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추억과 여성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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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추억과 여성대통령
  • 신순희
  • 승인 2012.11.09 13:2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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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신순희 논설위원

 

‘트루맛쇼’를 통해 막연한 추측을 불편한 진실로 드러내는 솜씨를 보여준 김재환감독이 이번에는 ‘MB의 추억’을 들고 찾아왔다.

영화는 기억의 터널을 뚫고 5년 전 대선현장으로 돌아가 “경제를 학실히(!) 살려 서민을 살맛나게 하겠다.”고 유권자를 열심히 홀리는 MB와, BBK 도곡동 땅 등 온갖 의혹을 외면하면서까지 경제대통령 MB를 열망했던 유권자를 비춘다. 그리고선 나치정권 최고의 선동가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로 마무리한다.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MB가 속였다면 그래, 우리는 속아줬다.


 “밥 쳐 먹었으면 경제는 꼭 살려.”라는 욕쟁이 할머니의 구박 속에서 묵묵히 국밥을 먹던 모습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솔직히 나까지도 혹했었으니까.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므로 반드시 살릴 수 있다는 말도, 가난도 노동도 환경미화원도 풀빵굽기도 다 해봐서 안다는 말도, 서민의 고통을 잘 아는 만큼 서민을 섬기겠다는 말도, 선거철 정치인의 뻔한 말일뿐이었지만 유권자는 믿고 싶었다.

그래서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MB의 약속들은 유권자가 그의 이름을 꾹~눌러 찍어 줌으로써 대통령의 약속이 되었다. 그 죄로 5년 동안 정말 넘치도록 충분히 치룬 대가가 사실은 쌍방과실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의 훌륭한 연기와 이미지에 속아 넘어간, 그리하여 내 권력을 그에게 위임하며 그를 믿은 국민은 ‘잘못’한 것일까? 

단연코 아니다.

시장 골목 좌판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던 그를 믿은 건 죄가 아니다. 대학 다니며 환경미화원을 했다는 그의 과거에 비추어 어려운 청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거라 믿은 건 죄가 아니다. 장사가 너무 안 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던 한 가장의 속마음을 콕 짚어 헤아려 준 그를 믿은 건 결코 죄가 아니다.

그 모든 믿음을 모아 모아서 서민경제를 살리라했더니 재벌경제만을 살린 그가, 모든 국민을 사랑해야함에도 친인척과 동창, 교회와 고향친구들만을 사랑한 그가, 국가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야 할 위치에서 국가를 자신의 수익모델로 삼은 그가, 그가 잘못한 것이다. 정말로 아주 많이 잘못했다.

또다시 대선이 다가왔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12년의 우리가 2007년의 MB를 되돌아보는 정치정산은 반드시 해야겠지만 그 방식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되어선 안 된다. 네 탓 내 탓 따지기도 아니다. 정산해야 할 것은 나약한 죄책감 따위가 아니라 권력을 위임한 주인으로서 본분을 다 했는가 여부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정치권력, 즉 재화를 분배하는 힘을 주었다면 그리고 그 대가가 나와 내 아이의 삶이라면 국민은 의뢰인으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깨어있는 시민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자.

작년 봄부터 대학생들이 외쳤다. 반값 등록금의 약속을 지키라고. 70명이 외치기도 했고, 700명이 외치기도 했고 때론 혼자 외치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외쳤다. 

땅을 두드리는 민중의 외침은 수로부인을 잡아간 거북이도 굴복시켰다더니 학생들의 끊이지 않는 외침은 그렇게 견고해보이던 MB산성에도 결국 큰 균열이 내었다.

도올 선생은 최근 신간 ‘사랑하지 말자’에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왜 바보같이 등록금투쟁만을 하느냐고, 왜 더 중대한 사회비리에 대해 항거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권에 관련된 협애한 이슈에만 집착하느냐고 걱정하셨으나 내 감히 말씀드리건데 “걱정마시라.”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라, 밥 얘기가 곧 천명이자 혁명임을 우리 젊은 학생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 학생들은 대통령선거를 5년 주기 이벤트로만 보지 않음으로써 2007년의 MB를 다시 광장으로 불러냈다.

MB의 선거를 5년 전 이벤트로 끝내지 않았고 5년 만의 정치정산을 거부하며 5년 내내 MB를 선거판에 세웠다. ‘정치 정산의 일상화’를 해 낸 것이다.

학생들이 그랬듯 국민 모두가 저마다 믿은 약속들을 5년 내내 지치지 않고 저 견고한 MB산성 너머로 소리쳐 함성을 질렀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얻거나 적어도 대가를 덜 치렀을 것이다. 대선시기 Policy Window(일명 정책 제안창)이 열렸을 때만 목소리를 내는 대부분의 이해집단과 달리 5년 내내 깨어있었던 젊은 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니 무엇까지 바라도 되는가. 복지국가, 경제 살리기, 과거사 청산, 통일, 혹은 무능한 현 정권에 대한 응징으로써의 정권교체 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여성대통령의 탄생도 충분히 바랄만한 일이다.

그런 바램들에 대해 우리사회가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식의 천박한 대응이 아니라 정치정산의 일상화를 통해 품격 있는 대응을 한다면, 비록 여성성 없는 여성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진짜 여성대통령의 시대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힘은 우리 안에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은 선거시기에만 유효한 문구가 아니라는 걸, 2012년 12월 19일은 물론, 그 후 365일이 다섯 번 지낼 동안에도 내내 기억하자.

신순희(본지 논설위원, 종로 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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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님께 2012-11-12 11:34:36
건치신문 독자층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예전의 건치가 수준이 높았다거나 뭐 그런 말씀이 아니라 지금의 건치신문은 예전과 달리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사람이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님께서는 여전히 건치신문 독자라면 기본적인 정치적 성향과 교양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하고 논리적 전개를 하시는데 님의 글을 읽고 '박근혜도 괜찮다는 말이냐'라고 해석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조금더 넓어진 독자층을 배려해주심이..

류재인 2012-11-12 11:20:23
어떻게 그렇게 속았나 아니 속였나 싶어서...ㅡㅡ
영화적 표현력은 약간 떨어지는 작품인 것 같으나 시대적 의미는 으뜸.
일요일 조조 보는데 자리 없어서 맨 앞줄 겨우 앉았음. 결국 만석이었음. ㅡㅡ

공감 2012-11-12 00:34:21
한방에 무엇인가 얻어지는 일은 없을듯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이라야, 한순간도 방심않는 시민이라야 조그만 권리라도 지킬수 있을 것입니다. 선거시기만 잘버티면 된다는 헛된 생각 못하도록 5 년내내 깨어있자는 말... 공감합니다.

먼소린지 2012-11-10 14:25:01
국민들의 수준이 높으면 비록 박근혜가 된다고 쳐도 바른 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단 소린데..

그건 이명박이 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 아니었나?

대통령이 새로 바뀌면 국민 수준도 갑자기 바뀌나?

앞뒤가 안 맞는 이 논리는 뭐지?

인용변용패러디 2012-11-09 20:34:44
인용과 변용과 일부 패러디(?)로 수사는 넘치는데,

막상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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