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귀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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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귀한 가치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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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욕망의 덩어리였으며, 욕망은 인간을 야만 상태에서 문명 세계를 건설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개인들의 이기심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불가피 하였다. 그렇게 보면 문명의 역사는 타인과 자연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얼룩진 역사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 욕망만 가진 것이 아니라,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 능력을 아울러 가졌다. 보이지 않는 가치인 윤리와 도덕의 원칙을 찾아내고, 종교에서 경건한 마음을 갈구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해 온 것이다.

고귀한 가치란 그것을 갈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어서,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보면 그것은 한낱 비아냥의 대상일 뿐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사람 탈레스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무엇보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가 어느 날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다 그만 웅덩이에 빠졌다. 그것을 지켜본 하녀가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 하면서 자기 발치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무지한 하녀의 눈에는 탈레스의 고귀한 능력이 보일 리 없었을 것이다.

인간사에서 가장 저급한 행위가 진지한 상대에게 보내는 비아냥인데, 불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풍토이다. 비아냥은 탈레스의 하녀처럼 얄미운 태도로 빈정거리는 경우도 있고, 상대를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성매매는 사회구조적인 폭력이고 가장 악질적인 착취이다. 그럼에도 성매매 방지법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가 비아냥이다. 매춘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며 '그걸 없앨 수 없을 걸, 뭘 하든 열심히 해보슈' 라며, 그런 여성이 내 가족만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지극히 얄밉게 비아냥거린다.

환경문제로 단식을 한 지율스님은 적대적인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철도노선을 두고 천성산 터널과 우회노선 중 어느 것이 더 친환경적이냐는 실로 난감한 문제이다. 그러나 늪지가 많은 천성산은 터널이 건설되면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지난 수년간 지율스님의 호소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개발과 효율만을 지상과제로 삼는 건교부와 시공업체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 스님이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택은 단식이었고, 100일이 지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언론이 관심을 가졌다. 이쯤 되자 정부는 마지못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겠다고 했다.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오래 전에 엉터리로 작성된 것이다. 그 작업에 참여했던 전문가조차 현장을 돌아보지 않고 주위에 보호할 동식물이 전혀 없다고 증언하였다. 그런 평가서를 들고 터널 공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 것은 박정희 시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우리 행정이 보여준 참모습이다.

이번 사건에서 터널 공사가 옳으냐 그르냐의 타당성 논쟁보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마구잡이식 개발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월간 조선』 조갑제 대표는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백일 단식이라고 확정 보도하느냐"고 지율스님의 1백일 단식을 '위장 단식'으로 몰아나갔다.

그리고는 "언론이 여승을 '스님'이라 표기하는 것도 기자들의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선생님, 목사도 목사님으로, 대통령도 대통령님으로 해야 한다. 승려나 비구니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적개심이 가득 찬 비아냥을 퍼부었다. 조갑제식 비아냥은 개발을 신주 모시듯 하는 보수세력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돈만 된다면 불도저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데 익숙한 세대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 되어버린 시대에 웬 환경 가치"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발 아래만 쳐다보고 걷다가 우리는 미래의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천성산 터널 공사중단이 남긴 교훈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간 천천히 걷더라도 자연의 가치를 경건하게 바라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인간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였지만, 모든 이치가 늘 그렇듯 지나친 지배는 오히려 욕망 실현 가능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송필경(대구 범어연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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