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빠스또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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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빠스또루리
  • 박종순
  • 승인 2005.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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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빠스또루리였다. 빠스또루리는 와라스 남쪽에 위치한 설산으로 그래도 와라스에 왔는데 산을 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본격적인 등반은 아니지만 차에서 내려 그곳 베이스캠프까지 걸어서 올라야 했다.

정상은 5240m이지만 그곳은 해발 5000m정도로 천천히 걷기에도 숨이 가빴다. 앉았다 일어서면 현기증이 일기도 하며 두통이 있기도 하고, 소로체(soroche)라는 고산증을 처음 느껴본 곳이기도 했다.

처음 와라스에 올 때는 고산증 예방약도 열심히 먹고 대비를 했는데, 며칠 별 문제없기에 괜찮나 싶어 약을 먹지 않았더니 역시 고도가 많이 높아지니 당장 증상이 느껴졌다. 산에서는 그래도 여러 증상들이 나타났을 뿐 심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와라스로 내려와서 증상이 심해졌다.

정말 모든 것이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누워있고만 싶고 두통약을 먹었는데도 머리는 깨질듯 아프고 마치 감기 몸살이 들린 듯 으스스 춥고 떨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점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면서는 또 언제 그랬나 싶게 말짱해지기에 어찌나 살 것 같던지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번 투어 버스에는 주로 젊은이들이 많았고, 시즌 막바지 빙벽등반을 하러가는 팀들도 몇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활기찬 모습들로 시종일관 신나게 노래하기도 하고 떠들어 대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올라가면서 빙하가 녹아 생긴 습지를 지나기도 했고, 그 주변에서 키를 낮추고 피어있는 갖가지 들꽃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 높은 고지에서 꽃을 피어내고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들꽃들에서 역시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서운 바람과 낮은 온도,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급적 낮게 한껏 키를 낮추고 있는 모습에서는 험한 세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듯 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높은 고지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그런 들꽃처럼 척박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스페인 침략 이후 자기들 마음대로 좋은 땅은 이미 자기들 소유로 해 놓고, 이들을 이런 땅으로 몰아낸 백인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황무지라 느껴졌던 곳에 뭔가 사람 사는 흔적들이 보여 자세히 봤더니 움막이라 부르기도 뭐한 집에 가축을 가두는 돌담들이었다.

빙벽등반을 위해 왔던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장비를 갖추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빙하의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지만, 어찌나 바람이 차고 세던지 별로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마땅히 식사할 곳도 없어 조그만 가게에서 옥수수와 코카차로 요기를 했는데, 옥수수가 어찌나 큰지 하나만 먹었는데도 금방 배고픔이 가시는 듯했다.

페루에서는 코카차를 참 많이 마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코카는 많은 효능을 가진, 그곳에서는 마치 민간요법처럼 사용되는 약초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나무의 잎이다. 그렇다고 차로 마셔서 마약효과가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무려 코카잎 12kg에 코카인 1g이 정제된다 한다.

비록 콜롬비아가 코카인의 제조 및 유통에서 유명하지만 그 원료가 되는 코카나무 재배면적에서는 페루가 단연 최고다.

옛날 잉카인들은 이 코카나무를 신이 주신 선물로 굳게 믿어 왔다한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분포가 비교적 높은 고산지대에 가면 이 코카잎은 아직도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특히 고산병 증상완화에 도움이 돼 차로 끊여 마시거나 마른 코카잎을 씹어 먹는다.

또 이 코카잎을 씹으면 일시적으로 배고픔도 잊게 해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고산지대 원주민들은 긴 끈이 달린 작은 주머니에 항상 코카잎을 갖고 다닌다. 나중에 갔던 티티카카호수에 타퀼레섬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는 코카잎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풍습도 있다.

이 코카성분이 환각, 마취효과를 갖고 있어 과거 잉카시대 때는 두개골을 절개한 뇌수술을 한 흔적도 있는데 이때 코카잎을 마취제로 사용했다 한다. 차빈의 석두상에도 코카에 의한 환각이 지나쳐 코피가 흐르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 고산지대 기후의 특성상 낮에는 강렬한 태양빛으로 상당히 덥지만 밤에는 고도차이로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데, 이때 코카잎을 먹으면 추위를 잊게 해주고 몸도 훈훈해지게 된다.

이러한 효능은 결코 환각작용이 아니고 코카잎이 갖고 있는 특별한 성분이 혈류량을 늘려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작용으로 인해 고산지대에서는 필수품처럼 사용했기에 옛날 잉카인은 이 코카나무를 신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귀히 여겼는데, 이를 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를 기이히 여기고 마침내 코카의 효능을 알아내 결국 이 신이 준 선물이 서구 정복자들과 만나면서 '코카인'이라는 저주받은 마약류로 변질해 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시는 가장 대표적인 청량음료 가운데 하나인 코카콜라도 바로 이 코카나무에서 코카인을 추출하고 콜라나무에서 카페인성분을 추출한 원료로 만든 음료이다. 물론 나중에 코카인 성분은 제거 되었지만 아직 많은 코카나무 추출물이 사용되고 있다.

빗나가는 이야기가 되지만 페루사람들은 참 청량음료를 많이 마신다. 큰 병은 3.15리터짜리까지 있고, 그렇게 큰 병을 가지고 다니며 마시는데 특히 잉카콜라가 인기가 좋다. 색이 노란콜라인데 우리나라 박카스 맛이 나면서 별로 입맛에 안 맞던데, 전 세계적으로 그 지역에서 코카콜라를 능가하는 콜라로 거의 유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잉카콜라를 앞지르기 위해 모든 공력을 기울렸지만 결국 다국적 제국주의 기업은 잉카콜라를 사들이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다. 역시 잉카의 자존심이고 저력인가?

붙여본 음악은 칠레 그룹 키만투의 앨범 ‘Pilgrimage to the Andes’중에 Pastorcito De Belén이다. 이 앨범은 두 파트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안데스 광산 노동자를 위한 미사곡 형식으로 쓰였다. 그 중 Kyrie는 리마 까떼드랄과 산프란시스코 성당부분에서 소개했고, 2부는 특이하게도 안데스지역의 크리스마스 캐롤로 모두 다섯 곡이 들어가 있다.

박종순(서울 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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