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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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나의 삶
  • 조남억
  • 승인 2012.03.07 21:45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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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조남억 사무국장

 

프레시안의 인문학학습원에 있는 여러 학교들 중에서 막걸리 학교가 제일 인기가 좋아서 수강신청 5분 만에 마감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수강신청을 기다렸다가 신청에 성공하여 막걸리 학교 10주 강의를 듣게 되었다.

▲ 직접 담근 무농약찹쌀막걸리
막걸리의 역사와 종류, 변천과정, 제조방법 등을 교육받았는데, 가장 중요하게 했던 교육과 실습은 막걸리 마시면서 맛을 감별해보는 것이었다. 좋은 막걸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국에서 수집한 여러 가지 막걸리를 한 잔 씩 나누어 담고 조금씩 맛을 보면서, 1번 막걸리는 무슨 맛이 나고 2번 막걸리는 특징이 어떠한가 하는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막걸리 한 모금을 혀 위에 올려놓고, 혀의 느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코끝에 걸리는 향기에 집중하고, 목 넘김의 순간에 느껴지는 여러 가지 맛과 향기들을 천천히 음미하다보니 같은 막걸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수십 가지의 막걸리를 맛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막걸리의 다양하고도 풍부한 맛과 향기에 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엔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마시고 음미하게 되었다. 

백세주 국순당에서 막걸리의 년 매출이 2006년 10억 정도 하던 것이 2011년 1000억을 넘어설 정도로 최근에 막걸리 열풍이 불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와인의 열풍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별로 없는 희석식 알코올(소주)만을 수십 년간 마셔오던 우리나라에서 와인덕분에 드디어 발효주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국내에 존재하던 발효주 막걸리의 우수성에도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포도당을 효모가 알코올 발효를 하기만 하면 포도주가 되는 것에 비하면, 다당류의 탄수화물을 일탄당의 포도당으로 분해를 한 후 다시 발효를 해야 하는 막걸리는 한 수 위의 발효주인 것이다. 그 분해의 과정과 발효의 과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니, 막걸리와 전통 청주의 맛과 향이 훨씬 다양하고, 독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석식 소주를 마실 때에는 무슨 소주를 마실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어떤 안주를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였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어떤 소주를 마실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먹기는 힘이 들었고, 단지 술 취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안주를 먹기 위해서 마셔대던 것이 소주였다. 즉 “카” 하며 목에 넘기기 급급해하며 술에 취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술에 취하려는 목적에 바로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 희석식 소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와인과 마찬가지로 막걸리를 마실 때에는 그 마시는 순간에 집중하여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즐기게 되었으니, 오랜 시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얼른 취해서 인사불성이 될까 더 두려워지게 되었고, 어떤 막걸리와 어떤 안주가 어울릴까 고민하게도 되었다.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서 술에 취하는 것보다 술에 취해가는 과정을 즐기게 되어서, 그 전보다 훨씬 더 건전하면서도 즐거운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 인천건치 월례회에서 막걸리 특강 중의 모습
몇 달 전 신영복 선생님의 콘서트가 인천에서 있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 남는 말씀은 “인생은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과정 자체다.”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빨리 갈 수가 있을까만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걸어서 부산엘 가겠다는 것은 꿈도 못 꾸게 되었고, 시내버스만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한 달 동안 내려간 적이 있다는 개그맨 전 유성의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로서만 존재했다. 부산에 빨리 도착하고자 하여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면, 그 과정을 즐길 수는 없게 되고, 오히려 그 과정이 괴롭고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길에서는 과정과 경과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속도가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사회가 속도전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오히려 더 외롭고, 많은 말을 하지만 오히려 더 공허하게 변하고 있다.

삶의 과정을 즐기게 해주고, 여유를 찾아주게 된 막걸리는 그래서 나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특히 술 본연의 깊은 맛은, 여럿이 함께 마실 때 비로소 알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술 마시는 즐거움이 더욱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옆 사람을 챙기면서, 옆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삶의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먹으니, 그동안 내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쫓아가기만 하던 목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 되었다. 내가 현재 찍어가고 있는 발자국 그 자체가 아름답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과 그 과정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오히려 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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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 2012-05-14 19:54:23
한달이 더 지나서야 댓글들을 보았습니다...죄송합니다. 특히 저와 막걸리 동문 수학하신 동기 박학주 형님글에도 댓글을 못달았네요..^^;;
괜찮은 막걸리 추천을 앞으로 할 예정이니, 그것들 위주로 맛을 보시면, 막걸리의 참 맛에 빠질 것 같습니다.

박학주 2012-04-04 15:15:00
남억님 좋은 글 잘 읽어보고갑니다. 득도 하셧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글 올리시기 바랍니다. 11기 박학주

박학주 2012-04-04 15:15:00
남억님 좋은 글 잘 읽어보고갑니다. 득도 하셧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글 올리시기 바랍니다. 11기 박학주

박학주 2012-04-04 15:14:54
남억님 좋은 글 잘 읽어보고갑니다. 득도 하셧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글 올리시기 바랍니다. 11기 박학주

김은선 2012-03-27 23:42:15
느림의 미학이 얼마나 좋은데요..갑자기 티비를 보다 막걸리 학교 기사를 본게 생각나 나도 막거리 만드는걸 좀 배워야지 하고는 검색을 했더니 제일 먼저 이 기사가 뜬거에요^^근처에서 찾아봐야겠어요. 어릴때 할무이가 항아리를 방에다 들여다 놓으시고 막거리 만드시던 생각이 나네요..아 더불어 님이 올리신 ㅡ글때문에 덧글을 달게 되었구요. 단양 고수동굴 앞에 가면 매운국수 집에서 더덕 막걸리를 파는데 향이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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