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55]대중의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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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55]대중의 직관
  • 전민용
  • 승인 2012.04.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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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직관, 존 L. 캐스티, 반비

 

우연 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테러나 전쟁, 폭동 같은 극적인 사건이 역사의 추진력이라는 통상적인 견해가 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정반대이다. 모든 집단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미래에 대한 집단의 신념과 감정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를 이루려는 인간의 본능적 충동에 의해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집단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 이 분위기는 나중에 겪을 집단적인 사건의 방향을 한 쪽으로  격렬히 몰아간다. 이것이 역사를 끌어가는 주동력이고 이 과정에는 예측 가능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천루 지수(Skyscraper Index). 역사적으로 마천루 건설사업과 금융위기는 기이한 상관관계가 있다. 대부분 주가지수가 치솟는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공사가 끝났을 때는 예외 없이 주가지수가 폭락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25개 중 19개가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저자는 2009년 부지 굴착 공사가 끝나고 2015년에 완공 예정인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한국의 ‘롯데월드타워 123’을 언급하며 곧 한국의 주식시장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측한다.

시사평론가들은 선거철만 되면 선거 결과가 주가에 미칠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한다. 하지만 특정 정당, 후보, 정책 등이 상승장이나 하락장을 야기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반대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재임한 모든 경우에 주식시장의 동향은 상승세였고, 현직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차로 패한 모든 경우에는 하락세였다. 저자에 따르면 오바마의 재선 여부는 2012년 투표까지의 주식시장 상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가을 엔론이 파산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의 파산 규모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엔론의 파산과 회계 부정으로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했고 월가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논리가 옳다면 회계부정과 파산신청 이후에 시장이 급락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는 엔론 스캔들 이전 18개월 동안 시장은 39% 하락했고, 스캔들이 터진 이후는 오히려 10% 이상 올라 1년 동안 그 수준에 머물렀다.
엔론효과는 스캔들은 하락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뒤늦은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엔론 파산이라는 사건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락하는 주식시장에 반영된 부정적인 사회분위기가 엔론 파산이라는 사건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분위기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미래에 대한 느낌이다. 사회적 분위기는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 인구집단 또는 사회의 미래에 대한 느낌이다. 보통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로 볼 수 있지만 늘 변화할 뿐 아니라 강약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더 세분하면 상승하는 긍정적 분위기는 희망으로, 최고조에 달한 긍정적 분위기는 오만으로, 쇠퇴하는 부정적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바닥을 친 부정적 분위기는 절망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측정하는 잣대로는 여론 조사, 설문 조사, 연간 출생아 수, 인터넷 검색 동향, 금융 시장 지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저자는 금융 시장 지수를 한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의 대용물로 이용하자는 주장을 한계는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다른 주장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저자는 미국뿐 아니라 브라질의 보베스파지수와 일본의 니케이지수의 움직임과 주요 발생 사건과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이 주장의 타당성을 설명한다.

유행의 탄생은 사회적 분위기와 직접 연관이 있다. 패션 동향이 짧은 치마를 요구한다면 경제 호황기가 돌아온다는 의미이고 치마 길이가 길어진다면 경제가 나빠진다는 뜻이다. 불황기에는 식당에 잘 생긴 남녀 웨이트리스가 많다. 긍정적 사회 분위기에서는 검은색, 흰색, 은색, 붉은색처럼 강하고 대담한 자동차색이 주로 등장한다. 부정적인 시대에는 초록, 갈색, 베이지색 같은 칙칙한 색이 많다. 영화도 부정적 분위기에서는 공포, 폭력, 재난 영화들이 인기이고, 긍정적 분위기에서는 디즈니 에니메이션이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영화들이 뜬다. 음악, 스포츠, 커피하우스까지 이런 사례가 다양하게 다루어진다.

이 책의 후반부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장, 중, 단기적으로 일정한 패턴을 가진 파동을 그리므로 일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사용한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암흑시대 이후 1000년간 지속된 상승세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추정한다. 중단기적으로도 1930년 이후의 상승세가 꺾이며 2007년을 기점으로 수십년에 걸쳐 급격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부정적인 분위기가 주도하고 불화, 분노, 음울함, 배척, 분리주의 같은 단어로 분류할 수 있는 사건들이 일어날 거란다.

저자는 침체기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고 하락세의 파동 때마다 밝은 희망이 나타나고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다고 위안한다. 우리 역사가 맞고 있는 사회적 쓰나미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집단행동을 모색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상승할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미래의 위험한 직업과 유망한 직업군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주장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결과적으로는 허구로 판명될 수도 있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책의 내용 중 과거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 많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가면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이 더 든다. 무리 짓는 본성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회분위기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너무 미흡하다. 파동법칙성까지 고려한다면 인간 집단을 너무 수동적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사회분위기(금융지수)도 호황기와 불황기에 나타나는 집단 심리 연구 차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의 현상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근대의 합리성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면서 인간과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다. 게임 이론, 경제 물리학, 사회물리학에 이 책의 주제인 사회경제학과 책에서 함께 소개하고 있는 역사심리학도 그런 학문들이다. 인간의 집단 심리와 사회의 작동 방식, 미래 전망에 대한 설명의 한 가지 길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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