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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블로프의 개들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03.28 00:00

새학기가 시작하는 봄이 오면 불청객들이 해마다 한반도를 찾아온다. 하나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극우를 대변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 모임'이 왜곡한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불어오는 망언 바람이다. 서해를 넘어오는 황사는 자연현상으로 하늘에 벽을 쌓지 않는 이상 막기가 어려워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동해를 건너오는 해괴망측한 바람은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는 인위적인 짓거리이다.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침략과 학살을 미화하고,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위안부 문제마저 전쟁의 속성이라는 싸구려 거짓말만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부류의 전범 국가인 독일하고는 너무나 달리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천박한 자세를 드러내 주변 국가들에게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내부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이웃 조선을 괴롭혀 왔다. 지금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못된 버릇이 또다시 도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일본의 극우 정치인과 군부, 재계가 합작해내는 우경화 바람은 A급 태풍 수준이다. 태풍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는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 고집하면서 패권주의의 야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와 영토 분쟁에 서서히 불을 지피고 나아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못박는 것은 군국주의를 부활하기 위한 포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런 일본의 교활한 속셈보다 우리에게 더 무서운 것은 일본 우익의 준동을 두 손을 들고 반기는 해괴한 집단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 보수·우익이라고 처신하는 한승조는 '고려대 명예교수·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라는 직함으로 일본의 우익잡지 월간 <정론>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이란 글을 기고했다. 글의 핵심은 일제지배가 한국인에게 축복이라는 것이다. 이 발언은 우리 사회 곳곳에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을 숭상하는 자들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한일합방을 합법적이라고 발언한 소설가 이문열, 주한 일본대사관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장에 달려가 축하 꽃다발을 건넨 국회의원들, 위안부 비하 발언으로 할머니 가슴에 못박은 이영훈 서울대 교수, "한승조에게 돌 던지지 마라"는 군사평론가 지만원, 이런 부류들이 한승조 뒤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이런 기득·지식층들이야말로 일본 극우세력의 간을 키우는 자들이다.

일본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 해지는 이들은 그까짓 독도는 조선을 러시아의 강탈에서 보호해주고, 미개한 조선을 이만큼 근대화시킨 은인인 일본에게 고마움으로 바칠 선물로는 어림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워 대한민국을 건국한 친일세력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참으로 소름이 끼치는 발상이다. 청산해야할 일제식민지배라는 민족의 악몽을 오히려 축복으로 생각하고, 만행을 일삼은 억압자를 찬양하는 뒤죽박죽인 집단들이 지구상에서 이들말고 또 달리 있을까?

친일잔재청산에 막무가내로 훼방을 놓고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들의 처지가 궁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친일잔재청산을 좌파의 정치적 모략으로 몰아붙인다. 아니나 다를까?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은 '친북이 친일보다 더 나쁘다'하면서 이번에도 단단히 후렴을 넣는다. 친일문제를 희석하기 위해 언제나 친북을 들춰내고 김정일을 거론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와 다름이 없다.

개처럼 조건반사를 일삼는 부류들에게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고 발전하는 인간의 역동적 창조성과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 파블로프의 개들이 활개치는 것은 무엇보다 해방한 지 60년이 되도록 우리 사회가 주체적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친일청산을 더 이상 미루거나 흐지부지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분명해진다.

송필경(대구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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