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의료기술보다는 더 나은 의료정책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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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의료기술보다는 더 나은 의료정책에 관심을
  • 고병수
  • 승인 2012.11.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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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가슴앓이

 

바야흐로 학술대회의 계절이 왔다. 대한민국의 모든 전문 분야에서는 가을에 정기적인 학술대회나 강연들을 많이 주최하기 때문에 이 시기만 되면 호텔 또는 강연장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할 정도이다.

의료 관련 학술대회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참여해야 하는 곳이 여럿 겹치기도 한다. 내과, 외과로 시작해서 병리과, 예방의학과 등 기초의학 분야까지 합치면 의사들의 전문과목이 26개고, 또 각 전문과마다 분야별로 여러 개의 학회를 가지고 있어서 의사협회에 등록된 정규 학회만 해도 150개가 된다. 대부분 이즈음에 대규모 학술대회나 강좌를 열고 있으니 참여해야 하는 의사들도 여간 바쁘지 않다.

의료 강좌의 두 가지 풍경

풍경 1. 돈 되는 의료기술에 대한 쏠림

두 개의 강좌가 같은 날 열렸다. 나는 두 곳을 모두 갈 수가 없어서 그 강좌에 참여한 동료 의사를 통해 내용이나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개원 의사들을 위한 임상 관련 연수강좌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개원 의사들을 위한 피부-미용 연수강좌였다. 둘 다 참석인원들이 많아서 여러 개의 강의실들이 꽉꽉 들어찼고, 하나라도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로 강연장은 뜨거웠다고 한다. 둘 다 작년보다 100명 이상 참석 인원이 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졌다. 두 강좌 모두 최근의 의료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좌의 많은 시간을 피부 관리실을 운영하는 방법, 피부 관리 기술, 비만 클리닉 운영 등 소위 ‘돈 되는’ 것들에 할애하고 있었다.

수많은 개원 의사들은 지방에서 경비를 들이면서까지 그런 강좌를 들으러 온다. 반면에 우리가 많이 접하는 질환이나 치료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전하거나 더 중요한 의학적 기술을 전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건 해마다 관련 강좌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물론 나도 처음 개원할 때는 의원 경영에 대한 압박이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 적도 있었다. 비만 클리닉, 피부 관리, 통증 치료 등을 많이 해봤으나,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경기 불황에 따른 경영의 어려움을 더 감지하게 된 것과 의사로서 갖는 자괴감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단순히 의사들의 이익 부풀리기로만 보면 안 되는 이유는 점점 개원 현실이 어려워지는 탓도 있다. 10년 넘게 같은 의료기관 운영을 하여도 점점 공휴일이나 밤늦도록 근무시간을 늘려야 이전의 수익이나 그 보다 못하게나마 겨우 맞출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이 의료 현장에 있는 동네의원들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하는 원인이다.

사들이 단순히 욕심을 버리면 되지 않는가, 혹은 다른 업종들도 힘든데 의사들 너희 정도야 양반이라고 하면 문제 해결은 꿈꾸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국가나 국민들이 이러한 의료 환경을 위기라고 못 느끼게 되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풍경 2. 일차의료 학술대회? 일차진료 학술대회?

가을 초엽으로 접어든 요즘에 나는 어느 학술대회 강연자로, 또 참관인으로 참여를 하게 됐다. 사는 지역이 제주도이다 보니 비행기 타고, 서울 시내 교통을 이용하고, 잠자리까지 해결해서 오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서울 출장 때마다 숙소는 주로 찜질방을 이용하는 편인데, 비용 문제도 있지만 잠자리가 조금 불편하여도 편안히 씻고 쉴 수 있어서 좋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출장비용만 해도 꽤 들어가게 된다. 학술대회 등록비는 왜 또 그렇게 비싼지.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참여한 학술대회는 프로그램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학회는 한국의 일차의료의 기둥이라는 곳인데도 일차의료와 관련된 내용들은 쌀가게에 떨어져 있는 한 톨의 좁쌀정도로만 취급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학술대회의 주제들이 다양하면서 심도 있고, 알아야 할 내용들로 채워진 것은 좋으나, 일차의료 전문 학회답게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의 문제라든지, 그 해결방안을 논하는 자리는 3일 동안 치러지는 대회 속에 달랑 한 꼭지밖에 없었다. 그것도 잘 찾기 힘든 구석지고 좁은 강의실에 마련되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힘든 위치였다.

대회의 많은 내용들이 임상에서 필요한 내용들과 기술들이었다. 즉 그 학회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잘 치료할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의사로서 환자를 잘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 일차의료의 기둥이라는 자부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차의료(Primary health care, 혹은 Primary care)란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이 가지는 건강상의 여러 문제들을 가장 가까이서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예방과 건강관리 및 치료 전반에 대해 주치의처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진료 환경이 만들어 지기위한 정책적 고민과 대안 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과연 일차의료가 만족스럽고 발달된 나라인가? 혹시 일차의료를 치료 중심의 일차진료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일차의료의 중심이라는 학회마저 치료 중심의 학술대회로 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기술보다는 더 나은 의료정책에 관심을

아이를 낳지 않는 산부인과, 심장 수술을 하지 못하는 흉부외과, 기초의학을 연구하지 못하는 의과대학, 연구 환경이 어려운 대학병원, 외국보다 두세 배 넘게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동네의원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발달된 의료기술이나 수입이 좋은 병원 경영도 좋지만, 국민과 의료인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제대로 된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 말엽, 낙후된 조선이 외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연구하면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쇄국으로 일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못 가진 결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후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치달은 역사를 기억해 본다. 너무 동떨어진 예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문제들은 단순히 수가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곪아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혼란, 일차의료의 부재로 인한 비효율 등. 당면한 문제들을 지나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닥쳐올 우리나라의 비관적인 의료 환경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어려울수록 의료정책에 더 열띤 토론과 제안이 있어야 하겠다. 그것이 의사 단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고병수(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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