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미니스커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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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미니스커트가 아니다.
  • 김랑희
  • 승인 2013.03.19 1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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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새 대통령의 서프라이즈한 첫 국무회의

지난 11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새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첫 국무회의의 결과물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경범죄처벌법에 대한 시행령 개정령안의 의결이었을까? 개정법안이 시행되어야 하는 시간적인 문제가 있었다 치더라도 여러 가지 현안들도 있었을 텐데 그런 문제들도 함께 고민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로 오르는 노동자들, 여수산업단지의 폭발사고, 늘려도 모자랄 판인데 없애버리는 공공의료, 선거개입의 의혹이 여전한 국정원, 날로 악화하는 남북의 평화 등 산적한 문제들은 어찌하시고.... 국민행복을 노래 부르시던 대통령께서 저 문제들이야말로 국민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시는 걸까? 종합유선방송(SO) 소관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두어야 한다며 부르르 떠시던 그 기세로 국민의 행복을 위해 팔 걷고 나설 일이 그리 없었단 말인가?

문득 박근혜 대통령의 감성은 1970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되면서 흘러나왔던 말들-제2의 새마을운동, 4대 사회악(학교·성·가정 폭력과 불량식품)척결, 국민준법교육-과 함께 경범죄처벌법을 보면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그녀의 아버지의 국정 철학과 닮아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아무튼, 첫 국무회의의 결과물은 많은 사람의 비웃음과 어이없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개콘에서 개그는 개그맨에게 맡겨 달라 했는데 국무회의의 결과와 그것을 비꼬고 풍자한 인터넷상의 온갖 패러디를 보며 많은 사람이 빵빵 터졌다. 이런 뜨거운 반응에 경찰은 급히 수습에 나섰다. ‘미니스커트 얘기가 아니다.

노출은 원래 있던 조항이다.’ ‘처벌이 완화되어 더 좋아진 것이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잘된 것이다.’ 그 약발이었을까? 조금 비웃음이 주춤했다. 아니면 다 비웃었기 때문인가? 근데 진짜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경찰의 말대로 ‘그전부터 있었던 것’이 문제다. 그게 왜 아직도 살아서 우리를 옭아매려하고 있지? 경범죄처벌법 그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경범죄처벌법의 진짜 문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 길거리에 침 뱉지 마라,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 길가는 사람 방해하면 안 된다, 못된 장난 하면 안 된다, 장난전화 하지 마라....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가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법으로 금지하는 일이고 게다가 어기면 벌금도 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좋은 행위라고 칭찬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국민의 행동을 시시콜콜 교정하겠다고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우습다.

이런 행동들을 꼭 법으로 다스리고 경찰을 동원해야 할까?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아이는 부모에게 참 착하고 좋은 아이다. 왜라고 질문하고 자신이 판단해서 결정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는 양육하기 만만치 않은 아이일 것이다. 권력은 그렇게 잔소리와 회초리를 들고(법과 경찰을 통해) 말 잘 듣는 국민으로 양육하는데 큰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국가를 ‘가부장적 국가’, ‘부권형벌국가’라고 부른다. 아버지처럼 통치하려는 국가. 그것이 경범죄처벌법의 진짜 문제다.

경범죄처벌법은 그 뿌리를 일제식민지시대에 두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경찰범처벌규칙(1912년)이 광복 이후까지 존재하다가 1954년 폐지하고 경범죄처벌법을 제정했지만, 놀랍게도 법 이름만 바꾼 똑같은 내용이었다. 식민지의 백성을 경찰과 법을 동원하여 겁을 주고 말 잘 듣게 하려고 했던 법은 시대가 흘러 시민이 되고,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믿는 현재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60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법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혹하는 권력 때문이다. 국민은 국가가 원하는 방식대로 통치되어야 하고, 국가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계몽되거나 처벌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이 존재하는 한 경범죄처벌법은 그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될 것이다.

1973년(박정희 대통령 시절임을 상기하자) 경범죄처벌법을 확대적용하기 위해 개정이 되었다. 그 당시 장발과 노출을 규제해야 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퇴폐풍조와 반사회적 행위라는 것이 이유이다. 당시도 이런 규제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당시 경향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다.
 

사회가 내포하는 문제들을 그 시원에서부터 풀려 하지 않고 그 결과만 놓고 말단외근경찰의 소관업무처럼 여기며, 그를 뒷받침하는 단속근거로서의 법을 제정한다든지 벌칙강화로서 위협을 가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도덕규범에 속하는 것조차 오히려 법률규제의 범주에 옮겨져 가는 데 대해 침울한 느낌을 금치 못한다.

1973년의 기사가 여전히 유효하다니, 나 역시 침울한 느낌을 금치 못한다.

 

미니스커트에 가려진 이야기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안이 발표되자 언론은 미니스커트 단속이냐며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흥분했다. 그러나 미니스커트 논란은 가라앉았으며 덕분에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이야기는 놓쳐버렸다. 경범죄의 칼날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칼날은 정관계, 재계 인사라고 칭해지는 권력자들을 향해 있지 않다. 칼날의 방향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찰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은 공공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장소에 있지 않다. 또한, 공공장소를 걸으면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을 일도 없다. 경찰이 범칙금 부과를 위해 단속하는 곳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서 호객행위를 하고, 전단지를 뿌리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구걸까지도 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 사회단체들의 캠페인, 집회 시위가 벌어지는 공공장소이다. 이곳에 벌어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표현들이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불쾌하다’는 이유로 경범죄 처벌 대상이 된다.

가려진 이야기 하나 - 보기 싫다!
 

경범죄개정안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구걸행위이다. 그전에는 구걸을 시킨 사람만 처벌의 대상이었는데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범칙금 5만원). 왜?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니까. 경찰이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모두 구걸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보기 싫었나 보다. 구걸하는 사람이 범칙금 5만원을 낼 돈은 있을까? 구걸하는 사람보다는 길 가는 시민의 불편함이 그들에게 더 큰 문제였나?

왜 구걸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는 못할망정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까? 구걸행위를 경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이 법이 최초로 만들어졌던 1954년에도 논란이 되어서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다.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이유로 포함될 수 없었던 것이 60년 만에 가혹하게 부활했다.

가려진 이야기 둘 - 듣기 싫다!
 

정권과 권력을 향한 비판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집회시위와 같은 방법뿐만 아니라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예술로 우리의 표현방법은 다채롭고 개성이 넘친다. 이런 비판이 달가울 리 없는 권력은 갖은 수단을 써서 목소리를 잠재운다. 그 수단 중 하나가 경범죄처벌법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시절 집회를 알리던 유인물을 배포하던 사람이 경범죄 위반으로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되기도 했고, 이주노동자문제를 알리기 위해 퍼포먼스를 하던 사람들이 경범죄로 처벌하겠다는 경찰의 엄포에 중단하기도 했다.

미술가인 이하씨는 담벼락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그린 광고물을 무단으로 붙였다는 이유로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현재 재판 중이다. 권력이 바라는 ‘사회질서’는 비판 없이 순종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이 ‘질서’를 흔드는 사람에게 ‘질서유지법-경범죄처벌법’을 들이댄다.

 

국민을 ‘삥’ 뜯는 경범죄처벌법, 이제는 폐지하자.

오래전부터 법률 조항의 모호성과 추상성 때문에 법률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게 경범죄처벌법이다. 그 모호성과 추상성이 오히려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법을 맘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정부는 2만여 명의 경찰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욱 강화된 경찰력으로 더욱 촘촘하게 시민을 감시하고 오로지 자신들만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시민을 처벌할 것이다. 제발 강화된 경찰력을 가난한 국민을 상대로 ‘삥’ 뜯는 일에 내몰지 말고 경찰다운 일을 하게 해주자.

그리고 경범죄처벌법 따위로 국민을 복종하게 하지 말자.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시민의 사회를 위해 경범죄처벌법은 이제 폐지하자. 그동안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다. 마지막으로 숙명여대 법대 홍성수 교수의 말을 옮기며 마쳐야겠다. 오늘 밤도 경범죄처벌법 폐지를 위한 궁리를 하며 잠들 것 같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일탈행위가 있으면 범죄화하여 경찰력을 동원하는 손쉬운 해결방법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비도덕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행위라 해도, 그것을 자율적 해결에 맡길지, 행정제재로 다룰지, 아니면 국가형벌권을 발동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질’은 공권력이 얼마나 적정한 방식으로 집행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 영역에 국가가 너무 깊숙이, 그것도 가장 강력한 수단을 통해 관여하겠다는 생각부터 재고해야 한다.

 

김랑희 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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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2013-03-19 12:22:21
가뜩이나 답답한데, 요즘 애들 말로 왕짜증나느 일들만 계속되지요. . . .
유디 치과 상 준다는 것도 그렇고 . . . . . .
문제는 왜 봅았냐는 건데. . .이런글 읽고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안 찍었지요. 앞으로도 안 찍을 것이고요. . . 민자당의 후신 민주정의당의 후신인 정당의 후보를 앞으로도 계속 찍을 사람들은 지금 이런 글 안 보고 있지요. . . . 그게 우리들의 고민이지요.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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