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57]제이, 너의 모습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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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57]제이, 너의 모습 그리며~
  • 전민용
  • 승인 2012.05.02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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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문학동네

 

제이는 1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지만(죽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특이하고 강렬한 족적을 보여준다. 제이는 온갖 사람들이 오고가는 강남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난다. 10대 미혼모인 제이의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제이를 제거하려 하지만 큰 울음소리 때문에 실패한다.

제이는 구멍가게를 하는 돼지엄마라는 여인이 데려가 키운다. 둘은 이 소설의 중심 화자인 동규네 다세대주택으로 들어가게 되고 제이와 동규는 단짝이 된다. 돼지엄마는 술집 주방과 식당을 전전하다 뽕쟁이를 만나고 제이를 방치한다. 제이는 결국 홀로남아 재개발지역에서 살아가다 보육시설로 끌려간다. 제이는 보육시설을 탈출해 서울로 간다. 가출한 아이들과 생활하고 거리를 혼자 떠돌다 폭주족의 리더가 된다.

동규는 어린 시절 실어증에 걸린다. 가족 포함 모두들 동규를 벙어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터지고 장애인 학교를 떠나 제이가 다니는 일반 학교로 옮긴다. 동규는 사방이 조용하던 장애인 학교가 항상 그립다. 동규의 가정 역시 평탄하지 않다. 가정에 소홀한 경찰 아버지와 삼촌과 눈이 맞은 엄마는 동규에게 큰 상처를 준다. 부모는 이혼하고 새엄마와 살던 동규는 가출 하고 제이가 이끄는 폭주족에 합류한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동규가 본 제이의 이야기다. 동규가 꼼꼼히 기록을 잘 하는 아이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동규의 기억과 기록에 의존해 작가는 소설을 완성한다.

동규가 보는 제이는 범상치 않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친구다. 제이는 동규가 말을 못할 때도 표정과 느낌만으로 자기를 읽고 대변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런 동규의 느낌이 복합되어 소설 속 제이는 보통의 인간을 넘어서는 도인이나 신적인 분위기와 풍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제이라는 이름부터 지저스를 연상하게 한다. 태어난 강남버스터미널 화장실과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도 비슷한 곳 아닐까? 보육원의 독방 감금에서 시작된 신비로운 경험 이후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빙의하기도 하고 타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기도 한다. 8.15 대폭주 마지막에 제이가 오토바이와 함께 강물에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수백 명의 폭주족들이 주장하기도 한다.

가출한 중고생 또래 애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더럽고 좁은 집에, 소주병과 닭뼈가 뒹구는 방, 밤마다 술을 마시고 난장을 까는 어린 남녀들, 별것 아닌 일로 주고받는 잔혹한 폭력. 몇몇 그룹을 거치고 제이는 그 세계를 떠나 혼자가 된다. 한데서 자고 음식은 쓰레기통을 뒤졌다. 처음엔 설사를 자주했지만 나중에는 장이 적응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며 제이는 열일곱이 된다.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았고, 하루에 한번 생쌀을 씹는 것으로 섭생을 끝냈다. 최소한으로 먹고 조용히 움직였다. 재활용품 책들도 읽었지만 하루의 대부분은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하며 보냈다.

서울에 온 첫날 만났던 목란과 재회하면서 제이는 목란을 따라 자연스럽게 폭주족의 일원이 된다. 제이는 오토바이를 늦게 배웠지만 금방 오토바이와 한 몸이 된다. 제이의 타고난 재능과 신비로운 분위기 탓에 제이는 폭주족들의 우상이 되고 왕처럼 군림하게 된다. 제이는 폭주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것도 이해받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우리를 미워하는 세상에 대해 그들을 열 받게 하고 우리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이는 폭주를 일종의 미적 체험이자 행위예술로 생각한다. 도시의 거리에 굵고 힘찬 붓질을 수천수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전개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 등 읽는 재미가 있다. 사회의 이면을 상식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열어 보이므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한계를 넓혀주는 미덕도 있다. 기꺼이 일독을 추천할 수 있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읽기를 끝내고 소설이 주는 감흥을 이리저리 느끼고 생각하다가 몇 가지 의문도 생겼다.

도인 같은 인간이 되는 제이의 모습이 혼자일 때는 어느 정도 공감되지만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가출한 아이들이나 폭주족 멤버들과의 관계 설정이 평범과 특수 사이에서 애매하다. 자극적인 집단 혼숙, 폭주족, 게이 경찰관 등이 무리하게 끼워 넣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 상업성을 고려한 발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동규나 목란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될 만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인데 개인사와 인물의 개성이 따로 노는 느낌도 든다. 동규의 자살도 개연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소설의 제목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설은 작가 후일담 형식의 글을 말미에 넣고 있다. 이 소설을 쓰는 작가와 작가의 대학시절 애인 Y를 등장시키고 Y를 통해 작가가 동규를 만나 얘기를 듣고, Y와 제이는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은 소설의 부족한 사실감을 보완해주는 구성이었다. 소설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어른으로 보이는 Y를 통해 본 제이의 모습도 제이의 존재적 현실감을 더 느끼게 해 주었다. 빼빼 마르고 키가 훌쩍 커버린 제이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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