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여부에 따른 쫀쫀한 역사냐? 웅혼한 역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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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여부에 따른 쫀쫀한 역사냐? 웅혼한 역사냐!
  • 송필경
  • 승인 2012.10.26 19: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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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20대 공동대표를 역임한 송필경 원장

단일화 여부에 따른 쫀쫀한 역사냐? 웅혼한 역사냐!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한쪽에서 존경받는 인물은 상대편에서는 모두 죽일 놈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이념의 양극화로 다른 진영에서 모두 추앙하는 인물을 만나기 힘드나, 특이한 예외의 인물이 쑨원(孫文;1866~1925)이다.
 

쑨원은 대만과 붉은 대륙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받고, 이념을 넘어 모든 중국인의 존경심은 한결같다. 이는 대만의 장제스(蔣介石)가 쑨원의 국민정부를 겉으로 계승했지만, 쑨원이 구현하려던 혁명정신을 마오쩌뚱(毛澤東)이 붉은 대륙에서 계승했기 때문이다.

쑨원의 인격과 사상은 이념의 틀 속에서 평가하기엔 너무나 거대했고, 이념을 초월한 역사적 실천을 중국 현대사에서 온 몸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쑨원은 이념에 구속당하지 않았다. 쑨원의 삶에서 가장 감탄할 부분은 자기 신념에 대한 헌신이며, 대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격의 순수성이다. 해외에서 16년 간 혁명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다가 청왕조를 무너뜨린 1911년 10월 10일 무창기의(武昌起義)의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이 때 쑨원은 범국민 영웅으로 대접 받으며 신생 중화민국의 임시총통으로 추대되었다. 청조의 군대가 아직도 버티고 있어, 청의 항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한 달도 못되어 총통 자리를 스스로 사임했다. 청조가 제위를 포기하고 북양군벌(北洋軍閥) 위앤스카이(袁世凱; 1859~1916)가 공화 체제를 공적으로 지지한다는 조건으로 총통 자리를 위앤스카이에게 기꺼이 양보했다.

이런 태도가 쑨원을 위대하게 만들었으며 오늘 우리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였다. 대의를 위하여 허식을 중시하지 않고, 삼민주의의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순수하게 자신을 헌신하는 인격의 순진성이 역사에 감동을 남겼다.

서글픈 해외 유랑 끝에 총통이란 대권을 잡아도 나라를 위하여 바로 대권을 내준 결단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앤스카이가 공화제를 버리고 황제에 취임하자 쑨원의 순진성은 처절하게 배반을 당하지만, 오늘날 황제 자리 오른 위앤스카이를 인간답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 우리 이야기 해보자.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대선을 앞두고 양김의 분열은 내가 몸소 겪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기억이다. 참혹함의 기억은 전두환의 광주 만행이 더 했지만 이는 일방적 폭력이었다. 그러나 대권 욕심으로 인한 양김의 분열은 우리 정치 역량의 극심한 빈곤을 드러낸 치부였다.

1987년 정권 교체의 실패는 뿌리 깊은 군사 정권을 응징할 기회를 무산시키고, 군사 독재 잔재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게 만들었다. 노태우가 대권을 잡자 김영삼은 라이벌 김대중을 따돌리기 위해 군사 정권 세력과 손잡아 극단으로 변절했다. 그 때 김영삼을 따라간 수많은 민주 투사와 김대중 사후의 최측근들이 지금 박근혜의 화려한 들러리를 설 줄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변절에 너무나 익숙해져 변화와 구분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6개월 만에 이합집산한 사태의 본질은 진보의 긍정적 변화를 모색한 고뇌보다도 눈앞에 이익을 추구하다가 들통 난 변절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몇 자리를 탐하려고 동지의 멱살 잡고 뒤통수 치면서 입으로 진보를 외치는 것은 저질 코메디다.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언제든지 버리고 끊임없이 양보하는 자세를 갖지 않고, 내 편의 이념이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이 2012년 ‘통합 진보’ 집단의 마당에서 춤춘 유령이었다.
 민노당의 소위 당권파 집단, 진보신당을 탈당한 심상정과 노회찬 집단, 노무현의 후예라는 국참당의 유시민 집단. 이 세 집단은 국회의원 몇 석이라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통합한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집단이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진보를 역사에 구현하고자 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자세를 애초에 갖지 않았다.

이런 행위로 이번 대선에서 진보의 존재감을 상실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지 않고 있어, 그 쫀쫀함은 변절한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 인사들의 뻔뻔스러움과 별반 차이가 없다.

현재, 다른 지방은 모르겠지만 내 관점에서, 대구에서 ‘문‧안’ 단일화 정국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불손한 인사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양 진영 수장들은 진보적 학자들이지만 평소 이들 사이에 소통이 없었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많은 인사들이 속속 모여 들고 있지만 대구란 좁은 동네에서도 지향점이 매우 다른 집단들이다.

동이불화 집단 다시 말해 잿밥에만 관심 있는 일부 정치적 부랑자들은 ‘문‧안’의 대결을 먹을 만한 상이 펼쳐진 잔치로 생각한다. ‘문‧안’ 단일화 과정이 길게 이어질수록 1987년 양김 분열과 2012년 진보의 분열이라는 쫀쫀한 역사가 떠오르는 내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리라 제발 믿고 싶다.
 
쑨원의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1987년 대선을 직전인 1986년 도울의 외침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은 바로 이 점, “서로” 대권을 양보하여 후세의 더 큰 영웅으로서 대권을 차지하는 슬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정치의 속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약은 체 하지 말고 미련한 이상주의를 실현한 실례가 인간세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의 결과는 보수의 몫이나 책임이 아니라 진보 진영의 역량 문제로 드러나리라. 문재인, 안철수 두 분 가운데 양보하는 슬기 있는 분은 제2의 쑨원으로 역사에 웅혼하게 남으리라. 옛 말씀에 죽음이 곧 삶의 길이라 하지 않았는가.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 공동대표, 범어연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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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2-10-27 11:11:35
본인도 문제지만 주변에 있는 분들이 더 문제인 경우가 많지요. 후보도 불완전한 인간이고 아무래도 자기 주변의 정보나 말을 듣게 되기 쉬우니까요. 결국 국민의 상식에 입각해서 고독한 결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영웅의 조건이 아닌가 싶네요. 콰이어트라는 책을 보면 말 많고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비교적 큰데도 사람들은 이런 말에 혹하는 경우가 더 많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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