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그리고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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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그리고 제주
  • 신이철
  • 승인 2012.03.22 16: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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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신이철 편집위원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했던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다. 일본정부의 공식통계로만 사망.실종자가 19,000명이 넘고 피난민이 35만명, 재산피해 규모도 234조에 달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수치로 나타난 직접적인 피해규모보다도 세계를 끔찍한 혼란에 빠뜨린 것은 '원전'과 '방사능'이다. 지진과 해일의 파괴력은 눈에 보이는 참담한 피해를 가져왔지만 방사능의 가공할만한 위력은 보이기는 커녕 어떠한 감각으로도 느낄 수조차 없다. 방사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다. 그저 숫자로 환원된 데이터를 통해서만 방사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방사능의 실체를 정부의 발표와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정부의 발표와 미디어의 보도를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3.11 이전 후쿠시마 사태의 책임 당사자인 도쿄전력은 지역의 독점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방송매체에 200억엔이 넘는 거액의 광고비를 퍼부었다. 단순히 원자력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원전에 반대하는 의견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사가 원자력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려 할 때 광고를 끊겠다고 위협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원전의 위험을 팔아 번 돈으로 어용학자를 내세워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을 옹호하고 원전을 칭송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자연히 방사능의 위험을 지적하고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론에서 밀려났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미디어가 한통속이 되어 농간을 부린 것이다.

미디어를 통한 여론조작의 예는 지금 우리 방송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이어도의 영유권 분쟁을 이슈화하고 탈북자 송환문제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이 그것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 대는 것이 진심으로 이어도의 영유권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고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짐작하듯이 영유권 분쟁은 상대방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분쟁지역으로 부각된다면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문제도 목소리만 크게 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 문제가 시끄러워 질수록 중국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북한의 문단속은 더욱 심해진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은밀히 추진해야 하는 것이 외교적 상식이다.

외교적 관례와 해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와 방송사가 이 같은 보도를 연일 내보내는 이유는 뻔하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에는 안보논리가 가장 잘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분쟁을 부추기고 빗나간 애국심을 자극해서 총선에서 승리하고 제주도의 해군기지를 밀어붙이겠다는 얄팍한 꼼수다. 하지만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면 할수록 탈북자의 안전은 더욱 위협을 받는다. 해군기지가 이어도를 지키는 교두보라는 주장은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을 선동해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조용한 물밑외교가 더 실속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권력에 장악된 미디어에게 공정한 보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지진과 해일로 건물이 파괴되는 영상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공포, 방사능의 실체를 파헤치는 언론을 기대한다. 연예인의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만이 아니라 구럼비를 살려내라며 30여일을 옥중단식 중인 영화평론가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바다를 지키는 대양해군의 위엄뿐 아니라 강정마을 사람들이 왜 그들을 해적이라고 부르는지도 알고 싶다. 정권의 언론장악을 저지하겠다며 거리로 나선 방송인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날을 간절히 희망해 본다.

신이철(이편한치과 원장,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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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석 2012-03-23 14:44:29
이런 때일수록 지금 언론 노동자들의 파업 확대와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시민사회의 투쟁과 단결이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의동 2012-03-23 10:18:51
영유권 분쟁 문제가 높이 떠들수록 실질적으로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 시의 적절하고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시라는 생각이 드네요...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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