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61]인간은 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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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61]인간은 야하다!
  • 전민용
  • 승인 2012.06.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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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야하다-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인간 본성의 비밀, 더글러스 T. 켄릭, 21세기 북스

 

30년 동안 써온 책! 진화심리학자인 저자가 학부 시절부터 가졌던 의문과 추론에서 시작하여 실험과 관찰을 통해 하나의 이론으로까지 정립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애리조나주립대학 학생 시절, 휴식 시간에 엄청나게 오가는 학생들을 볼 때는 여학생 대부분이 모델처럼 예쁘게 보였다. 그런데 인파의 흐름이 줄어들자 평범하게 생긴 여학생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의 ‘주의’가 선택적이라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남성들이 군중을 훑어 볼 때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시선이 고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30년 후 개발된 시선추적기를 통한 연구는 그 이상의 많은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남학생들은 아름다운 여성을 평범한 여성보다 두 배 정도 오래 응시했고, 이후 특정 미녀를 보았는지 여부를 정확히 답했다. 남학생들이 남성으로 이루어진 군중을 본 경우에는 잘생긴 남성과 평범한 남성을 응시한 시간이 비슷했고, 잘 구별하지도 못했다. 여학생들도 남학생들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더 오래 응시했고, 기억도 잘 해냈다. 남성 집단에 대해서는 잘 생긴 남성을 더 오래 쳐다보았지만 남학생들과 달리 잘 기억하지는 못했는데 주의를 더 기울일수록 더 잘 기억한다는 일반적인 연관성을 깨는 결과였다.

여러 가지 연구 결과 아름다운 여성은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고 인지 과정까지 독점한다. 그러나 잘생긴 남성은 여성의 시선을 끌긴 하지만 마음까지 사로잡지는 못한다. 정신적 과정이 진행되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 차이는 남녀 간의 다른 짝짓기 전략과 상통한다. 인간의 마음은 미녀와 권력자를 찾아내게 되어 있다. 우리조상들은 마을의 미녀를 짝으로 맞거나 거물들의 짝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성의 지위와 짝짓기 시장에서 남성이 갖는 가치관 사이의 연관성은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 선택과 차등적 부모 투자라는 두 가지 원칙과 관련 있다. 차등적 부모 투자 원리는 자녀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성이 배우자 선택에 더 신중한 경향을 보이고 다른 성별은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에서 적용되는 원칙이며 인간은 여성이 더 신중하게 남성을 고른다.

여러 종의 수컷들은 짝짓기 계절 직전에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다. 인간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최고조에 이르고 애인 때문에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공격성은 위험하고 대가도 크기 때문에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지위를 얻을 다른 방법이 없을 때만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한다고 한다. 더구나 여성은 폭력성을 싫어하므로 여성 앞에서는 예의바르게 행동 하려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훨씬 잘 구별하고, 외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잘 구별하지 못하는 ‘외집단 동질성’이라는 심리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외집단의 구성원 중 한 명이 화가 나 있을 경우에는 달라졌다. 백인들은 화난 흑인의 얼굴을 어떤 다른 표정의 백인의 얼굴보다 잘 기억했다. 외부 집단 구성원의 화난 상태는 생존의 위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생존이나 번식 성공과 연관된 사람에 특별한 관심을 둘 공간을 마련한다고 볼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두려움, 질병, 위협 등에 따라 인종차별주의 같은 특정한 고정 관념이나 편견이 촉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유발하는 기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합리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자연론적 오류’는 자연적인 것과 좋은 것을 혼동하는 것이다. 자연계의 자연재해나 질병들처럼 인간의 행동도 자연적인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타 집단 구성원에게 갖는 편견과 심해지거나 약해지는 원인을 이해해야 편견을 줄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20대에 가장 생식력이 뛰어나다. 남성의 눈길을 끄는 엉덩이, 가슴, 머릿결 등은 생식력을 나타내는 신호들이다. 남성들이 연하의 여성을 선호하는 이유는 생식력을 나타내는 신호에 강하게 편향되어 있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들은 음식과 안전 등의 자원들을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남성을 찾을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자원과 사회적 지위를 쌓아가므로 여성은 연상의 남성을 선호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더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 패턴이 노인이 될 때까지 평생 계속되었다. 그러나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나이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10대 소년들은 약간 나이가 많은 대학생 정도의 여성들에게 가장 끌리고 25세 남성은 20-30세 사이의 여성에 관심이 있었다. 더 나이를 먹을수록 남성은 점점 더 어린 여성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45세 남성은 5-15세 정도 어린 여성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런 연령 선호는 사실 나이 자체와는 무관하다. 여성들은 자식들에게 신체 자원을 제공하므로 남성들은 생식력과 건강에 관련된 단서들을 찾고, 남성들은 자손들에게 간접 자원을 제공하므로 여성들은 능력과 관련된 단서를 찾는다. 이런 단서가 경향적으로 나이와 연관되어  있을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뇌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다른 규칙을 사용한다. 머리는 하나의 통일된 자아가 아니라 여러 개의 하위 자아들의 연합체이고 각각의 하위 자아들은 한 가지를 잘할 수 있도록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협동가 하위자아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나누는 것 등을 관리한다. 야심가 하위자아는 존경과 지위, 야경꾼 하위자아는 자기 방어나 위험, 강박증 환자 하위자아는 위생이나 질병에 관한 문제에 반응한다. 자유분방한 싱글 하위자아는 짝을 찾는데 관심 있고, 훌륭한 배우자 하위자아는 짝을 유지하는 일, 부모 하위자아는 가족 돌보기를 관리한다.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보통 한 가지 하위자아가 장악한다. 폭력배를 보면 야경꾼 하위자아가 앞에 나와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생각에 집중한다. 이웃과 친구가 되어 친밀한 관계, 자기 방어, 가족 돌보기 등을 공통의 목표로 갖는 하위자아들도 있다. 자유분방한 싱글과 훌륭한 배우자처럼 서로 대립하는 목표를 가지기도 한다. 우리의 머리는 컴퓨터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공유하며 특정 작업을 할 때도 운영체제 핵심코드의 대부분을 사용한다.

유명한 매슬로의 욕구피라미드는 배고픔, 목마름 같은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 사랑(애정과 소속), 존중(존경)의 단계를 거쳐 꼭대기인 자아실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보기에 이 견해는 삶에서 번식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최상단에 있는 동기들을 생물학과 무관한 고차원적인 문제로 추상화 해버린 한계가 있다. 인간이 내적인 만족과 기쁨을 위해 이루는 고매한 자아실현이라 해도 그 결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새 욕망피라미드는 꼭대기의 자아실현을 하위인 존중의 욕구 범위에 넣는다. 그 대신 꼭대기는 번식과 관련된 양육이 들어가고 그 아래는 배우자 유지, 배우자 찾기가 차지한다. 매슬로 피라미드의 생리적 욕구에 포함된 성욕은 배우자 찾기 범주에 들어간다. 그 아래로 지위/존중, 소속감, 자기방어, 생리적 욕구 순으로 배열된다. 또 상위의 욕구는 나중에 발달하긴 하지만 하위 욕구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하위 욕구들 역시 변형된 형태지만 평생을 따라가는 것이다.

기능적 차원에서 우리의 행동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먹기, 위험에 대처하기 등은 짝을 찾을 때까지 생존하기라는 더 높은 목표에 부합한다. 친절하고 존경받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짝을 찾는 상위의 목표에 적합하며, 짝을 찾고 함께 노력하는 것은 자녀를 갖고 양육하는 더 높은 목표에 적합하다.

진화론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애정 동기에 대한 반응으로 과시를 한다. 남보다 더 돈을 쓰고, 영웅처럼 행동하고, 멋지게 보이는 수단으로 집단의 의견에 단호히 반대하고, 예술적 창조성을 뽐낸다. 여성의 과시적 소비 역시 외적으로 매력적이고 건강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일단 배우자 선택을 생각한 후에는 돌보는 욕구를 높여 양육 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과도한 과시는 상대로부터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도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만큼이나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이나 손자들에게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 같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많은 선택들도 실제로는 ‘심층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의사 결정이 본성에 따른 심리적 편향을 보이지만 제멋대로나 순간적인 개인의 만족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인 유전적 성공을 극대화하도록 짜여진 정신적, 심리적 기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지나치게 어둡고 이기적인 측면의 인간 본성에 집중한다는 비판에 대해 이기적인 유전자가 반드시 이기적인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고 답한다. 극도로 사회적인 종족인 인간은 동료와 협조하는 상호이타주의 역시 진화생물학의 근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 인종주의, 유전자 결정론 같은 것을 퍼뜨리는 보수주의적 학문 아니냐는 비판에도 이런 문제를 극복할 정확한 방법을 찾기 위해 객관적 사실을 추구할 뿐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들이 더 진보적임을 강조한다. 

인간에게는 좋은 본성과 나쁜 본성이 있다. 더 세분하면 발전시켜야 할 본성, 즐길만한 본성, 참아줄만한 본성, 시대와 맞지 않는 본성, 절제해야 할 본성, 억눌러야 할 본성 등이 있을 것이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동물적 본능에서 기원한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잘 이해하고 다루고 제도화 한다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더 정확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 시대 정신에 맞게 좋은 본성은 억누르지 않거나 발전시키고 나쁜 본성은 제어할 균형 잡힌 윤리와 규칙과 법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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