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식코
상태바
다시보는 식코
  • 김광수
  • 승인 2012.03.08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김광수 논설위원

 

몇 년 전에 미국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마이클 무어 제작, 감독, 주연의 영화 식코(Sicko)가 있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만, 한번 보고 치워버릴 문제는 아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본인부담금과 비보험 진료, 그리고 고액의 보험료 때문에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소위 HMO (Managed care)라는 것이 있지만, 그러나 그 혜택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마이클무어는 이렇게 치료의 사각지대에서 버려지는, 그리고 길바닥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미국인들을 영화에서 다루었다.

영화에서는 911 사태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많은 인명을 구출한 소방관이 “미국을 구한 영웅”으로 추대되지만, 당시에 얻은 호흡기 질환으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병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한편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캐나다의 경우, 누구라도 진료기관에서 모든 진단과 치료와 약값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여러 악선전이 있는데, 즉, 캐나다에서는 진료를 받으려면 일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진료의 수준이 엉망진창이다, 의사 얼굴 보기 어렵다 등등의 소문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심지어는 캐나다 사람과 결혼한다든지,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는 일까지 심심찮게 생겨났다.

그런데, 이러한 훌륭한 의료제도는 비단 캐나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마이클 무어는 영국에 가서 영국의 상황을 살핀다. 영국의 NHS(국가의료관리제도)도 이러한 혜택을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의사들이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국민들을 위한 의료제도 개혁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의사들의 이권문제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NHS제도 하에서도 의사들이 여전히 높은 소득과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마이클 무어는 프랑스와 독일에 가서도 이렇게 국민들이 돈이 없더라도 진료를 훌륭히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니까, 영국의 제도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대부분의 발달된 나라에서는 돈이 없더라도 충분히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의 위대한 조국인 미국만이 이상한 나라, 몹쓸 나라였던 것이다.

쿠바는 오랫동안 악의 축(Axis of Devil)이었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었고, 카스트로는 쿠바국민을 망친 장본인으로서 죽여 없애야만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가난 때문에 미국에서 전혀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을 데리고 쿠바로 향한다. 배를 타고 여러 날 걸려서 쿠바에 입국하여 병원에 도착한 그들은 바로 국적과 신분과 치료비 여하에 관계없이 훌륭한, 미국 못지않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미국은 그들이 그토록 질타했던 쿠바보다도 훨씬 못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적 의료제도, 즉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그런 제도 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치료를 못 받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돈이 없으면 치료를 못 받고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그런 제도야말로 아주 특수하고 매우 야만적이 제도임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미국보다는 낫다고 한다. 30년 전부터 시작된 건강보험제도가 그런대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높은 보험료와 낭비성 지출, 그에 따른 보험재정의 파탄, 그리고 꼭 필요한 기초적 진료와 예방처치에 대한 급여제한, 높은 본인부담율, 3차진료 위주의 제도 등등이 그것이다.

기초적 진료와 예방처치에 대한 급여확대를 위해서는 진보적 의식과 함께 보험재정의 안정이 필요한데, 보험재정은 일부 특수 사치성진료, 말기환자에 대한 과다급여 등으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정치가들의 선심행정, 전시행정에 따른 결과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건전하게 육성되어야 할 건강보험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병원자본과 제약자본들에 의한 과다한 낭비성 진료비지출 때문에 건강보험이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얼마 전에는 약값의 본인부담률이 30%에서 50%로 인상돼서 더욱 건강보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한미FTA의 결과로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 제약회사들의 공격적 마케팅에 얼마나 보험재정이 견디어 낼지 정말로 걱정이다.

우리가 미국보다 더 좋은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비록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단점을 개선하며 건전하게 육성해 나가야 할 국민건강의 교두보이다. 그런데 이 교두보가 자본과 외세에 의해서 무너지게 될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지 아니한가. 마이클무어가 개탄하는, 돈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죽어가야 하는, 그런 야만적인 현실이 바로 눈앞에 닥치고 있지 아니한가.

건강보험을 파괴하는 악마들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악마는 의료시장 개방이다. 병원을 자유경쟁 시켜서 돈벌이의 장으로 내어준다는 것은 바로 진료의 보장성을 전제로 하는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진료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키우고자 한다. 얼마나 잘못된 정부이면 의사들까지 돈벌이에 나서라고 내모는가 말이다.

둘째 악마는 영리법인 추진인데, 이도 역시 위와 같은 맥락이다. 병원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대학교수나 국회의원들, 정치가들, 부패언론들에 의해서 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경영인(사장과 회장)이 병원장이 되어서 환자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그런 제도가 결코 옳은 제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셋째의 악마는 의사회가 추진하는 건강보험 계약제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진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제가 아닌) 계약제에 의해서 본다면 바로 그날부터 건강보험 제도는 유명무실해 진다. 그럼에도 일부 이기적 의사들이 이런 잘못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약값을 인상한다든지, 조제료를 인상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좀 챙기겠다고 하는 제약회사나 약사들의 태도는 오리려 애교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도는 바로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민감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진보적 대통령, 진보적 의식을 가진 정치가들을 선출해야 하지만, 바로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위해서 또한 진보진영이 단결하고, 더욱 슬기로워 져야 할 것이다.

김광수(본지 논설위원, 한양여자대학 치위생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