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노동자 감시와 노동자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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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노동자 감시와 노동자 건강
  • 이상윤
  • 승인 2012.02.06 15: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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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상윤 논설위원

 

최근 KT 및 KT 자회사의 노동자 감시 및 노동조합 탄압 사례가 다시 불거지면서 노동자 감시가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일고 있다. 사실 점차 고도화되어가는 기업의 노동자 감시에 따른 노동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90년대 말 이후 간헐적으로, 그러나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어 왔다.

작업장 통제, 정보화 그리고 노동자 감시

작업장 통제의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의 착취를 위해서는 작업장 통제가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자본가들은 다양한 작업장 통제 기술들을 발전시켜 왔고, 그러한 노력은 정보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은밀하고 효과적인 감시 기술을 탄생시켰다. 자본은 착취의 욕망과 더불어 지배의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노동자를 확실히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온갖 종류의 감시와 통제 기술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늘 있어왔던 종류의 감시와 통제와 다르게, 최근 문제 되고 있는 감시와 통제 기법은 그 이전의 것에 비하여 훨씬 은밀하고 고도화되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발달된 전자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감시의 방법은 표 1과 같은데, 이러한 감시 방법의 특징은 매우 은밀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24시간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표1. 기술적 유형에 따른 감시 유형

이러한 감시 시스템은 노동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저해하여,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스스로 자본의 통제를 내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러한 고도화된 감시 체계의 도입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빠른 정보화 기술 발전 속도는 노동자 감시 기법의 발달과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 <(주)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하여 2003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조사를 진행, 전국 사업장에 대해 업종/지역/규모별 분포에 비례한 무작위 추출로 207개 사업장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 중 89.9%의 사업장에 이미 한가지 이상의 노동자 감시가 진행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전체 사업장 평균 2.5가지의 감시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 1000인 이상 사업장과 병원에서는 100% 감시시스템 설치.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감시 △하드디스크 내용검사 △전화 송수신 기록 △CCTV카메라 설치 △전자신분증 사용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설치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설치한 사업장이 89.9%인 반면, 한 가지도 설치하지 않았다는 사업장은 10.1%에 불과했다. 특히 보건의료업종과 10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는 조사대상 사업장 전체(100%)에 보안관리시스템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황현아, 위의 글에서 인용

노동조건의 변화와 노동자 건강

한편, 다른 측면으로 최근 작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조건 혹은 노동조직의 대대적 변화 경향은 노동자 건강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기술의 변화와 기업의 이윤율 저하에 따른 노동의 재조직화 경향의 증가로 인해, 작업장은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노동은 탈숙련화되어 가고 있으며, 더 적은 인력이 더 많은 기능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 결과 한 사람의 노동자 입장에서는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 노동의 성격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들일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의 긴장성이 증가하고 노동 강도가 강화되며, 오히려 노동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동의 유연성이 증가하여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구조조정이 일상화되어 고용의 불안정성이 매우 심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건과 노동조직의 변화 경향에 따라 최근 직업성 질환의 성격도 바뀌어 가고 있다. 소음 등의 유해한 물리적 환경, 유기용제, 분진 등의 유해물질에 의한 건강 문제와 더불어 새로운 건강 문제가 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 그 주범들은 바로 심혈관계 질환(과로사), 정신질환(자살 문제도 포함), 근골격계질환이다. 위에서 말한 요인들, 다시 말해 노동강도와 노동 긴장성의 증가, 노동 시간의 역설적 증가, 고용의 불안정성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노동자 건강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문제는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새롭게 등장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 문제에 대한 논의가 2004년에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 사안 첫 번째 안건으로 상정되었을 정도이다. 문제는 크게 나누어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이 발생했을 경우 어떤 기준에 의하여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여 보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누어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직업성 근골격계질환과 마찬가지로 직무 스트레스의 문제는 매우 광범위한 노동 계층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기업 측에서는 민감함 문제일 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이를 통제하려 들고 있으며, 반면에 노동 측은 이에 대한 공세를 진행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직무 스트레스나 이로 인한 정신질환의 발병 등에 대해서 아직 의학적인 연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노자간의 힘겨루기가 더욱 강렬하게 이루어지는 측면도 존재한다. 정신질환 진단이 다른 질환에 비하여 그리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측면과, 의학적으로 직무스트레스와 정신질환 발병과의 인과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황금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향후 한국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준비와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자 감시와 노동자 건강

노동자 감시가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적지 않다. 미국의 기술평가국과 직업안전보건청이 1987년에 한 연구에 따르면,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심한 안절부절, 시간에 쫓기는 느낌, 업무 불만족, 근골격계 통증(특히 두경부와 손 부위에)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1990년에 미국의 AT&T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더 많은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2 참조).

▲ 표2. 미국 AT&T 노동자 조사 결과, 1990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치밀한 감시가 자율성의 저하, 동료 및 상사에 대한 불신 등을 불러일으켜 스트레스 수준을 심각하게 높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직무에 대한 자율성 감소, 업무량 과다, 직무의 불안정성, 사회적 지지의 약화 등이 직무 스트레스를 높이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감시와 통제의 증가는 이 모든 요인을 악화시켜 스트레스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무 스트레스의 증가는 우울증, 불안 장애 등 정신과적 문제뿐 아니라, 심장 질환, 위장 장애 등의 신체적 문제도 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조기에 사망하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편 직무 스트레스의 증가는 알콜 중독, 흡연, 약물 중독의 위험성도 높여 간접적으로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고,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군은 병가를 내는 경우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특징적이라고 지적될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기업의 노동자 감시가 단순히 노동자의 직무 스트레스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부당 노동 행위 등 기업의 범죄 행위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실 말해 한국의 기업들은 노동자 감시 수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노동조합의 결성을 막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하며,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 신기술을 가지고 전근대적 노사 관계를 영속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노동자 감시는 단순히 직무 스트레스를 높이는 차원을 떠나 노동조합 내지는 노동자 개인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노동자 감시 문제 해결을 위하여

첨단 기술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는 노동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작업장 통제권을 약화시키고,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는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향에 하루빨리 고삐를 채울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며,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이와 관련된 규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개인 정보를 관리자가 임의로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제도가 신설되어야 하고, 그러한 규제를 어기는 기업 혹은 관리자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 있는 법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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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호 2012-02-07 11:44:17
노동건강에 관한 문제...익숙치 않지만 항상 주목해야 할 이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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