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사는이야기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김근태 선배님[특별기고] 故 김근태 영전에 바치는 편지
송필경 | 승인 2012.01.25 12:52

 

   
 
올해 1월 초, 고위 관료와 장관 그리고 3선 의원을 역임하시면서 국회에서 선배님과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신 분을 만났습니다. 비록 보수정당 출신이지만 자신이 겪은 국회의원 중에 한명숙씨와 선배님을 가장 점잖고 깨끗한 정치인으로 존경했다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송 원장! 내가 1월 2일 김근태씨 조문에 가서 보니 웬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많이 왔어?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두려운 생각이 섬뜩 들더라고.”

“아니, 두렵다니요?”

“조문 온 그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일반시민이더구먼.”

이 분은 다수 시민의 힘에 놀라 두려움을 느끼신 모양입니다. 그 시민들이란 선배님의 표상인 정의를 존중하는 사람들일 것이고 이명박 정권의 천박한 정치판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이 분명할 테니까요. 보수정객의 처지에서는 이들이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작년 12월 31일 오후에 대구에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대구 분향소를 두고 굳이 서울로 향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사람이 북적여도 막상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데, 인터넷을 보면 조문객이 그렇게 넘친다니…”

6시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과연 현관에서 빈소 입구 복도까지 조문객이 꽉 차있었습니다. 우리 정치판에서 내노라 하는 인사들이 더러 보였습니다만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젊은 부부, 심지어 어린이 손을 잡고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현관에서 빈소에 이르는 복도에 인파가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뉴턴이 죽었을 때 마침 볼테르가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례식을 목격한 볼테르는 영국민들이 뉴턴에게 국민적 영예에 바치는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진리의 힘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폭력으로 우리의 정신을 노예로 삼는 자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볼테르의 금언(金言)은 선배님께 딱 어울립니다. 보수 언론조차 선배님의 영면에 ‘좌도 우도 존경했던 민주화 투쟁 시대의 큰형’이라는 진심 어린 조의를 표했습니다.

   
 
선배님은 전두환이 폭력으로 우리의 정신을 노예로 삼으려는 기도를 온 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선배님의 신체를 망가뜨린 자를 고문 전문가 이근안으로 지목하는데, 저는 본질적 고문자는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으로 봅니다. 선배님만큼 꿋꿋하게 오랫동안 전두환의 폭력 앞에 버텼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오래 전 사석에서 제게 고문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송 원장! 나는 치과 가는 게 그렇게 두려워. 치과 치료의자가 고문대인 칠성판처럼 보이고, 치료의자에 달린 조명이 고문대 불빛으로 보여 도저히 치료 받을 수 없었어.”

야만적인 고문이 선배님의 불굴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지만, 혹독한 육체적 폭력은 선배님의 신체를 이렇게 빨리 망가뜨렸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우리 사회는 자생적으로 자각한 민주화 운동이 비로소 시작하였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자각을 일구어 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영혼을 세상에 알려낸 위대한 청년 조영래 변호사, 그 분과 선배님은 절친한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의 진정한 선구자였습니다.

전태일 열사 사후 수많은 지식인들이 유행처럼 민주화 운동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 쟁쟁한 운동가들이 자기희생적인 진솔한 투쟁을 죽 이어오기 보다는 현란한 오만에 빠져 추악한 어거지 투쟁으로 변신한 자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민주화 투쟁의 전력을 내세워 정치권에 투신했다 하면 속된 권력을 탐닉하는 정치 모리배로 변신한 자들이 어디 한둘 입니까. 선배님의 빈소에도 이런 자들이 거짓 눈물을 보이며 득실대더군요.

루쉰이 경멸한 ‘아침에는 훌륭한 결심을 하고 저녁에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바로 그런 자들 말입니다.

위인박명입니까? 저녁까지 훌륭한 결심을 이어가는 간 조영래 변호사님과 선배님은 왜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를 떠나십니까?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고 북받칩니다.

슬픔과 울음을 멈추겠습니다, 선배님, 희망이 있으니까요! 선배님이 무한한 용기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인물임을 알고 선배님의 빈소에 찾아오신 그 수많은 시민들! 선배님의 마지막 말씀을 이 분들이 분명 실현할 것입니다.

“2012년 투표하라!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선배님! 무엇보다 제게 베푸신 다정다감했던 따뜻함, 선배님의 그 마음을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늘 간직하겠습니다.

늦게나마 이 글로 선배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2012년 1월 24일 새벽에
송필경 드림

송필경  spk55@hanmail.net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필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3
전체보기
  • 강민홍 기자 2012-01-25 17:33:30

    그 이후 끝까지 영리병원(특히 문제가 됐던 경제특구) 도입을 반대하셨었죠. 짧은 복지부 장관 임기 내에도 위대한 족적을 남기셨던, 위대한 분입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삭제

    • 강민홍 기자 2012-01-25 17:33:04

      2004년이었던가요? 고 김근태 의원님께서 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후 특별히 건치 임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을 때, 유난히 애정어린 눈길로 건치 임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도 복지부 장관이 치협 임원 상견례 겸 면담 보다 앞서 건치 임원과 상견례를 가졌던 게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삭제

      • 전민용 2012-01-25 15:22:04

        장례식장에서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김근태 정신이라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우리 모두 살아 있을 때 잘 합시다!!!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4길 21, 제1호 3층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9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