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기다림 그리고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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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기다림 그리고 아쉬움
  • 이채택
  • 승인 2005.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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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털괭이눈. 열매 모습이 고양이 눈을 닮아 괭이눈이라고 한다. 여러종의 괭이눈이 분포하며 구분이 까다롭다
지난해 4월 어느 날 이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야생화를 찾아 아침 일찍 나섰다. 꽃을 찾아다닌 것이 두 해째이니 아직도 만나지 못한 꽃이 무수히 많다. 영남알프스의 허리쯤에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요행히 다양한 풀들이 자라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다수의 꽃들에 감탄하면서 이미 꽃은 지고 열매가 달려있는 큰괭이밥은 내년을 기약하면서 내려왔다.

어느새 한 해가 지나고 다시 꽃피는 봄이 왔다. 일요일 아침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으니 두 아들내미를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온후 달콤한 낮잠을 잤다. 오후가 되니 비가 그치고 간간히 햇살이 비친다. 아내 눈치를 살피다 허락을 얻어 산으로 달려갔다.

▲ 큰괭이밥.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올라온다. 개화시기을 맞추지 못해 이미 꽃이 지고 있다
지난해 보았던 얼레지가 보고 싶었다. 단숨에 달려 산으로 올라가니 오전에 비가 온 날씨 탓에 얼레지는 모두 꽃잎을 접고 있었다. 이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선 김에 큰괭이밥이 어느 정도 자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서둘러 차를 타고 인근의 큰괭이밥 자생지로 향했다. 높은 산으로 이동하니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겨울 날씨 탓에 활엽수의 새순이 아직 돋아나지 않고 있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지난해 보았던 흰털괭이눈이 벌써 꽃이 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흰털괭이눈도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열매가 달린 모습만 보았다. 하나의 소득을 챙기고 나서 큰괭이밥을 찾아 주변을 뒤졌다. 아직 꽃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 날씨를 감안하면 3주정도 지나야 꽃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큰괭이밥의 개화소식이 이곳저곳에서 올라온다. 다음주면 늦으리라는 생각에 토요일 진료를 마친 후 서둘러 큰괭이밥 자생지를 향해 달려갔다. 큰괭이밥도 햇살이 비치는 낮에만 꽃잎을 벌리고 있으니 해가 있는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2주 동안 다양한 풀들이 돋아나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 큰괭이밥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놈들의 꽃이 지기 시작하고 잎이 크게 자라 있었다. 그나마 달려있는 꽃들은 모두 꽃잎을 접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화 기간이 짧고 성장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다. 1년을 가다려 다시 찾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허탈하다.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매주 감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하산했다.

▲ 큰구슬붕이. 꽃의 크기는 꼬깔콘과 비슷하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지난해 그 곳에서 만난 들꽃 중 하나가 큰구슬붕이다. 사진으로 접했을 때, 그 아름다움에 나를 야생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것 중 하나이다. 처음 보게 된 것은 근처 야산이었다. 아내와 함께 탐방 중이었는데, 발견한 사람은 아내였다. 같이 다니면 나보다 꽃을 더 잘 찾는다. 처음 만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이후로는 흔히 만날 수 있었다.

큰구슬붕이와 비슷한 것으로 구슬붕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볼 수 있는데 흔하다고 하지만 아직 자생지를 한 곳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자손보다 더 자주 들리는 무덤이 있다. 다양한 야생화가 자라고 있어 봄이면 거의 매주 들린다. 갈 때마다 새로운 종이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무덤도 올해는 많이 파헤쳐져 수난을 당하고 있다. 야생화를 채취해가는 사람의 소행이다. 올해는 자주 들리는 인근의 들과 산에서 야생화를 산채해간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대량으로 가져간 걸로 보아 야생화를 취급하는 화원의 소행이 분명한데 막을 방법이 없다.

▲ 구슬붕이.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꽃의 크기는 큰구슬붕이의 절반 정도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몰라보게 늘어낫다. 그 부작용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인뿐만 아니라 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도 야생화를 산채해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한 두 개체 가져가는 것은 군락지를 훼손하지 않지만 대량으로 채취해 군락지를 없애버리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당하다. 멸종위기 식물과 함께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채택(울산 이채택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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