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67]김애란의 비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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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67]김애란의 비행운
  • 전민용
  • 승인 2012.09.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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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문학과 지성사

 

소설의 제목인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구름이다. 소설에서 비행운은 고단한 현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희망을 상징한다. 물론 실체적이고 보장된 희망의 세계가 아니라 적어도 절망뿐인 지금 여기는 아니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희망이다. 소설 속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그 흔한 비행기 타고 해외 여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유일하게 큰 맘 먹고 해외여행을 가는 ‘호텔 니약 따’의 서윤과 은지 역시 거듭되는 불운과 갈등 속에 불행한 여행이 되고 만다. 비행운(飛行雲)이 상징하는 꿈이 현실에서는 비행운(非幸運)이 되고 마는 것이다.

소설제목 비행운은 한자 없이 한글로만 적혀있다. 소설은 국어사전에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다가설 수 없는 헛된 꿈인 비행운(飛行雲)이 아니라 국어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행운(非幸運)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 소설집인 ‘침이 고인다’가 20대 전후의 88만원 청춘 세대의 불안과 고단함을 드러내 주었다면 ‘비행운’은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비행운(非幸運)일 뿐 아니라 非트랜디 하다. 매력적인 데라고는 안 보이는 뚱보 미영과 어느새 찌질 하게 변해버린 선배 형만(너의 여름은 어떠니), 재개발 지역에서 전기마저 끊겨 모두 떠나고 최후로 남은 어머니와 나(물속 골리앗), 가족의 수치요 가계의 바보이며 가문의 왕따인 택시 운전수 용대(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심한 탈모를 가진 인천공항 화장실 청소부 기옥 씨(하루의 축), 마음을 열었던 애제자마저 다단계 합숙소에 밀어 넣는 비정한 수인(서른) 등 예쁘거나 귀엽거나 씩씩하거나 착하거나 같은 일말의 희망 섞인 기대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비행운(非幸運)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대부분의 비행운(非幸運)은 이들의 경제적인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서른’의 수인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천만 원 정도의 학자금 대출을 안고 있던 그녀는 점점 더 나쁜 채무자가 되어간다. 그러다 아버지의 교통사고라는 한 방에 가족과 함께 몰락한다. 옛 애인을 통해 다단계 합숙소에 들어가고 모든 인간관계와 단물을 빨리고서야 겨우 빠져 나온다. 수인을 대신해 합숙소에 들어간 학원 제자 혜미는 엄청난 빚과 파탄 난 인간관계를 괴로워하다 자살을 기도하고 식물인간이 된다.    

‘큐티클’의 나는 28세 여성이고 그나마 비교적 번듯한 직장을 가졌다. 생활은 안정되고, 조금 더 나은 소비를 통해 살아가는 만족감도 커진다. 하지만 그 많은 소비 중에 늘 나와 ‘딱 맞는 한 뼘’은 없다. 늘 반 뼘 모자라거나 한 뼘 초과된다. 친구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기로 한 날 오래 망설이던 네일숍에 간다. 생각보다 지출이 컸지만 합해서 1만 5천원인 케어와 매니큐어를 받는다. 지체된 것 때문에 결혼식장에 서둘러 가다 땀투성이가 되고, 겨드랑이 얼룩을 감추느라 고군분투하지만 창피만 사고 만다. 친구와 만나 맥주캔을 따다 어렵게 한 손톱마저 찢어진다.

하지만 불운하고, 못나고, 무능한 주인공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겉보기에는 담담하고 냉정하기까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처지에서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자기를 믿어준 제자 혜미를 배신하고 혜미가 식물인간이 되는데 일조한 수인에 대해서도 그저 비난하지 않고 수인의 입장에서 쓴 편지글을 통해 이해를 구하는 형식을 유지한다. 일생 유일의 행운(幸運)이었던 아내를 결혼하고 몇 달 만에 암으로 잃게 된 용대가 아내를 향해 눈이 희번덕해져 상욕을 해대는 장면에서도 용대가 밉지 않다. 이들의 비행운(非幸運)과 비행(非行)의 책임이 결코 이들에게 있지 않음을 작가나 독자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비행운(非幸運)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 어떤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닫힌 이야기 구조의 결말이 없는 현재 진행형의 비행운(非幸運)의 이야기들이 현실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주인공에게도 선뜻 감정이입하기는 힘들지만 자꾸 소설 밖의 현실 세계와 비교하면서 현실의 세상과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렇게 부조리하고 비행운(非幸運)으로 가득 찬 불행한 세상을 보고만 있을 거냐는 무언의 질타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사회 모순과 구조를 이야기하거나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설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이고 활자화 된 소설의 주인공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진짜 주인공들인 소설 밖의 현실 세계의 주인공들이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야 비행운(非幸運)의 비(非)가 떨어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비행운(飛行雲)의 희망을 담은 유보된 이야기들의 결말이 서술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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