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사’ 대한민국 병원이 아프다
상태바
‘병원장사’ 대한민국 병원이 아프다
  • 김철신
  • 승인 2013.03.13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김철신 논설위원(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

 

남도의 작은 도시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 네트워크치과가 생겼다. 이 지역에서는 치과의 개설을 계기로 치과의사들이 진료현장의 이런저런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도 하고, 의료제도에 대해 토론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합동회의를 하고 돌아온 다음날, 밤차를 타고 돌아와서 피곤한데 병원에 한권의 책이 도착했다.

페이스북의 친구이기도 한 저자가 메시지를 통해 얼마 전에 책을 냈으며, 병원으로 한권 보냈다고 했던 책이다. 잡지사의 특집을 준비하던 저자와 만난 것은 작년 이었다. 우리나라 의료상업화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는 특별기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일부치과의 환자갈취에 가까운 막장진료의 자료를 잔뜩 수집해 놓고 있던 내게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처음 저자를 만날 당시에는 못돼먹은 이들 치과의 행태가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폭로되었으면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사람의 치과의사로서 막장에 처해 있는 우리 동료들의 이야기가 폭로되어 또 한 번 치과의사가 지탄이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복잡한 심정에 흔쾌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또한 많은 매체들의 의료상업화를 다루는 기사는 선정적인 사례를 펼쳐놓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는 무관심하거나, 기사를 보며 분노한 환자들과 충격 받은 의료인들이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나 몰라라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잡지 한 켠의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저자의 취재과정을 지켜보며 기대가 조금씩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수개월에 걸쳐 준비하고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방문한 현장의 내용을 전문가들과 함께 검증하고 분석하며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다. 가장 기자다웠던 것은 직접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 그 현장을 체험한 것이다. 혹시 정말 내 엉덩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실제 병원을 체험해보고 비교해보며 문제점을 알아보자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직접 하나하나 해내는 모습이 참 흥미로웠던 기억이다.

그 생생한 경험들이 책으로 묶여졌다. 수많은 보건의료전문가들의 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싱싱하게 살아있는 책이 된 것은 저자의 손이 아니라 발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책의 제목은 ‘병원장사’ 대한민국 의료상업화 보고서, 책 뒷면의 광고카피는 ‘병원이 아프다’이다. 어떻게든 환자들 아프게 해야 하는 우리나라 병원들의 씁슬한 모습. 환자가 아픈 것이 아니라 병원이 아픈 것이고, 그 속의 의사들이 아픈 것이다. 윤리적인 의료행위를 부르짖는 수많은 의료인들을 순진한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사회의 의료현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10년 새 6배나 수술건수가 증가한 척추수술, 280만 건에 달하는 치질수술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현장을 발로 누빈다. 직접 환자가 되어 그 어처구니없는 통계의 현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척추전문병원에서는 멀쩡한 척추에 70만 원짜리 MRI촬영을, 항문전문병원에서는 진료당일 수술할 것을 권유받는다. 네트워크병원이라며 온갖 문제를 일으키던 치과에서는 충치가 5개 달한다며 금인레이를 할 것을 다른 병원보다 싸게 해준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권유받는다. 물론 저자는 어느 곳에서도 치료를 받지 않았고, 멀리 날씨 안 좋은 곳까지 날아가서 몸 건강히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이 화려한 병원들의 엄청난 광고공세와 성장세를 또한 보여준다.  이른바 빅5병원의 폭발적인 성장. 그리고 의료계 군비경쟁이라고까지 불리는 병원들의 무한 경쟁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는다. 이 무한경쟁의 과정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동네의원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10년간 외래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4.6%에서 56.9%로 쪼그라들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 한 달에 139곳 꼴로 문을 닫는 동네의원들.
그리고 비교하기 민망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현실들...

책은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과잉진료의 사례들을 보여주며 의료상업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이런 현실에서 사라지는 동네의원과 공공병원들의 모습,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를 조장하고 기다리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문제도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료상업화를 고발하는 책이지만 사실은 치과계의 현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곳곳에 화려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일부 네트워크 치과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환자갈취의 현장을 보면  대한민국의료상업화의 가장 막장에 치과가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장에 놓인 이들이 어찌 보면 가장 강력한 변화의 욕구를 갖는지도 모른다. 전문가로서의 자존심, 상업화를 조장하는 제도에 대한 반감, 갈취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치유와 소통의 대상으로서 만나고 싶은 환자들. 의료상업화의 막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국민들 뿐 아니라 의료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멀리 남도의 끝에서 밤새 막장치과들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목이 터져라 토론하고 고민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 목소리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의료상업화의  대안에 대해서 저자는 ‘생명이 먼저다’라는 마무리 글에서 말한다. 1차의료기관이 제역할을 하게하고 보장성을 강화하여 사람을 살리는 의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너무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결론이지만 동네병원이 살아나야 한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신뢰받으며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그 동네병원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보건의료에 대한 요구를 잘 알고 있는 의사를 통해, 지역 사회 내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통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행위” 이 1차의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그러나 명확한 대안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6112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