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야 환자 되는 현실 이미 '정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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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야 환자 되는 현실 이미 '정글'이다"
  • 박은아 기자
  • 승인 2011.12.05 18:1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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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하얀정글> 송윤희 감독

 

#환자들로 붐비는 한 대형병원 환자 대기실. 앞에 있는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 한명이 진료를 위해 들어간다. 그 환자가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시간은 재니 32초. 그다음 환자는 29초, 다음은 27초. 다음은 31초.... 한 시간 동안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온 환자는 100여명에 달하고 이들 환자의 평균 진료시간은 30초에 불과하다.

#백내장 수술을 위해 대형병원에 찾아간 노인 환자는 그 병원에서 수술 시 국소마취는 안되고 전신마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노인환자는 협심증이 있어 전신마취는 위험한 상황. 그러자 병원에서는 전신마취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100만원이 넘는 심장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노인환자는 백내장 수술비보다 비싼 검사를 받게 되고 검사 결과 전신마취가 불가하다는 판단을 받는다. 해당 병원에서 결국 수술을 받지 못했다.

#한 대형병원 과장들이 전원 참석하는 회의실 내부. 이날 회의의 주된 내용은 이달의 진료과별 실적 평가다. 회의실 앞쪽에 비쳐진 화면에는 한달 간 각 과별 총수익과 이를 교수 수로 나눴을 경우 교수 1인당 실적이 얼마인지를 계산해 1위부터 차례대로 열거해 발표한다. 여기서 하위실적을 기록한 과장들은 회의 내내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최근 아이돌 가수를 빗대 ‘5초 가수’라는 말이 있는데, 실로 ‘30초 의사’라는 표현이 나올만 하다. 한국판 <식코>로 불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하얀정글>에서는 돈이 있어야 환자가 될수 있는 대한민국 병원의 현실을 정글에 빗대 조명하고 있다. 동 영화에서는 실제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환자들의 사례와 현직의사 및 병원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돈벌이에 치중하는 병원의 폐해와 이를 유도하는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아 전달하고 있다.

현직의사라서 더욱 주목받은 <하얀정글>의 송윤희 감독(사진)은 “단순히 영웅심에 젖어 국내 의료계를 고발하려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그녀는 “더이상 공공의료는 없고 자본의 논리에 맞춰 환자를 돈으로 보는 의료 현실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이런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어떻게든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꼼수를 막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의료인들이 먼저 반성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 8개월에 걸쳐 직접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며, 편집작업까지 직접 다 해낸 젊은 감독이 굳이 왜 자신이 속한 의료계에 감시의 카메라를 들이 댔는지 그녀의 생각을 들어봤다.

현직 의사로서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영화에도 소개됐지만, 당뇨병 환자임에도 몇 만원의 치료비가 없어 진료를 포기하고 병을 키우는 이길도 씨의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과 의료제도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 돈 몇 만원이 없어 대학병원을 가지 않는 이길도 씨는 나라에서 주는 의료급여 혜택이 절실하지만 의료급여 혜택을 받는 조건도 까다로워 이 또한 쉽지 않다고 한다.

이길도 씨의 사례를 시작으로 돈이 없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진료를 포기한 환자들의 사례를 수집하면서 영화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단 ‘가난한 환자’에만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만들면 너무 ‘인생극장화’ 될 것 같아 이들 사례를 바탕으로 이런 문제를 야기시키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문제와 의료민영화 정책의 문제를 함께 짚어보고자 기획을 해 나갔다.

“난 영웅 아니야”…의료계가 자성하는 계기 되길 바래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현직의사가 의료계 내부를 고발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그 덕에 (의료계에서)밀려오는 항의로 너무 힘들었다.(웃음). 아무래도 언론에서는 그런 내용이 대중의 눈길을 끌기 때문에 포커스를 삼은 것 같다. 일부 기사들은 영웅심에 젖은 젊은 여의사가 의료계를 고발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난 영웅도 아닐뿐더러 영화의 전체 맥락을 본다면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 내부 고발이 아니라면 어떤 의도라고 할 수 있나

영화 제목으로도 정했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자본의 논리에 휩쓸린 ‘정글’이나 다름없다. 의료 기술이 부족해 환자들이 죽거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병을 키우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영화를 통해 의료계의 이런 암담한 현실을 공론화하고 무엇이 우리 의료현실을 피폐하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의사들도 내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전문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크지, 돈벌이에 치중한 의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고 싶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소 아프더라도 우리 치부를 드러내고 자성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하얀정글>은 의사들을 비난하고 적으로 돌리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의사들이 힘을 모아 정글과 같은 의료 현실을 바꿔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든 것이다.

제작기간이나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작년 8월말 기획에 돌입해 추석 즈음 약 두 달 정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이후 영상편집과 나래이션 삽입 등 후반작업까지 약 8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제작비는 900만원 정도인데 내 돈은 아니고 남편의 지원금으로 제작했다

영화 속 사례들을 모으고 인터뷰를 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의료소외계층들의 경우 남편(의사)이 일하는 안산의료생협을 통해 대부분 소개받았고 내가 일하는 복지관을 통해서도 사례를 모았다. 대형병원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알음알음 정보를 하나둘씩 얻었으며 촬영은 거의 허가가 나지 않았기에 핸드폰 보는 척하며 몰래 동영상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의대를 다녔음에도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본과시절 어느 순간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에 1년 정도 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휴학을 하고 독립영화 워크샵에 등록했다. 휴학 기간 동안 단편 영화를 2편 정도 만들었으며 하얀정글이 장편으로는 첫 작품이다.

전공이 산업의학과로 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휴학 후 학교로 돌아가 인턴까지 마쳤지만 항상 마음 속에 무언가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의사로서 임상에 매몰돼 갑갑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고민 끝에 우리 사회 가장 근간인 노동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산업의학을 전공하고자 결심했다. 산업의학을 전공하면서 우리사회 다양한 노동자와 그들의 사례를 접한 것이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러면서 대학병원 안가고도 의료인으로서 의미 있게 살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화를 본 주변 반응이 어떤가

영화에 출연을 하셨거나 도움을 준 분들은 일단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매우 좋아하셨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앞으로 보건의료 쪽 다큐멘터리 전문활동가들이 좀더 많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민사회단체 분들은 영화 속 소재가 좀 더 센 내용이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다. 내 영화 자체가 가진 한계점은 있지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약간은 우회적으로 언급해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낼 수 있기를 바란 면이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실천에 나서기를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사례들은 결국 영리병원의 폐해와 일맥상통한다. (영리병원이 허용 안 되는)지금의 의료현실도 ‘정글’인데 영리병원이 본격적으로 허용되는 최악의 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공공의료는 아예 붕괴될 것이고 국민 건강이 위협을 받을 분 아니라 의사들 역시 피해를 입는 건 마찬가지다. 의료계가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 미래에 덮칠 쓰나미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영화에서 그려진 소외계층의 의료현실을 통해 의료를 산업시스템의 잣대로 이해하는 의료민영화의 부당함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부당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실천을 하는 방법 밖에 없음을 알리고 싶었다.

치과계 영리병원 반대 흐름 “메디컬로 확산되길 바란다”

치과계는 올해 대한치과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영리병원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들었는가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중 그와 관련한 얘기를 들었었다. 처음 들었을 때 매우 놀라서 ‘이게 왠일이지’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치과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여러 경로로 들으면서 현재 치과계에서 벌어지는 영리병원 반대 운동이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안임을 인지했다.

이번 사안에서 주목할 것은 우리가 영리병원을 반대해야 하는 또 다른 논리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대중을 대상으로 설득하는 영리병원 논리는 몇 개로 정해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영리병원과 비영리 병원의 진료비를 비교해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진료비는 폭등하고 진료 수준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계에서는 피라미드형 네트워크치과들의 확산으로 이미 영리병원의 폐해를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일반 국민이 볼 때 전체 치과의사가 모인 치협은 굉장히 힘 있는 단체라고 인식되지만 피라미드형 네트워크치과들이 보이는 영리병원 행태에 있어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은 영리병원 허용이 목전에 온 상황에서 새로운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협이 직접 영리병원 문제를 부각시키고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니 매우 반가웠다. 이런 모습이 메디컬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메디컬계에서는 아직 영리병원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영리병원 문제에 있어 나몰라라 하는 메디컬계에 비해 치협은 움직임은 매우 고무적이다. 메디컬은 상대적으로 직접 체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영리병원 문제에 있어 소극적일 뿐더러 오히려 영리병원 행태를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치협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메디컬계에 ‘우리를 보면 알지 않냐 너희도 영리병원 허상에 대한 꿈 깨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길 주길 바란다.

한미 FTA 날치기 통과로 공공의료의 붕괴는 더욱 현실화 됐다

한미 FTA 통과로 이제 우리 의료계는 거대한 쓰나미를 맞게 될 것이다. 이 쓰나미는 수많은 파도줄기를 만들면서 공공의료를 비롯한 우리의 의료체계를 뿌리부터 흔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한미 FTA 반대를 위해 전국민이 뜻을 모으고 집중하는 길 밖에 없다.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한미 FTA 반대에 모인 국민들의 1/100이라도 <하얀정글>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웃음)

영화가 개봉했는데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

어렵게 17개관이나 개봉을 했는데 보러오는 관객이 그리 많지는 않다. 10만 관객은 예상했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웃음) 그래도 어제는 가정의학과 의사 한분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을 건네 큰 힘이 생겼다. 누구나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영화는 아니지만 의미가 있는 영화인만큼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에 찾아오길 기대한다.

특히 일반 국민들 뿐 아니라 의료인들의 관람이 더욱 절실하다. ‘현직의사의 내부고발’ 이런 보도로 의사들의 반감 가지고 있는 건 알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료인이 정글이 아닌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안에서 전문직으로 보람있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건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취재 협조도 쉽지 않고 더욱이 내 성격 상 카메라부터 들이 밀고 그런 성격이 아니라 더 고생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내향적인 성격의 내가 이런 다큐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속에 나를 분노케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뀔 거라는 망상은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변화를 하는데 기여 할 수 있고 이런 작은 변화가 결국 큰 흐름을 만들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앞으로 계획은 사실 모르겠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하얀정글>처럼 마음이 동하고 ‘이거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이 들 때 또 카메라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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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2011-12-13 05:40:35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영화 너무 반갑네요.
차돌맹이 같은 다윗이됩시다.

김광수 2011-12-13 05:39:58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영화 너무 반갑네요.
차돌맹이 같은 다윗이됩시다.

전민용 2011-12-07 16:05:34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야 우리 사회가 한단계 성숙해지겠지요. 좋은 인터뷰에 기사도 쫗고~~~ 단체관람해야겠네요~~~

임종철 2011-12-07 14:08:47
좋은 영화에 좋은 기사네요. 의료인들이 영리병원 문제에 일반국민들과 함께 손잡을 수 있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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