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1위 국가'! 통계가 말하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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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1위 국가'! 통계가 말하는건?
  • 이상윤
  • 승인 2013.03.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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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이상윤 논설위원

 

ECONOMIST지는 최근 기사에서 한국이 성형시술/수술 1위인 국가라고 밝혔다. 이는 국제미용성형외과의사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Aesthetic Plastic Surgeons)가 매년 추계하는 성형시술/수술 통계를 각 나라의 인구수로 보정한 결과다. 국제미용성형외과의사협회가 추계한 2011년 성형시술/수술 건수로만 따지면, 한국은 미국, 브라질, 중국, 일본, 멕시코, 이탈리아에 이어 7위다. 하지만 이를 각 나라의 인구수로 나누면 한국은 인구 1만명당 6.5건으로 단연 1위다.

▲ 각국의 인구 1000명당 성형시술 및 시술건수(2011년)※ 자료 : ECONOMIST, International Society of Aesthetic Plastic Surgeons

이 통계는 실제 시술/수술 건수를 모두 집계한 것은 아니고 매년 각국의 성형외과의사들이 보고한 사례를 바탕으로 통계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해당 국가의 국민 기준이 아니라 해당 국가 국민이 아니더라도 해당 국가에서 시술/수술을 받은 이들은 그 국가 통계로 잡힌다. 

성형외과 의사가 행한 시술/수술만 사례만 보고되니 일반의나 피부과 의사 등 다른 전공자들이 행한 시술/수술은 누락되어 실제 행해진 성형시술/수술건수보다는 과소추계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현재 확인 가능한 수준에서 가장 신뢰성 있는 통계인 것은 사실이다.

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비수술적 시술은 보톡스 주사, 수술은 지방 성형수술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 한국의 다빈도 성형 시술/수술건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이루어지는 시술/수술들은 주로 노화된 피부 등을 회춘시키거나 스테레오타입화된 형태의 외모를 갖추기 위한 것들이다.

▲ 한국의 다빈도 성형시술/수술건수(2011년)

한국의 성형시술/수술은 이미 국제적인 것이 되었다. 인근 국가에서 시술/수술 받기 위해 의료 관광을 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른 바 ‘한류’ 등의 영향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이들이 성형 시술/수술을 받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예인뿐 아니라 정치인도 피부 관리는 기본이 되었다.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면접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취업 준비로 이러한 시술/수술을 받는 이들도 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성형시술/수술을 받는 이들의 소망과 욕구는 비슷하다. 그녀/그들은 사회적 성공, 보다 나은 사람과의 사랑 등을 원한다. 사회적 성공과 사랑을 위해서는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외모가 사회적 성공과 사랑의 성취에 있어 중요하다고 증명하는 사례들이 넘쳐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녀/그들은 선택은 당연하다. 경제적 능력만 허락된다면 외모를 바꾸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성이 아름다워지고자 노력한 것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지속된 사실이고, 오늘날 성형시술/수술은 과거의 화장술 혹은 신체 변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수술 및 마취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미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의 수단이 훨씬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아름다운 이들이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얻거나 더 나은 사랑을 얻었던 것은 고고학적 혹은 인류학적 사실인데, 과거에는 이러한 미가 ‘천부적’인 것이어서 본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공평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을 바꿀 수 있게 됨으로써 ‘미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960년대 서구 페미니즘의 구호를 차용해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며 나의 몸을 바꾸려는 선택은 각각의 여성에게 고유한 권한이라며 페미니즘 소비자주의를 천명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성형시술/수술을 받아 아름다워지려는 이들의 욕망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어떠한 신체 변형이라도 부정적으로 보는 보수적/도덕적 태도는 이러한 현상 이면의 부작용을 드러내고 치유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욕망의 흐름이 상업적으로 왜곡된다는 것이고, 그 와중에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형시술/수술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예쁘고 더 젊어 보이는 이들이 취업도 잘 되고, 승진도 잘 되며, 사랑에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비용과 부작용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성형시술/수술을 받을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름다운 이들이 호감을 얻고 좋은 평판을 받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라는 게 정형화되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도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꼭 코가 오똑하니 높고 쌍커풀이 있으며 피부가 반질거려야 아름다운 것일까? 이러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나이 들어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것은 추한 것이라고 누가 평가하는 것인가? 자연스런 노화조차 거부해야 하는 현실은 누가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날로 거대해져 가고 있는 미용산업과 매스미디어의 행태와 마케팅 전략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교묘히 이용해 획일화된 방향으로 이끌고 그 안에서 이윤을 착취하려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드러내야 한다. 말로는 ‘여성의 선택’, ‘여성중심주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상품 소비의 주체로만 호명하고, 여성은 무엇보다 ‘외모’가, 그것도 스테레오타입화된 외모가 중요하다는 기존의 가부장적 상식만을 보수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이 산업의 실체 말이다.

한편 이와 같은 ‘미의 민주주의’는 ‘천부적’인 것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봉건적 질서를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술/수술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천부적 능력’이 아닌 ‘경제적 능력’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좌우되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임이 언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이 더 커질수록 사회적 불평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성형시술/수술 비용이 싸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이는 경제적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형시술/수술 세계 1위라는 지표는 한국에 이러한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특히 더 스테레오타입화된 외모가 중요한 사회, 자연스런 노화 현상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사회, 자본주의적 욕망이 고삐 풀린 채 날뛰는 사회,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임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언급하지 않고, 성형시술/수술을 하는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떠 넘길 수는 없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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