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의료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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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의료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채민석
  • 승인 2013.02.1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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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료 관리 세미나 후기①] 채민석 공중보건의

 

현대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생의학 모델은 자본주의적 의료의 확장과 더불어 발전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각종 의료 장비, 끊임없이 개발되는 신약, 각종 신의료기술 등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레드리히 엥겔스(Fredrich Engels)가 ‘공산당선언’에서 묘사한 자본주의의 모습처럼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조차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의료의 확장과 발전은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소아마비를 근절시킨 poliovirus에 대한 백신이나, 최초의 표적 항암제로 ‘기적의 신약’이라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등과 같이 실제로 의료의 발전이 인류의 건강에 순기능을 미친 사례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 향상에 있어 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그것이 가진 역할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의료에 비례하여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생의학 모델 비판에서 생의학은 환자를 전인적 존재가 아니라, 수동적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있다.

특히 현대 보건의료의 특성은 환자를 물질적 조건, 즉 상품의 구매력을 기반으로 하여 대상화시킨다. 돈 많은 사람들이 주로 걸리는 당뇨, 고혈압과 관련된 새로운 의약품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프리카 수면병이나 말라리아처럼 돈 없는 사람들이 타겟이 되는 의약품의 발전은 수 십 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또한 HIV-AIDS 치료제도 계속 나오고 있으나, 정작 전 세계 HIV-AIDS 환자의 70%가 몰려있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대중들은 그 ‘혁신적’인 약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한다.

세미나에서 고찰했듯이 인류의 평균수명을 늘리고, 더 건강하게 만든 건 의료적 개입보다는 생활환경의 개선이었다.

특히, 세미나에서 제시된 사례 중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은 오염된 식수에서 콜레라의 원인을 발견한 존 스노우의 사례도 있지만, 이를 한층 광범위하게 분석한 에드윈 채드윅이 노동자의 위생 상태에 대한 보고서와 1844년 프레드리히 엥겔스가 ‘영국노동계급의 상태’를 내면서 산업화 초기 도시의 비참한 노동계급의 현실에 대해 폭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깨끗한 물을 먹고 살 수 없는 지역 사람들의 계급적 조건 말이다.

또한, 사회가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할수록 건강이라든가 개인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싱가포르는 공공병원은 많고 국가가 공공병원에 재정 투자를 하지만,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에 있어서는 국가가 보조해주는 정도가 매우 낮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험이 아니라 강제 의료 저축 등의 형태로 의료비를 지출한다.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내의 경우도 산재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돌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에 산재승인율은 매우 낮은 편이고 삼성반도체 같은 ‘산재 기업’이 무재해 사업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재는 가벼운 산재발생 징후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산재발생에 대한 근본적 고찰(예를 들어 기업 살인법 제정, 안전설비 강화, 야간노동 폐지 등) 없이 산재발생 후 치료에 몰두하는 건 산재 예방, 나아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쌍용자동차 사례에서 보듯 해고나 고용불안 등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2011년 인의협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자살률은 일반인들의 3.7배이고, 심근경색 사망률은 18배가 넘는다고 한다.

또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유병률도 자살 사고를 많이 경험하는 기관사보다 6~7배 높았다.

해고 자체의 스트레스, 경제적 압박, 사회적 지지 감소, 해고로 인한 인간관계 불화 등을 보지 않고 그들의 건강을 의료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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