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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총 그리고 이성[시론]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송필경 전 공동대표
송필경 | 승인 2013.09.11 14:48

 

지금 우리 사회에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 조직)란 무시무시한 유령이 나타났다고 난리다. 그러나 우리가 반란 혹은 내란으로 연상하는 혁명을 이제는 ‘좋은 말이다’라고 규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는 5.16을 ‘쿠데타’라 하지 않고 ‘혁명’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는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는 물론이고 수구적인 보수가 보아도 혁명은 품격 있고 영예로운 행위임이 분명하다.

최근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혁명 조직원들이 한 모임에서 유사시 총을 사용하자고 언급했다 한다. 이에 대해 장삼이사들은 저마다 서로 다르게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정희 대표가 이는 농담이었다고 한 해명을 보면 그 모임에서 총기 사용을 언급한 사실은 분명하리라 짐작한다.

혁명과 총의 연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마오쩌뚱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일게다.

어떤 수단을 쓰던 기존 체제를 뒤엎는데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반란이다. 그래서 혁명을 도모하는 자에겐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수단인 무력(총구)에 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권력이란 총구(銃口)에서만 아니라 사람의 입(人口)과 펜 끝에서도 나온다. 입과 펜이란 말하고 쓸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이성(理性)의 논리를 뜻한다. 문화 혁명, 과학 혁명, 기술 혁명, 산업 혁명, 선거 혁명, 사상 혁명을 통해서도 사회의 토대를 근원에서 변혁할 수 있다. 역사를 길게 바라보면 혁명에서 궁극적 승리는 총 끝이 아니라 입과 펜 끝을 통해서 나왔다.

인류 역사에서 대표적 혁명을 꼽으라면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다. 루이 16세는 감옥에서 단두대 처형을 기다릴 때 볼테르와 루소의 저작을 읽으면서 한탄했다. “이 두 사람이 프랑스를 파괴했구나!” 루이 16세에게 프랑스란 의미는 자신의 왕조를 뜻했다. 이 한탄은 혁명으로 몰락한 전제군주가 펜 끝이 혁명의 진정한 무기였다고 생각한 좋은 예다.

우리 사회가 변혁해야 할 가장 큰 모순은 누가 뭐래도 분단체제다. 민족이 분단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프랑스 혁명의 모토는 “자유, 평화, 우애”였다. 오늘 이 한반도에서 가장 절실한 혁명의 모토는 “통일, 자주, 평등”이어야 마땅하리라, 상식을 가지고 민족의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나라는 독일, 베트남 그리고 한반도다. 베트남은 철저한 도덕적 명분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 전쟁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 북베트남이 완벽하게 통일했다. 독일은 막강한 경제력과 합리적인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국가 서독이 통일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남북한 어느 한쪽도 철저한 도덕적 명분, 막강한 경제력, 합리적인 사회의식을 두루 갖추지 못했다. 경제력만 남한이 우위를 점할 뿐이다. 남한을 보자. 친일세력을 청산하기커녕 이 세력들이 남한의 지배 세력이 되어 국가 도덕을 불구로 만들었다. 남한은 전시작전권을 미국에게 빌다시피 맡겨버리는 대미종속적 태도는 아연실색할 비자주적 처신이다. 재벌만 성장하면서 저소득자는 물론 중산층까지 소외하는 양극화 경제,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지배 체제, 조중동 같은 천박한 언론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따위의 비합리가 남한을 지배하고 있다.

봉건 왕조와 다를 바 없는 3대 세습 체제와 최소한의 먹거리도 해결 못하는 북한은 오직 핵무기로만 미국을 향해 자주를 외치고 있다.

한반도 어디로 가야할 건가? 민족의 염원을 실현할 진정한 혁명은 불가능한가?

이 시대에 총구로써 혁명을 이루려는 발상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차라리 시대착오적인 망상이거나 상상력의 빈곤이다. 전쟁은 침략도구가 되어서는 아니 되고, 오직 침략에 대항하는 저항만이 전쟁의 명분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남북한 전쟁 즉 우리끼리 내전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그래서 진보의 가장 큰 덕목은 ‘반전 평화’가 되어야 함은 너무나 마땅하다.

혁명을 총구로 해서는 안 된다면, 인간의 이성으로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이성을 표현하는 수단은 웅변과 글이다. 대포의 출현이 봉건제도를 말살했듯이 이성의 힘으로 분단이 낳은 모순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쓰레기 같은 모순들이란 일본의 식민지배 찬양, 미국에 빌붙는 사대주의 근성,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억지스런 국가보안법, 훈구파적인 위세를 누리는 조중동 같은 언론의 기승, 재벌만 살찌우는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말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속어가 있지만, 진정한 진보라면 폭력보다 이성을 믿어야 한다. 무력으로 획득한 혁명은 무력으로 무너질 수도 있지만 이성의 힘으로 이룩한 혁명은 저항 불가능하고 역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국민이 합리적인 사고를 시작하면 그것을 멈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이성의 힘이란 무엇인가? 이념의 경직성에 빠지지 않고 순간순간 상황에 맞게 깨어있는 행동 태도다. 낡은 질서와 편협한 권력에서 혁명을 이끌어가기 위해 이성은 언제나 새롭고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 왼쪽부터 루쉰, 찰리 채플린, 볼테르, 피카소, 모차르트, 존 바에즈

혹독한 체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싸운 사람은 단지 정치가만이 아니었다. 문학자 루쉰은 5천년 동안 지속한 낡은 중국 봉건체제에 조소와 냉소란 무기를 휘둘렀다. 배우 채플린은 탁월한 유머로 자본주의 모순에 신음하는 노동자의 피눈물을 알렸다. 철학자 볼테르는 웃는 사자의 모습으로 절대 왕조의 질서를 파괴했다. 화가 피카소는 나치와 손잡은 조국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대작 ‘게르니카’를 그렸다. 음악가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봉건 상류사회의 이중성을 마음껏 조롱했다. 가수 존 바에즈는 워싱턴 광장에서 통기타 노래로 미국의 제국주의 야욕을 비난하며 장엄한 반전 평화 운동을 이끌었다.

1951년에 호찌민은 프랑스와 전쟁에 골몰하면서도 미술 전시회를 여는 어느 화가에게 편지를 보냈다.

“학문과 예술 역시 저항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들도 저항 운동의 전사입니다.”

이에 많은 지성인들이 적극 옹호했다.

“문화가 저항 운동에 공헌할 수 있고, 저항 운동도 문화 발전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

이성의 혁명은 이성이 자라나야 할 긴 시간 동안 꾸준한 인내가 필요하다. 한 인간이 성숙하는 데 수 십년이 걸리는데 집단 이성이 성숙하려면 얼마나 더한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1789년 시작한 프랑스 혁명은 약 200년에 지난 1990년대에 비로소 완성했다.

진보 혁명을 꿈꾸는 이여,

조급하지 말자. 역사를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이성의 상상력을 세련하고 풍부하게 키우자.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 공동대표,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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