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54]재벌들의 밥그릇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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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54]재벌들의 밥그릇 들여다보기
  • 전민용
  • 승인 2012.03.2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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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의 밥그릇, 곽정수, 홍익출판사

 

스타벅스(신세계), 엔제리너스(롯데), 투썸플레이스(CJ), 더카페(이랜드), 아티제(삼성), 파스쿠찌(SPC), 닥터로빈(귀뚜라미보일러) 등 귀에 익숙한 커피전문점들 중 상당수가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상위 20대 재벌의 계열사 수는 2010년 말 기준 859개이다. 2002년에 비해 67%(345개)나 급증한 것이다. 외식업은 물론 와인, 온라인 교육, 막걸리, 골판지, 웨딩, 먹는 샘물, 장례, 콜택시, 학원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중소기업, 자영업, 서민들의 밥그릇까지 뺏고 있다.

▲ 재벌들의 밥그릇, 곽정수, 홍익출판사
유망 기술 벤처회사의 박사장, 심혈을 기울여 IT부품 개발에 성공해 국내굴지의 전자업체 A사에 납품 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린다. 어느 날 갑자기 A사는 거래 중단을 통보한다. A사의 계열사인 B사가 박사장이 개발한 것과 유사한 IT부품 기술을 특허출원하고 이미 이 부품을 A사에 납품하고 있었던 것. 박사장은 A, B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박사장은 허탈할 뿐이었다. 회사는 이미 망했고, 손해배상은 손해액에 턱없이 못 미쳤다. 더 큰 문제는 다시 사업을 시작하려면 결국 대기업과 거래해야 하는데 한번 척이 진 중소기업은 다른 대기업도 외면한다. 결국 박사장은 재판에 이기고도 A사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만다. “잘못은 대기업이 해놓고, 피해는 모조리 중소기업에 돌아오는 게 현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기술 개발을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직원 5명의 벤처에서 휴대폰 CDMA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미국의 퀄컴같은 슈퍼스타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영원히 나타날 수 없다.

삼성 그룹 계열사 구매 담당 S씨 인터뷰. “최고 경영자들이 앞에서는 동반성장 대책을 발표하면서 뒤로는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 부품 비중을 높이라고 한다. 국내 부품업체들에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구매 담당 임직원의 인사평가에서 단가 인하 실적이 가장 큰 영향 미친다. 평균 연간 단가 인하율은 20% 이상이다. 협력업체 이익률이 5% 넘으면 추가로 단가 인하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과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투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조차 신기하다.”      

“동반 성장! 자율에 맡겨서는 효과 없을 것이다. 강력한 법과 제도도 안 될 것이다. 대기업은 또 빠져나갈 구멍 찾을 것이다.” “대기업들은 부품 구매를 모두 중국으로 돌릴 것이다. 값싼 인력이 필요한 공장들은 이미 중국으로 다 갔다.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은 결국 다 죽게 되지 않을까?”

“애플은 최고의 부품을 선택하고 제값을 쳐준다. 최고의 혁신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판다. 국내 대기업은 다양한 모델을 개발해서 싼값으로 승부하려 한다. 미래가 밝지 않다.”

어느 재벌 총수의 말. “동반성장 성공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적당한 납품단가를 보장해주는 대신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타협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조의 힘이 너무 세니까 납품단가 깎아서 이익이 나면 다 노조에 갖다 주는 꼴이고 그래서 공장도 해외에만 짓는 것 아닌가.”

하도급 거래의 장점은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협력을 통해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을 도모할 수 있고, 전용 자산에 대한 하도급업체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고, 위험을 분산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요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갖는 대기업의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나 거래상 횡포는 중소기업 성장은 물론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와 대기업 자신의 성장도 저해하는 암적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20년 간 대기업 감시자로 활약해 온 한겨레신문 대기업전문기자의 책이다. 재벌, 대기업, 중소기업 등의 경영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와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삼성과 현대차를 많이 다루었고, 대기업 피죤의 막장경영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실패한 MB노믹스, 급증하고 있는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 문제, 동반성장 정책의 역사와 한계에 대한 분석들도 읽을 만하다.   

저자는 재벌들의 밥그릇을 모두의 밥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대안도 제안한다. 협력사 이익공유제(대기업이 연초 수립한 이익 목표를 연말에 초과 달성했을 때 초과 이익의 일정 부분을 협력사에 나눠주는 제도)가 그 중 하나다.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도 풍부하고, 시장경제 원리에도 잘 맞고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취지에도 잘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한 킴벌리, 포스코 등에서 성공한 삶의 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4조 2교대제도 적극 주장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화두다. 하지만 막상 총선 공천 결과를 보면 빈말이거나 심지어 거꾸로 갈 공산도 커 보인다. 새누리당 후보들은 재벌개혁론자는 전무하고 온통 친재벌론자들 투성이다.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요란한데 이를 실천해 나갈 중심 세력들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재벌 개혁은 재벌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법과 제도로 규제해서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재벌의 힘이 너무 크고 기득권 구조는 강고해서 개혁을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적인 집중력이 필요하다. 동시다발적이고 장단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적법한 경영과 승계, 엄정한 법 집행, 일감 몰아주기 근절, 출자총액제한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진출 업종 제한 확대, 집단 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납품단가 연동제, 업종별 협동조합에 협의권 부여, 이익 공유제 등의 시행과 중장기적으로 이런 제도들과 연관해서 우리 현실에 적합한 기업집단법 제정으로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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