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66]공지영의 의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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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66]공지영의 의자놀이
  • 전민용
  • 승인 2012.08.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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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공지영, 휴머니스트

 

‘안철수의 생각’과 공지영의 ‘의자놀이’가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가히 공안정국이다. ‘안철수의 생각’이 잘 정리된 정답지라면 ‘의자놀이’는 우리사회에 대한 전 과목 문제집이다. 쌍용자동차 이야기에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구조의 모든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2명의 죽음으로 대표되는 심각한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다.

공지영이 쌍용차 문제를 처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13번 째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부터다. 무급휴직자 임성준은 빨리 집으로 와 달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귀가한다. 그는 옷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아내 서미영은 무심한 걸음걸이로 베란다로 나가 그대로 밖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베란다로 나가는 엄마를 빤히 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해고된 지 1년이 흐른 후였다. 다시 1년이 채 안 되어 임 씨가 자살했다. 열일곱, 열여섯 남매는 고아가 되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도 평택으로 달려갔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그녀의 말에 현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빠들은 수시로 자신에 대한 통제가 잘 안 되는 고충을 털어놨다. 헬기에 위협을 당했던 아이들은 지금도 선풍기 소리나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못 견딘다고 한다. 회사에서 쫓겨난 2646명 중 1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가 고도 우울증, 30%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심각한 부분적 기억 장애 등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보여 주었다. 

정혜신에 따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죽음 직전까지 가는 극단적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얻는 심리적 내상이다. 그들은 단순히 해고되고 실직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전쟁터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후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관련된 기억이나 이야기를 하려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통증이 오고 악몽을 꾼다. 서로를 피하게 되고 치료도 쉽지 않다. 이전에 아무리 낙천적이고 심리적으로 튼튼하더라도 예외 없이 걸린다. 자살률도 가장 높다.

1986년 쌍용그룹은 동아자동차를 인수하고 1988년 쌍용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한다. 1998년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의 사정이 악화되자 대우자동차에 매각된다. 2000년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쌍용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2002년에 흑자를 내고 2003년에는 당기 순이익 5897억 원을 올린다.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회사에 대해 정부와 관료들은 신자유주의와 민영화 만능론에 홀려 회사를 팔아야 한다고 굳게 생각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2004년 10월 노조와 금속노조연맹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하이차에 매각한다. 1조 2천억 원에 이르는 쌍용차를 5909억 원에 파는데 상하이차가 실제 지불한 돈은 1200억 원에 불과했다. 상하이차가 네 번에 걸쳐 합의했던 투자는 단 한 건도 지켜지지 않았다. 노조는 상하이차가 기술만 빼돌리고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는 진정과 고발을 계속 했지만 묵살된다. 결국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오자 사측은 일방적인 구조조정 준비에 들어간다.

2009년 1월 8일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법정관리 신청을 의결한다. 이 법정관리 신청은 이상한 점이 많다고 한다. 별다른 개선 노력도 없었고, 부도 위기도 없었고, 재무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정리해고 과정이 불법이라는 혐의도 있는 것은 안진회계법인의 쌍용차 자산평가액이 1년 만에 5177억 원이나 감액된 사실이다. 이 회계보고서 때문에 168%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이 갑자기 561%로 증가하고 980억 원의 당기 순손실 역시 3개월 만에 7100억 원으로 계산된다.

쌍용차의 의뢰를 받아 삼정 KPMG는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2646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 놓는다. 둘 다 우리나라 최대의 회계법인들이다. 이른바 론스타의 ‘먹튀’를 도왔던 삼정 KPMG는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팔 때 주간사가 된다. 이 주간사 중에는 이상득 전의원의 큰 아들이 몸 담았던 맥쿼리 증권의 이름도 보인다. 회계조작을 권장 또는 주도한 혐의가 짙은 안진회계법인은 쌍용차를 매입하는 인도 마힌드라사의 주간사로 다시 변신하고, 현재까지 마힌드라사의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이익의 관계망이다.

새로 출범한 한상균 노조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자구안을 내 놓았지만 무시하고 회사는 정리 해고를 단행한다.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의 43%에 달하는 숫자였다. 정리해고에 대한 기준도 모호했다. 공지영은 정리해고 과정을 보면서 의자를 사람 수 보다 적게 놓고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의자놀이가 생각났다고 한다.

정리해고 확정 발표 20일 후인 5월 13일, 조합간부 세 사람이 30층 건물 높이인 70미터 굴뚝으로 올라간다. 이들은 파업 투쟁이 끝날 때까지 86일 간 거기 머문다. 5월 22일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고, 한 때 1500명 까지 숫자가 늘어나기도 하였다.

회사는 해고 안 된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하여 비인간적인 노노갈등을 부추겼다. “동료가 살겠다고 데모하는데 내가 그들을 욕하는 구호를 외치니 사람이 할 짓인가”며 한탄하던 한 조합원은 관제데모 후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 그 이틀 후에도 희망퇴직자 중 한 명이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다. 해고 시작되고 한 달 만에 다섯 명의 희생자가 나온다.   

6월 26일부터 32시간 동안의 첫 충돌이 있었다. 용역깡패와 구사대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공격했고 노조는 처음엔 스크럼으로 맞서다 결국 쇠파이프로 대항했다. 90여 명 부상, 23명 연행, 2명이 구속되었다. 본관과 노조방송차도 빼앗겼지만 충돌 과정에서 노노간에 되돌리기 힘든 적개심이 생긴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공지영은 유신 시절에 학생 둘을 세워놓고 따귀 때리기를 시키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한다. 장난스레 건드리다 선생이 한 아이를 냅다 갈기며 엄포를 놓으면 결국 서로 독이 올라 있는 힘껏 때리게 되는 잔인한 장면을.

경찰이 투입되고 공장을 전면 봉쇄하기 시작한다. 단수와 단전에 의료진의 출입도 막는다.  인권단체들과 민주노총의 강력한 항의와 요구, 물만이라도 들여보내라는 호소에 사측은 답변한다. “물 먹고 싶으면 나와서 먹어라.” 그 와중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걸리면 집도 다 빼앗긴다는 협박을 받아온 노조 정책부장의 서른 살 아내가 두 아이를 두고 자살한다.

새총으로 쏜 손가락 두 마디만한 볼트가 수시로 날았다. 순간적으로 5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테이저건과 고무로 된 총알을 쏘는 고무총도 사용되었다. 사람을 위협하는 헬기와 거기서 뿌려대는 최루액, 밤새 계속되던 선무방송도 조합원을 괴롭혔다. 그들은 에어컨 냉각수로 하루 한 끼의 밥을 해 먹고 수증기를 다시 모아 마셨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 있는 비상발전기를 도료가 굳지 않게 하는데 사용했고 공장을 정성껏 관리했다. 그들은 다시 일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8월 5일 최후의 전투와 폭력적 진압이 시작되었다.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를 타고 투입되었고 무차별 구타와 연행이 이어졌다. 다목적 발사기라는 신무기도 사용되었다. 경찰들은 넘어지거나 쓰러져 있는 노조원들도 방패와 곤봉으로 집단 구타했다. 영상으로 잡힌 장면들도 끔찍한데 노동자들은 영상은 실제 당한 것의 1/10도 안 된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8월 6일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고 파업은 끝난다. 이 날 합의된 약속들은 이후 단 한 건도 지켜지지 않는다. 96명이 연행되어 2009년 말까지 66명이 구속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평탄한 중류층으로 살던 가족들도 평생 처음 보는 공권력의 횡포 앞에 너무도 깊은 상처를 받았다. 경제적 고통도 매우 컸다. 부상자들의 보험급여는 환수되었고, 가압류와 손배소에 쌍용차 출신은 취직도 안 되었다. 보수언론은 이들을 “회사가 죽든 살든 자기들만 살려는 이기적인 집단, 빨갱이”로 매도했다.

처음 쌍용차 희생자들은 자살 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심근 경색 및 뇌출혈로 스러져갔다. 초기의 몇 건의 자살 기도들은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가 복직을 약속한 일 년이 지난 시점부터 자살자는 급증하고 그 방법도 극단적으로 변한다.

정리해고법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한 기준, 성실한 협의 등 다섯 가지 단서조항이 달려있다. 처음에는 이 조항들이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되었으나 최근 3년 동안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이 단서가 관철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리해고와 관련된 모든 파업은 불법이고 노동자들은 금전적 손해까지 물어야 한다. 유연화라는 명분 아래 해고의 유연화, 빈곤의 유연화, 살인의 유연화, 살인 은폐의 유연화, 인간 경시의 유연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지영은 잘나가던 쌍용차를 헐값에 매각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 관료들과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조작 의혹이 짙은 상하이차의 ‘먹튀’를 방조한 이명박 정권은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회계 법인들, 전 경기도 경찰청장 조현오, 쌍용차의 노무 관리팀, 보수 언론들도 마찬가지로 이에 답하라고 말한다. 

공지영은 재능 기부로 이 책을 썼고, 작가와 출판사의 모든 수익금은 기부된다고 한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중대한 진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쌍용차 문제의 해결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자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일차적이지만 그 이상의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 과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해고가 곧 나락이고 죽음인 현실과 경제 구조와 복지, 정리해고와 정리해고법, 국가 폭력과 인권, 사법 체계, 일자리와 노동, 언론, 대형 회계법인의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과제로 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22명의 죽음이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제 2의 전태일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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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호 2012-08-28 11:08:14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치과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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