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2)
상태바
[새사연]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2)
  • 고병수
  • 승인 2012.09.27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병수의 가슴앓이

 

아침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일행들과 모여서 밥에 깡통 통조림들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도 해야 하는데, 앞서 얼굴을 씻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다. 머리를 감고 나오던 봉사단 인솔자인 장석기씨는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수부대 출신에 국방부장관 표창까지 받으며 군 생활을 화려하게 했다는 그가 입까지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히 머리 감을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냥 눈곱만 떼고 가야지 마음먹게 된다.

진료 시작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진료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점심밥 먹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팍 온다.

“단장님, 오늘도 죽음의 진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고원장, 자기는 엉덩이에 땀띠 좀 나겠는데?”
“나야 땀띠로 족하지만, 단장님은 허리가 뽄질라지겠네요. 하하하…”
“이따가 파스 남은 거 있으면 좀 붙여줄 생각이나 해요. 아이고…”

우리 일행을 책임지는 단장님은 여러 해 동안 알면서 지내온 박형선 한의원 원장이신데,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주민들에게 침을 놓으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진료를 하고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을 거다. 농담처럼 죽는 시늉을 하지만 박 단장님은 몽골 진료를 벌써 16년가량 해오신 분이라 몽골 오지에 가는 것이나 폭풍진료를 하는 것에는 이골이 났을 것이다.

진료는 가정의학과 2명, 산부인과 1명, 외과 1명, 성형외과 1명, 치과 2명으로 이루어진 의료진들이 맡고, 2명의 약사님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간호사는 주민들이 어느 진료실로 갈지 간단한 인터뷰를 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들을 안내하거나 진료실과 약국에서 일손을 돕는다.

다른 진료과목들은 이 지역에서 각자 자기 역할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성형외과 원장님이신 조준현 선생님이다. 여름휴가 가는 대신 봉사를 오긴 왔지만 몽골 오지에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만무하고, 진료 첫날인 오늘은 진료실에 앉아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과 환자라도 보겠다며 진료를 하는데, 내과 계통 약을 처방해본지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쉽지는 않았다.

몽골 오지에서 성형 수술을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였다.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분이 성형외과 선생님 방에 수술 건이 생겼다고 귀띔을 해줘서 드디어 일거리를 찾으셨구나 마음이 놓였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입술이 찢어진 청년이라는데, 간단한 수술이니 금방 끝나서 또 할 일이 없나 찾으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손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성형외과 선생님이 안 보인다.

“조 선생님은 왜 안 오시죠?”
“수술 하는 게 많이 늦어질 거라고 합니다.”
“어, 입술 봉합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죠? 시작한지 2시간이 넘었을 텐데…”
“그러게요. 나도  많이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점심도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간단한 봉합은 많이 해봤기 때문에 부위 별로 대강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듣기로는 큰 손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게 아무래도 미용 성형만 하시다가 간단하지만 손상된 상처 봉합을 하려니까 어려우신가 보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갈 때쯤 성형외과 조 선생님이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많이 힘든 수술이었나 봐요?”

우리들은 인사치레로 그렇게 물었지만, 조 선생님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을 힘들게 떼며 말한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해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입술뿐만 아니라 아래턱 속살까지 다 다쳤더라고요. 상태가 안 좋아서 큰 병원으로보내야 한다고 했더니 현지 의사가 이런 수술은 울란바타르로 보내야 한다는데…”
 “그 정도였어요? 우리는 가벼운 입술 상처인 줄 알았어요.”
“다행히 차가 정면이 아닌 옆으로 스쳤는지 골절 같은 것은 없고, 입술과 턱 부분 손상만 받았지만 이게 간단한 수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 몽골 청년은 입술부터 턱 살까지 찢어졌을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아래턱뼈에 붙은 살이 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안쪽 구조물과 조화를 시키고, 안에서부터 봉합을 하면서 동시에 겉 피부 봉합을 해야 되는데, 붓기가 빠지면서 입술선이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조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우리 일행들은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와, 선생님은 이제 몽골에서 할 일 다 하셨어요. 이젠 진료하지 말고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역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밥 좀 먹어야겠습니다.”

그 몽골 청년은 비용도 문제였지만 생각지도 않게 힘든 수술을 멀리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받아야 할 뻔했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후 며칠 동안 조 선생님은 내과 환자들을 보면서도 드문드문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이 보게 되어서 결코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 날 밤 평가를 위해 모인 우리는 밤늦도록 오늘 일에 대해서 얘기하며 조 선생님을 칭찬했다. 마치 우리가 겪은 일인 것처럼 보람 있어 하며.

 

     
 
고병수(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