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공들인 치과병원평가 도루묵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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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공들인 치과병원평가 도루묵 되나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1.12.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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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평가인증원, 치과특성 무시한 ‘허접한 기준’ 제시…치과병원인증 ‘무의미한 제도’ 몰락 우려

 

지난 4년여 간 치과의료서비스의 질관리 지표를 마련하고 평가함으로써 치과의료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치과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진행해 왔던 치과계의 노력이 ‘말짱 도루묵’ 신세에 처하게 됐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원장 이규식 이하 인증원)이 그간 치과계에서 공을 들여 만들어놨던 치과병원평가기준을 전면폐기하고, 치과의료기관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허접한(?) 기준을 제시, 내년부터 그 기준을 바탕으로 치과의료기관 평가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인증원 신현수 기준조정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대치과병원에서 개최된 치과의료기관 인증제도 시행을 위한 심포지움에서 새로운 평가인증기준과 향후 로드맵을 설명했다.

4년 공든탑 ‘전면 폐기’…그 이유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 대한치과병원협회(이하 치병협)은 2007년부터 치과병원평가제도 도입을 위해 4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치과의료서비스의 질관리 지표 및 평가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애초 시범사업은 2007~2009년 3년간 진행할 계획이었으며, 연구 책임자인 보사연 신호성 부연구위원은 3년 시범사업을 통해 ‘10대 대분류 38개 중분류, 89개 소분류’로 구성된 평가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복지부 담당실무자인 구강가족정책과 양준호 서기관은 치과병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긴 했으나 ‘그룹별 차별화된 평가항목 개발’ 등 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고, 2011년 1월부터 도입될 평가인증제도를 대비한 준비도 필요하다며 시범사업을 1년 더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4년간의 사범사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치과병원평가사업이 시행돼야 함에도, 각종 평가제도 통·폐합 및 평가인증제도 도입 추진으로 ‘치과병원 평가인증사업’은 1년 더 연기됐으며, 특히 2010년 10월 7일 설립된 인증원은 지난 4년여의 연구 끝에 개발한 평가기준을 전면 폐기하고 새롭게 ‘치과병원 평가 인증기준’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인증원 신현수 기준조정위원장은 지난 10일 심포지움에서 “기존의 치과병원 시범평가와 평가기준은 나름 성과는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의료기관간 과잉경쟁, 강제평가로 인한 일시 수동적 대응, 각종 평가의 중복, 평가대상 범위의 확대 필요 때문에 새롭게 기준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는 인증제도 도입을 막바지에 둔 2010년 10월 22일 복지부 의료자원과로부터 “2011년부터 치과병원 평가 인증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기준을 만들다 보니 치과병원은 (기준 개발을) 신경쓰지 못한 게 사실”이라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즉, 신현수 위원장의 이유와는 달리 복지부와 인증원은 치과병원 평가 인증제도를 전혀 신경쓰지 않다가, 현행법 상 어쩔 수 없이 시행할 수밖에 없다보니, 급조해서 평가기준을 만들게 된 것이다.

급조된 치과병원 평가기준 ‘문제점은?’

신현수 위원장은 이날 심포지움에서 ▲3개 영역 ▲12개 장 ▲34개 범주 ▲50개 기준 ▲212개 조사항목으로 구성된 평가기준을 제시했다.

3개 영역 중 ‘기본가치체계’는 ▲안전보장활동 ▲지속적인 질향상 2개 장으로 구성됐고, ‘환자진료체계’는 ▲진료전달체계와 평가 ▲환자진료 ▲수술 및 마취진정관리 ▲약물관리 ▲환자권리존중 및 보호 5개 장으로 구성됐다.

또한 ‘행정관리체계’는 ▲경영 및 조직운영 ▲인적자원관리 ▲감염관리 ▲안전한 시설 및 환경관리 ▲의료정보관리 5개 장으로 구성됐다.

신 위원장은 “12월 중 5개 치과병원에 인증 시범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인증기준을 수정·보완한 후 내년 2~3월 2차 시범조사를 실시해 추가 수정·보완할 것”이라며 “4월경 공청회를 실시해 최종 보완한 후 5월 공표하고, 6월 대상병원 설명회를 거친 후 인증제도를 본격 실시하겠다”고 로드맵을 밝혔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준으로 치과병원 평기 인증을 실시할 경우, 애초 취지를 무색케 하는 형식적인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증기준은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신 위원장은 “현 ‘의료기관 인증제’의 체계에 따른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은 치과병원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치과병원의 특수성을 추가로 반영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치과병원의 독립적 성격을 우선 시 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 4년간의 시범평가를 통해 마련된 치과병원의 특수성에 기반한 평가기준의 틀이 완전히 허물어 졌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치과병원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항목들이 대거 포함되고, 꼭 필요한 항목은 전면 폐기 또는 대폭 축소됐다는 점이다.

한 예로 치과병원은 97% 이상이 외래이기 때문에 메디컬과는 다르게 입원환자의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입원환자와 관련된 규정이 비중 있게 담겨 있다.

1영역(기본가치체계) 1장(안전보장활동) 1범주(환자안전) 1기준(안전보장활동)에는 15개 항목이 있는데 그 중 ‘입원환자의 낙상 예방’을 한 조항이 4개나 된다.

또 한 예로 3장 ‘진료전달체계와 평가’에서는 입원수속 등 입·퇴원항목이 전체 39개 항목 중 9개나 차지한 반면, 기공물 및 기공실 안전관리는 5개 항목만 포함돼 있다.

아울러 ▲입원환자 식사를 위한 조리방 및 영양관리 ▲약물 관리 ▲임상(검체)검사 등 치과병원에서는 1~2개 항목으로 다뤄도 될 사항들이 의료기관 평가와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과잉 포함돼 있다.

반면 치과병원의 특수성으로 꼭 포함 및 강화해야 할 항목인 ▲계속구강건강관리 ▲물품제고 관리 ▲협진체계 등은 아예 빠졌으며, 매디칼 쪽은 별도의 적정대응팀에서 관리하지만 치과병원에는 없는 ▲의료사고 대응을 위한 손해배상청구 항목 등도 빠져있다.

치과계 무시하는 인증원·복지부 ‘각성 필요’

이렇듯 치과병원 평가 인증제도가 애초 취지와는 달리 형식적 제도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치과계의 특성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메디칼 중심으로 끌어가려는 인증원과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본지는 2010년 12월 27일자 『치과병원 평가 인증제 '시행 포기했나'』를 제목으로 한 보도에서 인증원은 제도 시행의 구체적 실무를 위해 ▲인증심의위원회 ▲제도자문위원회 ▲기준조정위원회 3개의 위원회를 각 위원회별 15인 내외로 구성했는데, 모든 위원회에 치과 관련 전문가를 단 한명도 배정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또한 치병협 관계자의 인터뷰를 인용해 “인증원은 모든 걸 의과의료기관 평가·인증 위주로 생각하고, 치과의료기관 평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같다”면서 “3개 위원회도 치과병원 평가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만 전문가를 참관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종합병원들의 입김이 상당수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사연 신호성 박사는 “대형병원들은 의료기관 평가와 별도로 치과를 따로 받아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병원평가를 받으면 굳이 치과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가길 원하고 있다”면서 “때문에 별도의 치과평가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더 할 필요가 없게끔 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메디칼 쪽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일부러 기존 치과계 기준을 폐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적당히 평가받고 인증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치과대학병원 등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렇듯 복지부와 인증원의 불합리한 처사에 어느 누구도 강력히 문제제기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의 인증제도가 시행될 경우 메디칼과 연결돼 있지 않은 중소형 치과병원의 경우 입원환자를 위한 각종 조건 등 불필요한 헛노력을 해야 하는 등 혼란이 예상된다. 때문에 향후 1~2차 시범사업 이후 어떠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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