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아니지만 그만큼 혼란스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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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은 아니지만 그만큼 혼란스런 사회
  • 김랑희
  • 승인 2013.09.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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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국정원의 한 수

8월 28일 저녁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래, 이 나라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더 큰일들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그 날은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10여 명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그날 하루 여러 생각과 감정이 오고갔다. 일단 현실감이 없었다. 내란이라고?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게 가능할까? 이런 현실감 없는 사건을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하고 있다니 너무 나간 거 아냐? 충격과 혼란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너무 많이 써먹었다. 내란은 무리수 같지만 그동안 국가보안법 사건들도 그랬다. 침소봉대되어 엄청난 간첩들이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국정원의 타이밍도 좋았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증거가 계속 나왔고, 촛불집회는 힘 좋게 이어가고 있었고, 민주당은 국정원개혁안을 곧 발표할 시기였다. 국정원 개혁으로 가는 상승국면에 크라이막스를 앞두고 아주 적절한 먹잇감을 물고 반전을 가져왔다.

어차피 이석기 의원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미 많은 신뢰를 잃은 인물이었고, 통합진보당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게 정치구나...

거짓말도 자꾸 반복하면 사실로 믿게 된다고,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괴벨스가 그랬다지. 쇼타임이 시작됐다.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국정원의 선전부서가 되었고, 변장, 도주, 권총 이런 자극적인 단어들이 춤을 춘다.

비밀리에 국가를 지킨다는 국정원 직원들은 의원사무실에서 이틀 동안 카메라를 의식하며 의원실 압수수색이라는 엄중한 의식을 마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정말 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비난과 경멸, 조롱 섞인 무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슬금슬금 통합진보당과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요 며칠의 광경을 보며 분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했다가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 동시에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편가르기, 거리두기

어릴 때 일이었다. 막내 남동생은 5살 정도부터 동네 또래들의 대장이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옆집 형도 꼼짝 못하게 했다. 몇 대 때렸더니 다들 말을 잘 듣게 된거다. 달리기 시합을 할 때도 동생이 1등을 해야 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해야했다.

엄마는 동네 애들 좀 때리지 말라고 혼냈지만 이미 권력의 맛을 안 뒤라 소용없었다. 하루는 옆집아이가 다른 아이와 싸워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아이 엄마가 밖으로 나와서는 다짜고짜 내 동생을 혼냈다. 물론 내 동생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만한 과거행적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내 동생이 그런 게 아니라 했다. 그랬더니 옆집 아주머니는 나까지 혼냈다. 동생이라고 편든다고. 아니 난 편드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억울했다.

그런데 옆집 아이는 아무 말도 안한다. 그동안 당한 거 복수하는 건가? 그날 일은 결국 동생이 옆집아이를 때린 것으로 옆집 아주머니에 의해서 결정이 나고 나는 동생을 편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 아이가 되었으며, 우린 싸잡아서 못된 남매가 되었다.

동생이 동네 아이들을 그동안 폭력적으로 군림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뒤집어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동안 네가 한 짓이 있으니 인과응보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유사한 일은 인권활동을 하면서도 겪게 되었다.

강력범죄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 정부는 강력한 범죄처벌을 대책이라고 들고 나온다. 이런 대책들은 대체적으로 과도하거나, 경찰력만 강화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정책들이 인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면 사람들은 범죄자의 편을 든다고 비난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하지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냐며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동의하는 것과 다르다. 그의 모든 것을 동의하지 않아도 그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옹호해야한다. 그것은 결국의 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쏟아내고 있다. 불편한 말들이 많다. 특히 경멸을 담은 말들이 그렇다.
“편향된 극소수의 영향력 없는 그룹의 장애와 같은 기형적 사고방식”(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한겨레 신문 9월 1일자)

"이석기와 함께 토론한 사람들, 발달장애라는 뇌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허황한 과대망상에 연출된 피해망상으로 대응하는 발달장애"(진중권 동양대 교수)

자신과 다른 현실감각, 정세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장애로 표현하는 이런 비하는 불편하다. 장애를 혐오와 경멸의 단어로 선택하면서 타인에 대해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지금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와 나의 다름에 대한 선명성? 혹은 그는 그르고 나는 옳다? 가뜩이나 선정적인 기사들에 휩싸여 있는데 지식인 또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의 자극적인 말들이 다시 언론으로 옮겨져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이 불편하다.

비난보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확신범처럼 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원칙들과 국정원의 의도와 행태에 대한 날카로운 의견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예정에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역사를 돌아보니 지금의 상황과 많이 겹쳐 씁쓸하다.

사상과 이념의 자유

(이 내용은 <미국의 헌법과 인권의 역사, 개마고원>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미국에도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기능을 하는 ‘스미스법’이 1940년에 제정되었다. 이 폭력으로 정부전복을 시도하거나 이를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그러한 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모의하는 것도 처벌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1948년 미국 법무부는 12명의 공산당 최고간부를 폭력을 사용해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단체를 조직하려 모의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공산주의 이념이 미국사회에서 정치적 지지기반이 넓지 않음에도 반공정책은 언론에 의해 더 힘을 키워가며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당시 언론들은 민주적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는 자들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며, ‘안보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할 것이 못 된다’라는 논조였다.

미국 정부는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 지지자들을 색출하는 대대적인 숙정작업을 벌이며 공포로 몰아갔기 때문에 기소된 12명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져갔다. 심지어 미국변호사협회는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하거나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협회 회원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12명의 대한 재판에서 검사는 공산당간부들이 미국의 각종 기간산업체에 당원을 침투시켜 당의 지령이 내려지면 즉시 파업이나 사보타지를 할 수 있도록 모의했다며 전직 공산당 간부, 연방수사국에서 침투시킨 공작원들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에서 이들은 모두 유죄가 되었다. 이들에 대한 유죄판결에도 미국인들은 국가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찾지 못했고 적색분자 색출작업은 열기를 더해갔다.

공산당원들은 항소했지만 판사는 정치적 불만분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불만을 토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국익에 기여하는 것이라 인정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러한 관용을 베풀 수 없다며 기각했다. 연방대법원도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장은 미국이 공산국가와 매우 긴박하게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조직된 당원을 거느린 공산당의 정부전복 모의는 결코 사상의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안보가 우선되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의견을 낸 블랙 대법관은 공산당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상이나 표현을 실제로 불법적인 행동으로 옮겼을 경우에만 처벌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만약 수정헌법 제1조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정당하고 안전하다고 인정받는 사상이나 표현만을 보호한다면 수정헌법 제1조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역시 반대의견을 낸 더글러스 대법관은 이미 수사기관에 의해 공산당원의 일거수일투족이 완벽하게 감시되고 있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동조하거나 지원하는 미국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굳이 공산당원을 처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당에게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덕분에 공산주의 이론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고, 그래서 미국인들 중 공산당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판결은 공산주의 이념이나 공산당 자체를 불법화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공산당을 불법화한 것과 같았다. 판결이후 같은 혐의로 공산당 간부들은 줄줄이 검거되었고,  미국 정부의 각종 공산당 탄압정책은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사회는 불신과 냉소주의로 물들어 갔다.

매카시즘은 더욱 강력하게 미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이 되었다. 정치인이든 직장인이든 정치생명을 유지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반공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그 방법은 공산당이 지지하는 노선과 무조건 반대쪽 입장에 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요구했던 진보적 사회개혁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나는 공산당원이요”라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흑백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흑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고, 국가적 의료보험 실시를 공산주의제도라고 반대했다. 영세민에 대한 법률구조를 요구하는 것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차단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자로 오인되는 것이 두려워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의견 개진을 삼갔다.

거의 모든 미국 정치인들은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산당이 지지하는 노선과는 무조건 반대쪽 입장을 취해야했다. 정부 정책의 타당성을 판별하는 가장 큰 기준이 반공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공산당원을 처벌했지만 결과는 모두의 입을 틀어막는, 모두의 생각을 차단하는 처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공산당 간부들의 체포와 검거가 연이어 이어지는 것이 FBI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연방회의는 FBI의 거듭된 예산 증액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고, 후버 FBI국장은 대통령을 제치고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부상되기까지 했다.

연이은 검거에 공산당원들은 변호사를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피고인에게 보장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변호하는 것일 뿐 그들의 입장이나 행동을 지지하기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님에도 모두 수임을 거절했다. 1951년 스미스법 위반사건 유죄판결(데니스 판결) 이후 1956년 말까지 총 145명의 공산당원들이 스미스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중 108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판결의 내용은 모두 같았다.

미국 공산당의 구체적인 행동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한 국제정세에 비추어볼 때 공산당은 위험하다는 논리였다. 1957년에 이르러서야(데니스 판결 6년 만에!) 연방대법원은 스미스법 위반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예이츠 판결) 데니스 판결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던 블랙 대법관은 예이츠 판결에서도 역시 무죄판결을 했다.

블랙 대법관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무리 치졸한 억지 사상이라도 자유로이 개진되고 토론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언론들은 예이츠 판결을 지지했다. 데니스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블랙 대법관에 대해 당시 언론은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비난받았지만 이번엔 사상의 자유를 강조한 그를 두둔했다.

이처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6년 사이에 크게 달라진 것은 데니스 판결이 공산당을 효과적으로 억압하고 일반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와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데니스 판결 이후 미국 사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횡포로 인해 개인의 인권과 민주적 절차들이 마구 유린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공산당원에 대한 기본권 유린이 모든 미국인들의 인권과 미국사회의 법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기 때문이다.

침착과 냉정을 되찾아야 할 시간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말하듯이 내란음모죄란 그런 폭동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실행능력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다. 내란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내란음모죄도 그리 쉽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죄가 법원에서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들이 결국 법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편 국정원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국정원은 지난 과거에도 그렇게 생명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국정원재판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다.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 해든지 간에 다시 정권을 잡으려하고…우리 국정원은 금년에 잘못 싸우면 없어지는 거야. 여러분들 알잖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이라고 한다. 국정원에 대한 개혁요구와 민주적 통제가 더 큰 목소리로 요구되어야한다. 국정원이야말로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갖추고 권력까지 갖고 있는 집단이다. 권력의 힘을 사용한 횡포와 비현실적인 사상 중 우리 사회에 더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사회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권리를 함께 옹호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지켜져야 할 사상과 처벌받아야 할 사상이 따로 있는 것인지, 국가안보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국정원의 행태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내란음모의 결정적인 (혹은 유일한) 증거라는 녹취록은 지난 3년 동안의 내사 중 2013년 3월~5월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때는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전쟁이 날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던 시기다. 다시 생각하면 남북이 서로 평화를 유지했다면 (현실성이 있던 없던) 국정원이 주장하는 ‘내란음모’같은 것은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인권활동가 김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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