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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박정희의 초상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8.25 00:00
몽고족인 원나라를 중원에서 몰아내고 다시 한족의 왕조를 건립한 명태조 주위앤장은 보잘것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땡땡이 중 노릇도 하다가 기회를 잘 잡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초상은 두 종류가 전해오고 있다 한다. 하나는 매우 인자하고 거룩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시커멓고 턱이 푹 빠져나온 흉악무도하게 생긴 모습이다. 이 두 그림은 중국역사를 통해 어느 것이 진짜 참모습일까 라는 추측과 논란을 일으켰다. 어찌 보면 매우 다른 두 얼굴 모두가 주위앤장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제국을 건설할 정도면 인자한 얼굴의 덕이 있었을 것이고, 한편 그 흉악한 얼굴을 가졌기에 개국의 공신을 수만이나 죽인 무지막지한 피의 숙청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과거사 규명과 관련하여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만큼 이러한 논란이 증폭되어 있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의 행적을 찬양만으로 도배질 한 것과 혹독한 비난으로만 가득 채운 극단의 두 초상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쪽의 나라로 동강나고, 자연자원이 거의 없으며, 주민들은 삶의 뿌리를 완전히 잃고 모진 고생을 겪고, 국내자본이라 할 만한 것도 전혀 없으며, 국내시장은 손바닥만하고, 노동인구라곤 일본인들이 흔히 되뇌는 말로 게으른 촌놈들 밖에 없다고 오랫동안 여겨져 왔던 남한에 산업국가의 기틀을 세움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만든 영웅으로 묘사하는 박정희의 초상이 널리 퍼져 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식민지 조선에서 지위상승의 새로운 경로가 된 일본 사관학교에 입대하여, 스스로 '다카키 마사오'라 이름을 짓고 일본 왕을 위대한 천황으로 받아들였으며, 해방 후에는 남로당 군사총책을 맡았다가 들켜 사형선고를 받았고, 대신 조직과 동지를 고자질한 대가로 다시 군에 복귀하여, 기회를 엿보다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는 1930년대의 일본으로부터 기꺼이 교훈을 배웠고 항시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어떤 반발도 잠재울 수 있는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렇게만 보면 박정희의 초상은 소름끼칠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독재적 권력은 언제나 신화를 만들거나 조작한다. 박정희는 늘 막걸리를 마시는 서민대통령이라고 알려졌지만 밤이 되면 양주를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정희는 한 여름에도 사무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은 절약정신이 넘치는 대통령으로 선전 됐다. 그러나 밤에는 화려한 비밀 아방궁을 만들어 죽는 순간까지 젊은 여자들과 흥청거렸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허물은 박정희를 평가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결코 될 수 없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단순 조립작업만 하는 나라가 어떻게 실리콘 박편에 극소의 선들을 새겨 넣어 10억 단위의 소수점 연산을 하는 마이크로프로세스를 생산해내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라는 물음이 본질적이다.

'철은 국력'이란 모토 아래 박정희가 이끈 연 평균 9.3%의 성장은 민주발전을 어쩔 수 없이 유보하였지만 그대신 '조국의 근대화'를 통한 '민족중흥'의 기적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하는 부류가 많다.

그보다는 당시의 경제 성장이 일반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를테면 1960년대에 남한은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에 불과하였으나 대학재학 인구는 280명당 1인이었다. 이에 배해 영국은 국민소득이 1,200달러에 대학재학 인구는 425명당 1인이었다. 남한의 부모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으로 살았으며 특히 논밭을 팔아서라도 자식교육에는 상상할 수 없는 열정을 쏟았다. 때문에 "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고 지적한 경제학자도 있다.

누구도 도저히 예측하지 못한 남한의 산업화 성공을 박정희의 탁월한 영도력 때문에 가능했었는지 여부는 평가하는 사람의 정치적 경제적 노선에 따라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박정희의 초상을 권위주의적인 효율성에 향수를 느끼게끔 그리기도 하고, 반대로 재벌특혜와 노동자 억압 그리고 정치 부패에 분노의 눈길 가지게끔 그리기도 한다.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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