 미국 전체 부의 1% 미만을 소유하고 있다. 2009년 미국인의 61%가 ‘항상 또는 늘’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고 있다. 2011년도에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식량지원프로그램의 최후 전선인 푸드스템프 수령자라고 한다.

미국의 교도소는 포화상태이다. 그런데 주정부가 돈이 없다보니 교도소 확충은 못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이지도 않고 형기를 마치기 전에 방면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 위기의 최대 수혜자는 죄수들이고 법은 실종되고 일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FY2011(2010.7-2011.6)의 주정부들의 총 재정적자는 5000억 달러(약 600조원)에 달한다. 한 예로 일리노이 주정부는 2000개의 양로원, 장애인 복지시설 지원금이 110억 달러나 밀려 있고, 주 의원들은 주정부가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나고 있고, 경찰은 연료를 넣지 못해 순찰을 돌지 못하고 있다.

주정부들의 긴축재정의 최대 희생양은 공립학교이다. 공립학교 재정의 44%를 차지하는 주정부의 지원이 대폭 줄자 학교들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교사들이 대량 해고되면서 과거 한 반의 정원이 15-20명 이던 것이 30명을 넘겼고, 단축수업으로 주 4일 등교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냉난방비나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하는 곳들도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역시 2000년대 들어 급증하면서 2011년 14조 달러를 넘어서며 GDP 100%에 맞먹게 되었다. 이자 갚기도 막막해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간 더해질 나라 빚 9조 달러 중 절반 이상이 이자라고 한다.

미국의 경제가 위기인 것은 분명한데 저자가 보기에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정직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렌터카에 기름 대신 물을 채워 반납하거나 여분의 바퀴를 훔치는 등 도덕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딸기잼이나 땅콩버터는 우리의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 중요한 식품이다. 2009년 살모넬라에 오염된 땅콩버터가 많이 유통되어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땅콩가공업체에서 월급을 받는 검사원이 허위보고서를 작성해줘서 생긴 사건이다. USA투데이는 2010년 식품의약국과 기내식을 제공하는 업체들의 주방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기겁을 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주요 기내식 공급업체 주방에서 음식을 알맞은 온도에서 보관하지 않고 청결한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위생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 바퀴벌레, 쥐, 파리 등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미국에는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소들도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도 많이 유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할 때 당연히 가격이 비싼 양질의 쇠고기를 수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언론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에 농약과 항생물질, 중금속 등이 다량 함유되었다고 한다. 검사 기준 조차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육류의 나라 미국에서 한심한 일이다. 햄버거용 패티(쇠고기)는 당연히 좋은 재료를 쓰지 않지만 위생 상태마저 열악하다. 이 패티가 감염되어 사건을 크게 일으키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싸고 품질까지 좋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미국산 먹을거리는 옛 추억이 되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상점에서 반품된 상품을 포장만 바꿔 다시 진열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심지어 유명 브랜드의 여성 속옷(팬티와 브래지어)까지 예외가 아니다. 옷걸이에 걸어 하룻밤 동안 냄새를 날려 보낸 뒤 가격표를 붙여 진열한다. 미국에서 속옷을 사면 반드시 살균세탁해서 입어야 한다.                                

교육 현장 역시 혼탁해졌다. 교육부 장관인 안 던컨이 시카고 교육감 재직 시 명문 고교 입학을 청탁해 온 지역 유력자들의 명단을 관리해 오다 언론에 발각되었다. 일리노이주 최고 명문인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에서도 대규모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되었다.

배경은 미국이 능력 위주 사회에서 학벌 위주 사회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2008년 금융 위기의 진앙지 월가가 있다. 당시 메릴린치은행에서 연봉 18만 달러를 받던 30대 은행원은 보너스를 50만 달러 받았다. 같은 은행에는 2006년에 100만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었다. 골드만삭스도 직원 50명에게 보너스로 2000만 달러 이상을 줬다. 메릴린치의 전 CEO에게는 4600만 달러, 전 사장에게는 3500만 달러의 보너스가 지급됐다. 미국의 평균 대졸 임금이 5만 달러 정도이고 10만이면 고액 연봉인 것을 고려하면 한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액수이다. 월가나 그와 관련된 직장에 들어가는 조건이 명문대 졸업장이고 이것을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한탕주의와 승자독식사회와 학벌주의와 부정부패는 함께 간다.

월가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연유한 고위험의 불량채권을 우량 채권과 섞어 물타기를 해 파생금융상품을 만들고 안전한 것처럼 속여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보너스 잔치를 했다. 또 정작 자신들은 곧 주택시장이 붕괴될 것을 알고 시장이 붕괴하는 쪽에 투자해 또 고소득을 챙겼다. 전형적인 표본이 사기 혐의로 제소된 골드만 삭스 등이다. 이들 중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로 넘어갔지만 골드만삭스와 AIG는 특별구제금융을 받고 건재하다.

미국의 정경유착 역시 매우 심각하다. 금융위기 대책을 주도한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고, 백악관 비서실장 조슈아 볼턴,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등이 골드만 삭스 최고위직 출신이다. 오바마 정부에는 골드만 삭스 출신 관료가 하도 많아 아예 정부삭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오바마는 대선 운동 기간에 골드만 삭스로부터 후원금 120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 정부가 구제 금융으로 뿌린 7000억 달러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인 이유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미국은 세계화를 밀어붙이며 각국에 투명성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했다. 그런데 금융위기 과정을 통해 미국의 투명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기 혐의로 피소된 골드만 삭스와 AIG는 합의금을 내고 소를 취하하게 했는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끝났다. 전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이들에 대해 검찰도 법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기업도 정부도 검찰도 법원도 다 썩어 있는 것이다.

미국이 감시와 통제 사회로 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9.11과 금융 위기라는 두 사건을 거치면서 불신사회가 된 것이 배경이다. 정부의 조직과 힘은 과도하게 커지고 개인의 자유는 지나치게 축소되고 있다. 조직적인 국민 감시 체제가 가동되고 있고, 전신스캐너, 알몸 수색, 생체 정보 수록, 전파식별태그 등 사생활과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의 나라 미국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점점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팩트의 나열이 아니라 깊이 있는 원인 분석이 함께 나온다. 경제 위기의 경과와 원인, 가불 경제와 미국민들의 도덕적 해이, 연방정부의 선택 가능한 경로, 너무도 순종족인 미국인들에 대한 분석 등 간단히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한미 FTA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도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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