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고장난 가족(Dysfunctional famil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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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고장난 가족(Dysfunctional family) 1
  • 이상윤
  • 승인 2005.02.25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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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키는 13년 경력의 치과위생사이다
재키는 39살된 13년 경력의 치과 위생사다. 미국에서 치과위생사(RDH, Registered Dental Hygienist)는 치과조무사(DA, Dental Assistant)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치과전문직종이다. 기본적으로 어시스턴트들보다 시간당 임금이 2, 3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정도면 일반 다른 직장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경쟁력있는 임금으로 웬만한 대졸취업자들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치과위생사가 되기 위해서는 2년 과정의 치과위생사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데, 치과위생사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치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과목을 듣는 것처럼 해부학 등 대학교에서 개설하는 일부과목만 이수하면 된다.

조무사들이 준비하는 것을 보니까, 보통 낮에는 일하면서도 야간에 학교에 나가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위생사의 임금이 대개 4년 학사과정을 요구하는 간호사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치과위생사라는 직업의 진짜 강점은 고용의 안정성과 근무시간의 융통성에 있다.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미국에서는 고용이 안정적이지 못해 불경기가 닥치면 10년, 20년 경력의 고학력 엔지니어들도 추풍낙엽처럼 하루 아침에 잘려 나간다.

바로 며칠 전에도 부시가 이곳 클리브랜드에 있는 나사 글렌(NASA Glenn Research Center)의 700명 근로자 해고계획을 발표해 지역이 한참 어수선하다. 클리브랜드에 있는 나사 글렌의 전체 정규직원이 1700명인데 그중 700명을 해고한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나사 정규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사기업에 비해 신분보장이 되는 공무원들이고 나름대로 노조도 있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대량해고에도 변변한 집단적 자기 방어도 못한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미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나사에서 19년을 일했고 현재 딸 셋을 키우고 있다는 한 엔지니어와 그 부인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처럼 당장에 애들한테 들어가는 과외비 일부를 줄였지만, 그저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는 암울한 개인적인 푸념만 있을 뿐 해고계획에 대한 집단적인 반대 행동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사고수준이며, 또 그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치과위생사는 직장을 잡기가 쉽고, 한번 일을 시작한 곳에서는 해고당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근무일수나 시간도 편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가정과 자녀를 가진 위생사들은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삼일만 일을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자녀들이 오는 시간( 대개 3, 4시쯤) 전에 일을 끝내기도 한다.

이것은 굉장한 장점이다. 간호사들의 경우 2교대, 3교대로 한국처럼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기 일쑤이고, 근무시간중 서서 일하는 등 내내 격무에 시달리지만 치과위생사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시스턴트들 중에서도 좀 생각이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들은 늘 치과위생사가 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원자가 많아 입학자격을 갖추고도 2년, 3년씩 입학순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재키도 원래는 치과조무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맥도날드, 빵집 등등 여러가지 직장을 전전하고 치과조무사일도 한 2년 하다가 87년 치과위생사프로그램에 들어갔다 한다. 자기 말로는 그때 한창 에이즈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올라 치과관련업종에 가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자기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한다.

89년 처음 졸업했을 때는 시간당 13불을 받았는데, 지금은 30불을 받는다면서 자기 직업에 대만족이고 보는 사람마다 위생사가 되라고 권한다 한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졸업장을 따려고 공부를 계획중이다. 재키가 위생사를 준비하면서 들어 두었던 과목들의 연장선에서 학교를 다니겠다는 얘기인지, 그 후에 새로 학교를 다녔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말로 하면 복학에 해당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는 것같았다.

왜 굳이 대학학력을 갖추려 하냐고 물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칼리지에서 구강위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일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학사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돈도 비싸고 시간도 낭비인 것같아 공부를 더할 생각을 안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학력이 아쉽고 학력이 높아야 돈도 많이 받는다는 대답이다.

치과위생사가 학사학위를 갖추었다고 시간당 임금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다른 경우들을 보아도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학력의 정도는 임금의 정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것같다.

이렇게 재키는 전문직 여성으로 자신을 잘 건사하고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데 나에게 디스펑크셔널 패밀리(dysfunctional family)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뜻은 낯선 말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이 재키이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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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남 2005-02-26 23:43:47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버린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그네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글이 미국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참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계속 연재가 기다려지네요.

독자 2005-02-26 10:35:37
제목이 흥미진진한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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