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맛보기]품격은 안 보이는 신사의 품격
상태바
[TV맛보기]품격은 안 보이는 신사의 품격
  • 전민용
  • 승인 2012.07.06 12:47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고

 

40대 중년들의 가슴 속 로망과 욕망을 드러내는 신사의 품격이 인기다. 네 남자의 우정도 성공도 사랑도 부럽고, 그 나이에 싱글인 것도 부러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멋진 배우들과 맛깔난 대사들과 빠른 전개 등 인기를 끌만한 요소들도 많다.

그런데 실제 드라마를 보다보면 몸은 40대인데 생각이나 행동은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20대를 보는 느낌이다. 남녀 주인공들의 성격도 앞뒤가 안 맞고 허점들이 많다. 불혹을 넘긴 40대의 품격 있는 사랑을 남은 방송에서도 기대할 수 없을까? (그동안 방송된 드라마를 다 보지는 못하고 쓴 글임을 감안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보지 못한 부분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판단이나 전체적인 이견에 대해서는 댓글을 통해 지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고교 윤리교사인 서이수(김하늘 분)부터 생각해보자. 이수는 오랫동안 태산(김수로 분)을 남몰래 짝사랑 한다. 도진(장동건 분)의 집요한 사랑 고백을 받고 약간 흔들리는 것도 같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한바탕 갈등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도진과 사귀게 된 이수의 발언들(“원하는 집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집” “내가 싫어하기 전에 먼저 나를 싫어하지는 말아 달라”)을 볼 때 이수는 아마도 부모 때문이겠지만 연인이나 부부 관계가 깨지는 상황이나 남녀 관계에서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진출처 = SBS '신사의 품격' 홈페이지>
태산이 자기 친구 세라(윤세아 분)의 연인이라지만 불같은 세라의 성격 상 몇 번은 만나다 헤어졌다 했을 것이다. 더욱이 태산의 동생이자 애제자인 메아리(윤진이 분)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다. 그럼에도 태산과의 관계를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어쩌면 오랜 시간 태산을 짝사랑만 한 것도 실은 진짜 사랑이 두려워서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짝사랑 사실이 밝혀진 후에 친구 세라나 남자들과의 관계가 불편해 질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깊은 생각 없이 태산을 포기해 버리는 모습에서도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윤리교사로서 생각이 깊고 합리적인 그녀가 그렇게 오래 짝사랑을 했다면 최소한 그 사랑이 진심인지, 이렇게 쉽게 마음을 정리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 자문해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자기를 몰아붙이는 친구 세라가 미워서라도 태산의 자신에 대한 속마음을 확인해 보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마음을 정리해 버린다. 여기까지는 드라마 주인공은 친구의 애인을 뺏어서는 안 된다는 진부한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해서 식상하긴 했지만 이수의 성격이 그러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수는 사랑 자체나 사랑 이후의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여자다. 포기는 쉽게 할 수도 있지만 진짜 사랑을 시작하려면 이런 마음을 깨닫고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에 도전할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한 과정이 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이수는 그저 알고 보니 도진을 사랑한 거였다는 확인만으로 도진에게 달려간다. 사랑하는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이수의 진짜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더구나 자기를 사랑한다고 했던 도진이 태도를 바꿔 이수를 피하는데도 이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오히려 도진에게 집착한다. 현실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자기 내면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갖지 못한 이수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이수 같은 타입은 사랑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중요하고 도진이 그런 부분에 대해 믿음을 주는 과정이 필요 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심지어 이수 같은 여자가 가장 싫어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성욕 때문에 다른 여자와 잠자리 갖기’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이수는 쿨하게 받아들인다. 이수가 20년 전의 첫사랑은 질투하면서 아주 최근에 잠자리를 하는 젊은 미녀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해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수의 남자 도진은 어떤가? 단순히 봐도 그렇게 짝사랑에 집착 하고, 사소한 질투에 눈이 멀어 교통사고를 내는 모습은 40대가 아니라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최고조에 달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모습이다. 40대의 품격은 그것이 사랑을 하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 특히 성공한 40대라면 학창 시절 이후 대부분의 삶을 사회가 요구하는 바른 생활 사나이로 살아왔을 것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좌파 바른생활 사나이였을 것이고.

그런 40대가 품격 있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섹스를 중요시한다고 해도 사필귀색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방식의 대화와 사랑이 품격 있는 사랑 아닐까? 섹스는 하지만 사랑이나 결혼은 하지 않는다는 혼자만을 위한 독신을 고집하다 갑자기 이수에게 푹 빠지고 금방 청혼을 하는 배경과 근거도 이런 성찰과 연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변화의 과정 없이 짝사랑하다가, 이수가 자기를 바라볼 때는 모른 척 하다가, 다시 사랑 모드로 들어가는 설정은 그저 재미를 위한 작위적인 ‘밀땅’(밀고 당기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김민종 분)의 사랑.

20대 중반의 아빠 없는 메아리가 많은 나이차를 두고 윤에 대한 사랑에 빠진 것은 윤이 자상한 아빠의 역할을 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오래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 윤의 행동은 그렇게 자상해 보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차가운 인상이고 태도다. 자기에게 매달리는 메아리에게도 의도적이긴 하지만 너무 무시하고 상처를 준다. 그래서 메아리가 왜 윤을 그토록 사랑하는 지 잘 이해가 안 가고 윤과의 관계는 계속 어색해 보인다. 합리적인 설정이고 품격 있는 사랑이라면 자상한 성격의 윤이 친구 동생인 메아리를 여자로 사귀지는 않더라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만나주고 천천히 정리하도록 배려해 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선을 넘으려고 하는 것만은 품격 있게 제어하면서.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윤이 메아리 근처에 나타난 옛 동창 은희의 아들 콜린(이종현 분)을 보고 갑자기 질투에 빠지고 둘이 있게 하지 않으려고 집에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질투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왕성한 20대의 모습이지 원숙한 40대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랑을 확인하는 이유가 그저 애매한 상황에서의 그 흔한 질투심 확인이라니 식상할 뿐이다.

메아리의 캐릭터도 너무 철이 없다. 나이는 25세인데 정신 여령은 15세 같다.(이 드라마는 나이와 정신 연령이 대체로 따로 논다.) 고딩인 콜린에게조차 만만히 보이고 반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좀 문제가 아닌가? 품격 있는 40대 중반과 어느 정도 원숙한 25세라면 몰라도 15세 같이 철없는 25세 여자와 40대 남자라면 그저 본능적인 욕망이지 불혹을 넘긴 40대의 품격 있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프로골퍼 세라가 태산의 청혼을 받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도 좀 아니다싶다. 여성에게는 그것도 나이 먹어 혼자 사는 여성에게는 삶의 안정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친구 이수가 집 나갈 경우 돌려줄 돈도 없어 상금타서 주겠다고 하는 걸로 보면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나이로 보아 프로골프 은퇴시기도 다가왔다. 그런데 능력 있고 자상하기까지 한 태산의 청혼을 그렇게 단번에 거절할 수 있을까? 보통 여성은 남성보다 배우자를 고르는데 훨씬 신중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이 한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결혼 하면 아이 낳으라고 할 거고 그러면 프로골퍼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유는 은퇴를 앞 둔 40 무렵의 골드미스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 문제는 결혼 하고서도 얼마든지 늦추거나 정말 낳고 싶지 않다면 피해갈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 <사진출처 = SBS '신사의 품격' 홈페이지>
태산이 세라를 사랑하는 이유도 갸우뚱하다. 결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면 이수 같은 여자가 더 제격이다. 드라마 중에서 세라가 섹스 문제에서 태산을 리드하거나 태산의 욕구를 잘 채워주는 것 같지도 않고 성깔까지 사납다. 태산이 이런 세라에게 일편단심인 것은 처음 콩깍지가 씌운 3개월 정도의 기간이거나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20대에나 어울리는 설정이지 불혹을 넘긴 40대의 품격 있는 사랑은 아니다.

정록은 친구들 중 제일 공부를 못했지만 여성들에게는 제일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인기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대학 시절 정도부터는 정록의 혼자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정록 같이 잘생기긴 했지만 능력은 없으면서 과잉 과시형 인간을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했을지 의문이다. 정록은 어린 시절 (특히 어머니의)애정이나 인정을  충분히 못 받고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어떤 여성에게나 멋지고 친절한 남자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나이 많은 민숙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도 돈이라는 안정감도 한 이유겠지만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도 중요했을 것이다.

재산가인 민숙(김정난 분)은 자존심 세고 약간의 허영심도 있다.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정록은 물론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다.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마도 이것과 관련하여 어려서부터 어떤 상처를 받았을 수 있다. 민숙은 늘 외롭다.  또 다시 상처받을까봐 마음을 열지도 못한다. 혼자 잠들기 무섭고 정록이 옆에서 토닥토닥 해주는 것 같은 안정감을 원한다. 처음엔 정록도 그렇게 자상하고 친절한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친절한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는 친절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민숙 스스로가 마음을 열지 않는데 인정 욕구가 하늘을 찌르는 정록이 그 옆에만 예스맨처럼 붙어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록 입장에서는 민숙은 안정을 주는 엄마 스타일도 아니고 성욕을 해결해주는 요부 스타일도 아니다. 드라마 전개 상 조만간 민숙의 진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겠지만 아직은 정말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없다. 드라마적 당위만 빼놓고.

자존심 강하고 허영심도 있는 민숙의 성격이 드러나지만 공감하기 어려웠던 장면 하나만 보자. 민숙은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오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정록이 엄청 멋을 내고 나타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민숙의 친구들이 부러워 할 대상은 잘 생긴 젊은 애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교양을 갖춘 능력 있는 남자다. 오히려 잘 생기기만 한 연하남은 “어디서 제비 한 마리 데려다 키우나”라고 빈정거릴 수 있다. 이런 걸 잘 알고 있을 위치와 나이의 민숙이 자신의 재력으로 정록에게 카페 사장에 더해 더 그럴듯한 지위를 만들어 주는 설정을 하지 않는 작가가 이해하기 어렵다. 바람기 많은 정록에게 자꾸 날개를 달아 주기 싫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날 나타난 정록에게 대단히 만족해하는 민숙을 보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부분에 대한 작가의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민숙 친구들의 남편들을 상대적으로 고지식하고 찌질하게 그리는 쉽지만 진부한 길을 선택했다.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익숙한 사랑 이야기를 재밌고 경쾌하게 그린 드라마다. 시청률의  공식인 출생의 비밀 이야기도 곁들였다. 비슷비슷한 사랑이야기를 네 커플이 동시에 전개하면서 각각의 차이를 만들려다보니 작가의 고민이 컸을 것이다. 다행히 시청률로 평가한다면 드라마는 성공했다. 다만 미혹되지 않는다는 40대의 품격 있는 사랑이라면 사랑의 다양성이나 성숙하고 깊이 있는 사랑의 모습을 더 보여 줄 수는 없었을까 아쉽다.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매우 높은 나이인 40대들의 특징을 살리지도 못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40대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성찰해 보는 품격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땅의 40대들은 언제까지 드라마나 보며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전민용 2012-07-09 18:01:02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같은. 이런 관계를 맺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죠. 태산을 사귈 때는 나타났다가 도진을 사귈 때는 나타나지 않는 일 같은 건 글쎄요...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건 이런 걸 얘기한건데. 이 컴플렉스는 뿌리깊어서 쉽게 없어지거나 하지않고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흔적은 남아 있는게 보통인 것 같아요.

전민용 2012-07-09 17:53:18
그래요 대개의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허점이 많죠. 변뎍스럽고 착각에 빠져 살고. 심리학의 유일한 진리라면 '완벽한 인간은 없다'라는 명제일겁니다. 저도 잘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보통 좋은 소설이나 영화들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나름 일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허점이 많다고 한 건 작가의 주인공들에 대한 심리묘사입니다. 이수가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컴플렉스가 되어 모든

김금령 2012-07-09 16:17:22
대개의 인간들이 앞뒤가 안맞고 허점이 많죠.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