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설탕과잉의 시대와 구강건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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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설탕과잉의 시대와 구강건강정책
  • 정세환 논설위원
  • 승인 2012.07.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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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환 논설위원

 

최근 대통령 예비후보들과 각 정당은 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한 다양한 공약들을 쏟아낸다. 이에 상응하여 각계각층은 자신이 속한 영역의 과제를 제시해 유력후보와 정당의 공약으로 채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건치를 비롯한 치과계에서는 지난 총선에 이어 불법네트워크치과 척결과 영리병원 반대, 아동청소년 치과주치의제 도입, 치과전문의제 개선, 치과의료정책관 설치 등의 과제들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가 국민 구강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제들임에 분명하나, 우리나라가 당면한 구강건강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치아우식증은 우리나라에서 지난 10여 년간 아동·청소년시기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생애에 걸쳐 30%전후의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가장 중요한 구강건강 문제이다. 이는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 추진과 불소치약 대중화, 치아홈메우기사업 추진과 보험화 등의 성과인 동시에 한계가 드러난 결과이다.

 세계보건기구가 2003년도에 발표한 전 세계 구강건강 보고서에서 보이듯이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 서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 등 다수의 선진국들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된다(그림 1, 2 참고). 이들 선진국에서도 20세기 하반기에 치아우식증 예방을 위해 집중했던 불소이용과 예방서비스 확대만으로는 제한된 성과를 거둘 뿐이었다는 것이다.

▲ 그림 1. 전 세계 12세의 우식경험 영구치아 수 분포 (자료출처: WHO. World oral health report 2003)* 녹색-매우 낮음 <1.2개, 하늘색-낮음 1.3-2.6개, 노란색-중간 2.7-4.4개, 빨간색-높음 >4.4개, 흰색-이용할 자료 없음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일각의 구강보건학자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며, 치아우식증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탕과잉의 시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아우식증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인 설탕소비 과잉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에 불소이용과 예방서비스 확대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림 2. 전 세계 성인(35-44세)의 우식경험 영구치아 수 분포(자료출처: WHO. World oral health report 2003)* 녹색-매우 낮음 <5.0개, 하늘색-낮음 5.0-8.9개, 노란색-중간 9.0-13.9개, 빨간색-높음 >13.9개, 흰색-이용할 자료 없음
설탕소비량이 매우 낮은 상당수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에서 전 연령계층에서 치아우식증 발생이 극히 낮고, 비교적 충분한 불소이용과 예방서비스 공급이 이루어지나 설탕소비량이 높은 선진국들(표 1 참고)에서 아동·청소년시기의 치아우식증 감소에도 불구하고 성인기 이후 유병률이 심각하다는 세계보건기구의 2003년도 구강건강 보고서의 결과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그림 1, 2 참고).

그런데 선진국에서 설탕섭취 과잉이 치아우식증의 원인이므로 이를 줄여야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진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지난 세기에 어떤 환자든 치과를 찾으면 "단 것 줄이시고요, 이를 꼭 닦으세요"라고 치료의 마지막에 반복적 당부를 받았다는 것을 떠올려 보라.

오늘날 이러한 당부는 주로 어린이에 국한되어 이뤄지는데, 치과의사의 태만이 아니라 설탕이 치아에 좋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 중의 상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야말로 설탕섭취 과잉의 문제를 상식에 의한 개인의 노력의 범주에만 놓아두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노력에 의한 개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 표 1. 전 세계 주요국들의 1인당 연간설탕소비량 변화 추이 (단위: ㎏/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서 상식의 확산 속에 설탕 자체를 섭취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청량음료를 비롯한 이온음료, 건강음료 등의 각종 시판 음료수와 먹음직스러운 빵과 과자에 첨가된 상상을 뛰어넘는 양의 설탕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에 과잉섭취를 야기한다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있다(표 2 참고).

심지어 이들 시판음식들은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매년 판매량을 늘여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설탕과잉에 대한 대처는 설탕산업에 대한 개입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한 사회에서 설탕산업이 부흥하는데 설탕소비량이 줄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 표 2. 시판 커피 및 음료의 설탕첨가량 * 차 숟가락 한 스푼의 용량은 약 3g임
설탕과잉에 대한 사회적 개입 방식은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담배정책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다.

식품과 음료수의 설탕 성분 표기를 철저히 하도록 규제하고, 학교 등 집단시설에서 설탕이 첨가된 음료수 자동판매기의 설치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학교 매점과 일정범위의 인근지역 내 상점에서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식품과 음료수를 쉽게 살 수 있게 하며, 설탕 첨가 상품의 진열을 제한하는 정책이 유용할 수 있다.

어린이 주 시청시간에 설탕식품의 TV광고를 제한하는 정책도 가능하다.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무가당 우유에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던지, 지나치게 높은 설탕 첨가 식품에 추가의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탕과잉에 대한 이러한 정책들은 담배정책과 달리 선진국에서조차 여전히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설탕이 여전히 유용한 에너지원이기도 하여, 설탕과잉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설탕산업의 지대한 영향력을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지난 5월24일에 최근 3년간('08년~'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와 외식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하여 우리 국민의 설탕 섭취량을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설탕섭취량이 23%가량 증가했고 주식보다는 가공식품을 통한 섭취비중이 증가했으며 중고등학생 시기부터의 섭취량이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설탕수급표에 의한 1인당 하루 평균 설탕섭취량은 2005년에 이미 71g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권장량인 50g을 이미 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설탕과잉의 시대에 진입한 우리 실정에 맞지 않게, 우리 정부는 작년 9월에 서민밀접 품목 등에 대한 기본 관세율을 인하한다는 취지아래 35%이었던 설탕 관세를 5%로 대폭 낮추어 해외 설탕산업의 유입을 촉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캐나다 113%, 유럽연합 85%, 일본 70%, 미국 51% 등의 높은 관세율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은 관세율로 인해, 우리나라로의 설탕유입은 더욱 촉진될 것으로 추정된다.

설탕과잉의 시대에 진입한 우리나라로서는 선진국에서 경험하였듯이 이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동·청소년시기의 일부 개선을 보인 치아우식증의 증가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주된 사망원인이 되는 비만, 당뇨, 고지혈증 등의 위험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치과의료인은 설탕과잉에 따른 문제에 가장 먼저 대처했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과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에 설탕과잉 시대의 도래와 그에 따른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 국민 구강건강 향상을 넘어 전체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치과의료인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유력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현 시점이야말로 이러한 주장을 펼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이다. 따라서 이미 제안된 과제와 더불어 설탕과잉 시대의 구강건강정책이 적극 제안되길 기대한다.

 

정세환(본지 논설위원, 강릉원주대 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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