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게이친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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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게이친구가 있습니까?
  • 김랑희
  • 승인 2013.04.23 11: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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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누군가 당신의 삶을,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열아홉 살 청춘이 꽃피는 육우당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 보호법상 동성애자 차별 조항 삭제 권고를 내리자 한기총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하며,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도전하고 에이즈를 퍼뜨리고 있다는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다.

가톨릭신자였던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적개심과 폭력 앞에 큰 참담함을 느꼈고, 열정적으로 기사를 투고하고 캠페인에 참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4월 25일, 육우당은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천주교를 사랑한다는 말로 유서를 끝맺음한 육우당이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은 혐오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라고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말했던 그가 떠난 지 10년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동성애자들이 살아온 세상은 좀 더 나아졌을까? 2007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76%가 자살을 생각해봤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비율도 58%에 이른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에서도, 78%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놀림을 받거나, 동성애자임이 알려진 후 부당한 대우를 받은 비율도 51%에 달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진 않지만 모든 종교는 좀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누구나 인간으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이런 평화를 깨뜨리는 것 중 하나가 편견과 차별, 배제이다. 편견은 집단갈등의 원인이 된다. 편견은 사회적 맥락에서 존재하며, 문화 안에서 사람들에 의해 공유된다. 또한 편견은 인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에 근거하여 대상인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차별은 사회에서 함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편견과 차별에 기인한 혐오발언은 개인(또는 특질을 가진 개인들의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개인의 정체성은 개선되거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무시되는 경험은 한 인격체 전체의 자기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적 힘을 갖고 있으며,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한 소수집단이나 특정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바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혐오의 대상자는 이런 경험으로 심리적 훼손을 입게 되고, 자신의 삶의 결정의 주체가 되지못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 정의를 부정하게 된다. 혐오 발언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 혐오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으며 조직적, 체제적 폭력이 될 수 있다. 개인을 포함하여 특정집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배제, 구별의 작용을 사회전체가 인정하게 되며 이로 인해 특정집단의 온전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 지금까지의 우리의 혐오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 안의 혐오를 사라지게 하는 노력의 시작은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우리가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 삶속에 그들이 존재하고 그들과의 일상적인 교류가 있다면 혐오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성소수자들이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근데 그들이 내 곁에 있는 건 불편해” 그래서 왜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면 소름끼칠 것 같아.” 나는 살짝 놀리듯이 말했다. “어머 이런 자신감은 뭐지? 게이도 취향이 있다고. 남자면 다 좋아하냐?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구애를 하는 것도 불편한 거 아닌가? 뭐가 다르지?”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얼마 뒤 그 친구는 <종로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봤다.

<종로의 기적>은 게이들의 유쾌하면서도 고난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이제 게이가 불편하지 않아.” 나는 갑자기 변한 친구의 말이 놀라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종로의 기적>을 보니 게이가 나랑 다르지 않더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떨리고 잘 보이고 싶은 맘은 자신과 다른 것이 없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더라는 것이다. 난 친구에게 흐믓한 미소로 답했다. ‘너도 게이랑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그들이 지금-여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꼈던 것은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들을 혐오하는 태도도, 차별하면 안된다면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그들을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당신에게는 게이친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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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13-04-29 16:25:25
직접 만나보면 모두들 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종로의 기적은 한번 봐야겠네요. 아는 분도 나오신다고 하고...^^

전민용 2013-04-24 10:08:0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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