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70]복지국가 19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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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70]복지국가 19금(金)
  • 전민용
  • 승인 2012.12.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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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이상이, 메디치

 

2012년 삶의 질과 연관된 19개 지표로 분석한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 32위로 나타났다. 행복의 중요한 요인인 ‘안정된 삶’과 ‘공평한 소득 분배’가 취약한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행복과 복지 확대를 외쳤지만 그 내용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자로서 운동가로서 복지국가의 최고 전도사인 저자가 오랜 연구와 실천의 결실로 이 책을 내 놓았다. 복지국가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이고 함께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기에 적절하다. 먼저 책 내용을 살펴본다.

16-18세기의 유럽 국가들은 절대군주의 근대적 중앙 집권 국가를 만들었다. 중세의 장원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뀌면서 절대 군주와 시민계급이 연합하여 지방 영주들을 축출한 결과이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절대군주들은 부국강병의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대상공인과 귀족들의 이익을 우선하고 중소상공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했다.

부르주아 계급(시민 계급)이라 불린 중소상공인들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자유권과 법치주의를 확보하고 자유방임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경제적 자유주의라고도 불리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특징은 제약 없는 자유로운 시장을 기초로 국가는 최소한의 치안과 국방만을 담당하는 야경국가이며, 자본주의 1.0이라 할 수 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사회적 자유권을 획기적으로 확장하여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증대시켰지만 경제적으로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빈곤 문제, 저임금의 부녀자와 아동 노동, 실업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발생시켰다. 공중 보건의 취약함으로 전염병도 창궐하고 주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사회적 약자였던 노동자와 빈자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19세기 후반 들어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증폭되면서 자유주의 이념은 기존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그대로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정부가 실업과 빈곤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해야한다는 진보적 자유주의(또는 사회적 자유주의)로 분화된다. 영국과 미국에서 세력을 확대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20세기 초부터 노동자 권리 강화, 의무 교육, 노령 연금, 국민 보험 등의 진보적 정책들을 실현하기 시작한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상품은 넘쳐났지만 구매할 사람은 없고, 매출이 급감한 기업은 고용을 줄여 대량 실업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노동인구의 27%, 영국은 23%, 독일은 32%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주류였던 자유방임 자본주의자들은 시장의 자기 조정 기제의 작동만을 신봉하며 대공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1933년 당선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부 재정을 투입하여 일자리와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뉴딜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금리를 인하하여 기업의 투자 의지를 높여주고, 일자리와 복지 확충 등의 공공정책을 통해 유효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로 공식화 된다. 수정 자본주의 또는 복지국가 자본주의라 불리는 자본주의 2.0이 탄생한 것이다.

2차대전 후 영국은 빈곤 없는 사회를 목표로 케인스와 베버리지가 제안한 고용보험, 질병보험, 노령연금 등을 도입하고, 아동 수당, 무상의료 체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시행한다.

수정 자본주의 복지국가 노선은 영국,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전반으로 확장된다. 자본주의 2.0을 발전시켜 간 이념은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가, 영미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흐름을 주도했고, 독일, 프랑스 등 중부 유럽은 이 두 이념이 경쟁하고 타협하면서 유럽 대륙형의 복지국가를 만들어간다. 

영국 등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들은 모든 국민들이 일생에 걸쳐 소득을 보장받는 복지국가를 만들었지만, ‘빈곤 없는 사회’에 적합한 최저 생활수준이 보장되는 최소주의 복지를 목표로했다. 반면 스웨덴 등 사민주의 정당들은 ‘빈곤 없는 사회’는 물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다. 이런 이념과 목표의 차이는 이후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과 성과에서 뚜렷한 차이를 낳게 된다.

이 시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 사회수당, 사회서비스, 공공부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보험은 소득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보험료로 납부하여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하는 보편적 방식의 복지제도이다.

질병보험, 실업보험, 연금보험, 산재보험 등이고 본질적으로 소득보장 장치다. 다만 의료서비스는 영국과 스웨덴은 조세 방식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사회보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회수당은 특정한 조건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현금 혜택이며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등이다. 아동수당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보통 15세 또는 18세 이하의 아동들에게 월 1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의 돈을 어떤 차별도 주지 않고 특히 낙인(stigma)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편주의적으로 제공한다.

사회서비스는 현금이 아니라 현물서비스로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서비스 등이다. 의무교육이나 의료서비스는 대다수 복지국가에서 ‘사실상의 무상’이다. 다만 보육 서비스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 선택권을 주기위해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 방식을 쓰기도 한다. 

공공부조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제도이다. 소득과 재산을 엄격하게 조사, 심사하여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 국민의 약 3%가 혜택을 받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이에 해당하는 제도이다.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의 현금과 현물 서비스가 제공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1940년대의 5%에서 60년 대 10-15%, 75년 무렵에는 20-30% 수준으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배경은 전쟁 이후 5,60년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이었다.

큰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바탕으로 한 유효 수요 확대와 완전 고용과 복지 확대라는 케인스 주의가 이 시기를 설명하는 경제학이다.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기인한 고성장은 임금의 상승과 대량 생산된 상품에 대한 구매력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고, 이것을 포드주의 축적체제라고도 한다.

케인스 경제학과 복지국가 황금시대는 이윤율의 하락에 기인한 포드주의의 위기와 함께 종말을 고한다. 포드주의의 효율성이 한계에 이르면서 임금 증가율이 노동 생산성 증가율보다 높았고, 기업 간 경쟁이 격화 되면서 과잉 투자를 유발하면서 이윤율이 계속 낮아졌다.

강화된 노동권과 노조의 정치적 힘도 한 역할을 했다. 기업들은 도산하거나 고용을 줄였고, 노동은 점차 유연화되고 완전 고용의 원칙은 무너졌다. 사회복지 지출은 기업의 조세 부담 증가로 이어져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했고, 정부는 국-공채를 확대하느라 재정 적자를 심화시켰다.

70년대 들어 케인스의 유효수요확대 정책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불황 하에 물가는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중동전쟁이 촉발한 오일쇼크는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켜 스테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켰다. 국민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떨어지고 실업자는 늘고 복지 재원은 부족하고 정부의 재정 적자는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케인스 경제학과 복지국가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공격이 하이에크와 시카고학파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영과 통화의 남발이 경제 위기를 몰고 왔다고 진단하며 수요의 경제학 대신 공급의 경제학을 주장했다. 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80년 미국의 레이건은 집권하자마자 하이에크의 처방인 공공 지출 삭감, 민영화와 탈규제, 관료와 노조의 권한 축소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신자유주의라고도 알려진 자본주의 3.0의 시대이다. 

위기를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했던 국가들과는 달리 스웨덴 등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는 기존의 복지국가 노선을 유지하면서 총수요 관리정책과 경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조정인 코포라티즘과 연대임금 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1956년부터 시행된 ‘동일노동 동일 임금’의 연대임금정책은 성장 산업 부문에서는 과도한 임금 상승을 억제하여 투자를 촉진하고, 저효율 산업에서는 생산 합리화나 퇴출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자들은 재교육을 통해 성장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직접 보육과 의료 등 사회서비스에서 전체 일자리의 30%에 달할 정도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것도 주효했다. 이런 정책들로 2008년 이후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과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한 때 80%를 넘고 지금도 70%대를 상회하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굳건한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국가 경제 성장 전략에 종속된 형태로 설계되기 시작했다. 1964년의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와 1977년의 5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실시된 법정 의료보험제도가 그 시초이며 의료보험은 전 인구의 8.6%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다.

86년의 3저 호황과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88년에 농어촌 지역 의료보험과 89년에 도시지역 의료보험 등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다. 고용보험(’95), 산재보험(’64), 공적 의료 보험, 국민 연금(’88) 등 4대 보험이 낮은 보장성과 넓은 사각지대라는 한계를 가진 채 명목상으로는 제도화된다.

 IMF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수용한 김대중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4대 보험의 제도적 틀을 완성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 능력과는 무관하게 가구의 소득 인정 금액이 최저 생계비 이하이면 급여를 제공한다. 국민연금은 99년에 전국민 연금으로 확대된다. 고용보험은 98년 전사업장으로 확대했고, 2001년에는 고용보험에 육아 휴직과 산전,후 급여 등이 포함된다. 의료보험은 98년과 2000년에 걸쳐 통합을 이루어 단일보험자 체계를 확립한다.

참여정부에서는 소득 하위 50%의 가구에게 보육료를 지원했고, 불충분한 서비스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도화했다. 보육과 요양이라는 사회서비스 분야를 개척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성과는 있었지만 저부담-저급여 체제와 질서 없는 시장주의 공급체계라는 고질적인 한계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낮은 보장성과 광범한 사각지대라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체제로 구축되어 있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대상자의 30%가 미가입상태이다.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에 대한 공적 질병보험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민간 보험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동수당 같은 사회수당은 공백 상태이고, 사회서비스도 부실하여 국민의료보험의 보장률은 60% 수준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역동적 복지국가 전략을 제시한다. 전 생애에 걸친 기본 소득 보장과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제도화한 보편적 복지, 적극적 교육과 노동시장정책 등의 적극적 복지, 대기업-중소기업의 균형과 노동 시장 양극화 극복을 포함하는 공정한 경제, 혁신적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혁신적 경제의 결합이다. 경제와 복지의 상호 보완적인 유기적 통합을 통해 스웨덴식의 보편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2부에서는 역동적 복지국가 전략과 미래 모습을 노동시장, 의료, 보육과 교육, 범죄로 부터 안전, 주거, 노후, 평화, 생태 문제들을 주제로 집중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저부담 저급여의 후진국형 복지 체제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GDP의 약 9.6%인 120조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해 시장과 국가의 조화를 강조하고 임금 격차와 복지 격차의 해소를 주장한다. 유럽형 복지국가에 대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성찰을 소개하고 깨어있는 국민의 조직된 힘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대선은 끝났고 향후 5년 간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미래는 박근혜 당선자와 보수정치인들의 손에 맡겨졌다. 5년을 허투루 보내기에는 절박한 삶의 현장이 너무 엄중하다. 중장기적으로  OECD국가의 평균 수준의 복지제도는 도입해야 마땅하다. 박 당선자가 진정 복지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면 스스로 한국의 비스마르크가 되고, 한국의 베버리지 같은 복지주의자를 등용해서 전격적으로 복지제도를 도입해 가야 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 성장과 분배의 균형 있고 유기적인 결합이 중요한 것은 자명하다. 지난 100년 간 인류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를 번갈아가며 목격했다.

저자가 주장한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중소기업에 기반한 성장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닐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남북 경제 공동체 등의 새로운 성장 공간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버는 인구는 줄고 쓰는 인구는 늘어나고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증가 역시 불명확하므로 격차를 줄이고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회복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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