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페파’ 의료빈국 남아공의 병원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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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페파’ 의료빈국 남아공의 병원열차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 승인 2013.08.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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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로]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 8월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보건 시스템에 실패하며 대규모 두뇌 유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거의 20년째 다양한 전문의들을 실은 18칸짜리 열차가 남아공 국민에게 최소한의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전국을 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에서 서쪽 도로를 타고 카투시로 돌아온다. 고속도로가 점차 펠트(1)로 장식된 황폐한 도로에 자리를 내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방 중 면적은 최대지만 최저 인구가 거주하는 노던케이프의 국경- 눈에 띄지 않는 국경- 을 넘어서자 도로 사정이 심각해진다. 따분한 풍경에다 삶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복판을 관통하는 너덜너덜한 아스팔트길을 아직 500km를 더 달려야 한다. 보랏빛 산들로 둘러싸인 산기슭에 주민 1만 명이 거주하는 촌락, 카투가 들어서 있다. 주요 거리 양쪽엔 쇼핑센터와 독주를 파는 가게, 그리고 바를 갖춘 고급 숙박시설이 있다. 저녁이면 권태에 찌든 젊은 아가씨들이 바를 찾아 딸기 보드카를 마시며 외로움을 달랜다.

노던케이프 사람들은 독일보다 더 넓은 이곳에 주민이 100만 명밖에 되지 않아 “사막만큼이나 황량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6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18칸짜리 기차가 최첨단 의료장비를 실고 칼라하리 사막 인근 마을을 오가는 선로로 들어선다.  기차가 대초원 한복판에 위치한 윈캔턴 역에 멈춘다. 의료장비 호송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포스터가 전 지역에 벽보로 나붙었고, 현지 라디오도 소식을 알렸다. 한 여성 주민이 들떠 외친다. “난 이 순간을 2년 동안 기다렸다!” ‘펠로페파’(Phelophepa)가 도착했다. ‘건강’을 뜻하는 츠와나어와 소토어의 방언, 펠로페파의 유명세는 5천만 국민에게 기본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남아공 정부의 고충을 대변한다. 이 병원열차를 관리하고 여기에 쓰이는 대부분의 비용을 지원하는 남아공 철도공사(Transnet) 재단의 프로그램 책임자 리넷 코치는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리 병원들이 튼튼한 건물에 있어야 하는데…. 우리 일이 이렇게 성공한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뭔가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의 ‘인종격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종식시킨 무지개의 나라, 젊은 남아공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이 시스템은) 백인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한정됐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넬슨 만델라와 그의 후임들은 야심찬 공공인프라 개발 정책을 펼쳤다. 물과 전기 공급망뿐만 아니라 1600개 병원을 신설하고 리모델링했다.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 공공행정학 교수 알렉스 반 덴 히버는 이것이 “의료서비스 접근을 더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의료서비스의 전반적인 질은 크게 악화됐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1997년 정부가 공공병원의 백인과 흑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희망퇴직제를 도입하며 대다수 백인들이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반 덴 히버는 “많은 전문의들이 민간병원으로 이직하면서 시스템 운영에 공백이 생겼다”고 했다. 이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African National Congress)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인사를 감행했다. 히버가 덧붙인다.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현지 영주들의 파워 게임에 보건 부문이 볼모로 잡혔다. 인기영합주의와 부패가 의료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 여파로 펠로페파가 필요불가결한 것이 됐다.

온케 마지부코는 설명한다. “우리는 1944년부터 매년 4만6천 명의 남아공 응급환자들을 진료했다. 윈캔턴에서 우리의 목표는 지금부터 주말까지 250명을 진료하는 것이다. 아침 6시 기상, 3분간 샤워, 이후 마지막 환자를 맞을 때까지 8시간 근무, 생활규칙은 엄격하다.” 몸에 꼭 맞는 양복, 화려한 색상의 나비넥타이, 잘 닦아 광택이 나는 구두를 신은 이 30대 심리학자는 2년 전부터 펠로페파를 이끌고 있다. 그는 매년 남아공 극빈층을 만나기 위해 1만5천km를 달린다. 그와 함께하는 의사 19명은 학점을 따기 위해 그들과 합류한 남아공 최고 명문 의대 인턴 40명을 매주 돌아가며 가르치고 있다. 마지부코는 “이것은 저(인턴)들의 첫 전투다”라고 말한다.

펠로페파가 도착한 이튿날, 윈캔턴 유령역은 지역에서 가장 붐비는 장소 중 하나로 변했다. 남성과 여성, 흑인과 혼혈인, 어린이와 노인 등 뒤섞인 군중 행렬이 흰 가운 차림의 의료진 앞을 지나간다. 이가 다 빠진 입으로 짓는 미소, 뻥 뚫린 안구, 상처를 잘못 치료해 손상된 사지. 심한 치통에 시달리는 7살짜리 조카와 함께 온 피터 토나스는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50km 떨어진 쿠루만 마을에 있다. 난 도통 그곳에 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인근 마을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이곳을 찾은 젊은이 줄리어스 토드는 한술 더 뜬다. “이곳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의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처럼 변함이 없다.”
근접성과 펠로페파에서 제공하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치료가 윈캔턴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 진료가 진행되는 11호차 앞에서 사람들이 당뇨와 고혈압 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마친 환자들은 특별 열차칸 쪽으로 이동한다. 스피커에서 대중음악이 흘러나오는 안과 진료실이 있는 14호차와 15호차에서는, 사람들이 푼돈 30랜드(2)를 내고 인턴이 만들고 있는 안경을 기다린다. 안과 책임자 리스베트 음파랄라는 대다수의 남아공 주민들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80 평생 안과 검진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봤다.”
 

▲ * 사진 설명 <남아공의 서쪽 마을, 클랜윌리엄> 1984-로저 발렌
10호 객차 안 심리치료실

치과진료실이 있는 12호차에서는 치과 보링 기계음에 아랑곳없이 인턴 10여 명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치과대에 재학 중인 학생 무하마드 가루가 말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아 치료만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모른다.” 심리치료실 책임자 리넷 플러스크가 자신의 비좁은 진료실인 10호차에서 방문객들이 털어놓은 정신병, 실업, 성폭행, 외상 후 스트레스, 가난 등 때문에 생긴 병들을 상기시키며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지 않다. 지평선은 한계가 있으니, 풍광에 속지 말아야 한다.”

모든 진료가 끝나자 이번엔 약조제실 책임자 엘리자베스와 인턴들이 일을 시작한다. 이들의 조제실은 16호차에 마련돼 있다. 한 부인이 푼돈을 내고 소염제와 항생제를 제공받는다. ‘관리실’이 있는 13호차에서 관리 책임자 마지부코가 펠로페타 남아공 철도공사재단에 보낼 활동 총평을 작성하고 있다. 그가 한탄하며 털어놓는다. “필요한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우리는 2년 안에 다시 윈캔턴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때까지 주민들은 쿠루만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한 부인이 증언한다. “하지만 그것은(쿠루만 병원에 가는 것은) 재앙이다. 난 그곳에서 아기를 출산하다 죽을 뻔했다.” 다른 길도 있다. 데븐에 있는 마린다 테론이 운영하는 진료소에 가는 것이다. 주민 6천 명이 거주하는 데븐에서 14년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 네덜란드계 아프리카 백인 여간호사가 언성을 높인다. “의사는 부족하고, 앰뷸런스 출동은 지연된다. 플라시도 도밍고도 우리 일을 덜어주지 못한다! 심지어 그가 우리에게 환자들을 맡긴다.”

데븐 사람들은 ‘위치’(Wich), 이른바 현지 주술사에게 플라시도 도밍고란 별명을 붙여줬다. 우리는 양철 오두막집들이 들어선 작은 미로를 빙빙 돌아 그를 찾아갔다. 그의 벽돌집이 마을의 다른 집들과 달리 위용을 뽐낸다. 현관 지붕 밑엔 벤츠 C230 2대가 얌전히 주차돼 있다. 거실엔 세련된 집기와 오디오 스피커가 있다. 우리를 접한 그는 현장에서 쓰는 자신의 이름, 저명한 스페인 테너의 이름을 차용한 이름만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츠와나 전통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난 다음주에 두 번째 앨범을 킴벌리에서 녹음한다!” 하지만 도밍고는 데븐에서 다른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난 일어날 만한 저주를 통해 건강 문제를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주를 많이 퍼붓는다!”

자신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채로운 색상의 옷을 입고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찬 도밍고가 어린양의 뼛조각 17개를 땅바닥에 던진 뒤, 그 배열을 설명한다. 이어 그는 영혼들의 도움을 상기시킨 뒤, 연꽃과 나무껍질 분말로 만든 치료약을 처방한다. 남아공 국민 80%는 정기적으로 이런 상고마(Sangoma·남아공 주술사), 즉 국가에 등록된 20만 명의 주술사들을 찾아가 상담받는다. 도밍고는 “펠로페타가 도착하자 데븐 주민들이 몰려갔다!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이 상호보완 작용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건강이 좋아서인지 자신의 건강을 검진받으러 그들을 찾진 않을 것이다. 마지부코는 완수한 업무에 흡족해한다. “우리는 월요일엔 135명, 이튿날엔 그 두 배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진료실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현지 공무원들이 파업 중이다. 그리고 시 쪽에서 환자들이 우리한테 올 수 있도록 그 어떤 대중교통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약속한 물조차 공급하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 20년 이상 지속된 공공서비스의 붕괴는 남아공 국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기대수명은 53∼54살에 불과하고, 성인 17.8%가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이거나 에이즈 환자이며,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는 187개국 중 123위다. 이런 거대한 암초에 부딪힌 남아공은 주민 4219명당 의사 1명꼴에 불과해, 세계에서 국민 1인당 의사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남아공 야당 민주연맹의 보건 문제 전문가인 마이크 워터스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노동조건을 찾아 조국을 떠난다”고 말했다. 특히 현지 행정부가 모든 이를 위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의사 부서는 57%, 간호사 부서는 34%밖에 채우지 못한 노던케이프 지방의 타격이 크다.(3)

펠로페타에서 치료받기 위해 이곳에서 60km 떨어진 딩글턴에서 온 혼혈인 이사벨 로버츠가 이를 방증하듯 말했다. “우리 마을엔 정부가 멋진 새 병원을 지었지만 그 안엔 의사가 한 명도 없다.” 예산 2500만 랜드로, 1994년부터 병원열차는 약 600만 명의 남아공 국민을 진료하고, 장차 의사가 될 2만여 명을-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국가에서- 의료 공백에 도전하도록 계도했다.  리넷 코치가 설명한다. “난 우리 학생들에게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뒤 열차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한다.”

펠로페타는 비의료진도 채용한다. 정규직과 역에서 채용한 임시직원 등 80명이 관리부에서 일한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사람들이 솔선수범한다. 1호차에 장비를 싣고, 2호차에선 빨래를 하고, 3호차에선 요리를 해 카페테리아나 4호차로 식사를 나른다. 반대편 맨 끝 17호차의 경비 두 명은 모니터 앞에서 지겨워 몸서리를 친다. 치과진료실의 책임자 사지 구자는 이런 상황을 재밌어한다. “이 열차는 마치 잠수함 같다. 우리는 매우 사적인 물건까지 공유한다. 결국 주변 인물들이 모두 가족이 된다.”
 
 

“우린 집에서 너무 멀리 왔어…”
 
18년째 펠로페타에서 물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콜린 바우처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난 기차에 머물며 피를 나눈 내 가족을 방치했다. 난 아직 12년을 더 근무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때까지 내가 잘 견딜지 모르겠다!” 심리치료실 책임자 플러스크가 덧붙여 말한다. “이곳은 안락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환자들도 까다롭고, 가족과 떨어져 살기도 힘들다.”

일요일은 쉰다. 방 창문을 통해 오페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마지부코가 선잠에서 깨어 샌들을 신고 선로를 따라 걸으며 멍하니 칼라하리를 바라보며 외친다. “당신은 우리가 기차에서 경험한 그 모든 것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가 일상 뒤에 숨겨진 경험을 털어놓는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창밖으로 똑같은 장면을 구경하게 된다. 시력검사를 받으러 오는 할머니,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걷는 남자, 뛰어다니는 아이, 매주 난 똑같은 장면을 보지만 그 장소는 다르다.”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의 눈이 반짝인다. “대서양이 굽어보이는 남아공 남부 모젤베이 역이나 행글립버그 산기슭에 위치한 림포푸 지방의 촌락, 무케치에 기착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몇 칸 건너, 약조제실 책임자 음피아 또한 석양빛에 물든 펠트를 응시하며 소망한다. “난 낙관주의자다! 우리가 다음에 윈캔턴에 올 때면 몇 km 반경에 완벽한 병원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난 그걸 보기 전엔 죽고 싶지 않다.”

글•기욤 피트롱 Guillaume Pitron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펠트’(Veld·들판을 지칭하는 네덜란드어)는 남아공 들판을 지칭함.
(2) 1랜드(rand)는 대략 0.1유로에 해당함.
(3) Karl Blanchet et Regina Keith, ‘자국 의사들을 붙잡아두려는 아프리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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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2014-07-30 18:17:13
필로페파기차는 간호사봉사도 받는가요?
그곳에서 일하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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