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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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
  • 강재선
  • 승인 2005.04.0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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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참 멋진 집들이 많다. 멋진 집들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가 아는 친구들 대부분은 그다지 멋진 집에서 살지 않는다.

이사할 때가 되어서야 버리게 되는 집안 구석구석의 낡은 소지품들, 구닥다리 가구며 잘못 구입한 주방용품들, 처치 곤란했던 여행기념 상품들, 오래된 옷가지들이 잔뜩 쌓인 집.

치과 대기실에 대여해 놓은 잡지에는 철마다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D.I.Y 인테리어가 소개되지만, 나의 집은 게으른 주인 탓에 사시사철 청소하기도 바쁜, 좁고 지저분한 곳이다.

가끔 뭔 바람이 불어 고만고만한 아이템들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무난한 집안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하며, 썩 어울리지 않을 경우 집안 구석으로 조용히 보내진다. 그래도 나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의 사람들이 보기에 일상의 냄새가 배어 있는 나의 집이 누추할지 몰라도, 나는 나의 공간이 참 좋다.

-영화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는 강추할 만한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명절이면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집가족드라마 정도랄까.

가부장의 권위가 떨어진 지 오래인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된 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살고 있는 전부인과 반항적인 문제아 아들에게 미움의 대상이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여름,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흩어졌던 가족들은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느낀다.

보수적인 가족 멜로드라마답게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결말이 예측가능하며, 갈등의 화해나 이야기 구조 자체는 부실하고 평이한 편. 그럼에도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조화와 열연 덕이다.

조금 색다른 가족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비디오 대여점에서‘로얄 타넨바움’을 찾아보시길.

-주말이면 부모님의 집으로 갔던 탓에 대학 자취시절은 집이라는 개념보다는 방이었다. 진정한 자주 독립을 꿈꾸던 몇 년 전, 졸업 후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진 후에야 내 방은 집이 되기 시작했다.

학교와 부모님의 집과 내 자취방에 분산되어있던 모든 짐이 한 곳으로 모였고, 후줄그레한 일상이 그 곳에서 이루어졌다. 문득 다른 이들의 집을 보고 나면 나의 작고 누추한 집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괜한 자괴감에 빠져들 때면 그 초라함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살 더 먹고 나니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인생 같다. 모든 집이 나름의 누추함을 갖고 있듯이, 모든 인생에는 각각의 누추함이 있을 터, 버리지 못하고 닦아서 쓸 수 없는 누추함이 있다면, 그 누추함을 사랑해볼 참이다.

사연과 추억을 가진 모든 누추함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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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2005-04-09 15:14:45
'모든 누추함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느낌이 오는 말이네요..
잘 지내시죠? 언제한번 얼굴좀 보여주세요 ㅠㅠㅠ.
시간이 안되십면 지부 게시판에 흔적이라도 쪽까 흘리 시던지..
건강하시구요.. 좋은 글 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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