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 “치과 떠나 행복한 나는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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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익 “치과 떠나 행복한 나는 철학자다”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3.11.18 23: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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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① 이 시대 의료윤리 고민하는 부산대 의료인문학교실 강신익 교수

 

졸업 후 진로가 다양한 인문계열과 달리 의료계, 특히 치과대학을 거쳐 간 다수의 졸업생들이 숙명과도 같은 외길인생을 걷는다. 그 중 또 다른 길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치과인들이 있다.

실제로 정계 진출은 물론, 건축가, 변호사, 기업가, 교육자, 가수 등으로 다방면에서 뜻을 펼치는 ‘치과태생’들이 종종 등장해 눈길을 끈다. 본지는 이렇듯 치과계 안팎에서 다소 이색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인터뷰이로는 본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전민용 원장(비산치과)이 나섰다. 그가 선택한 첫 번째 인터뷰어는 한 때 평촌 일대 치과의원 인기투표 1위의 영예를 누렸던 강신익 교수(부산대 치전원). 치과계에 머문 세월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인문학 연구에 쏟아온 강신익 교수의 진솔한(?) 조금은 따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 1일 저녁 안양 비산동의 한 카페에서 강신익 교수(우)가 전민용 원장(좌)과 얘기하고 있다.

인문의학 벗어나 실천할 수 있는 인문학 찾는 중
의치한의학 함께 할 수 있는 부산대 가장 좋아
젊은 교수라면 못했을 것들 ‘나이 들어 좋은 점’

- 부산대 치전원 교수 임용을 축하드립니다. 학교를 옮기신 이유가 뭔가요?

“개인적인 신념으로 인제대에서 10년을 보냈어요. 내가 원하는 일을 해왔지만 앞으로 10년 이후의 가능성이 보이질 않아 답답하던 시점이었죠. 지금은 의료인문학 분야로 넘어왔어요. 저도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옮기고 나니 미묘한 차이가 나더군요. 우선 일전에 의과대학에서 가르친 인문의학이 의학의 한 부분이라면, 이번엔 의학 본연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치과대학으로 왔다는 겁니다. 이곳에서는 의학 또는 치의학 그 자체보다는 인문학을 어떻게 그 현실에 적용하는가가 더 관건이라는 생각을 해요”

- 이직 후 어떤 변화가 있나요?

“여긴 의료인문학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치과의료인문학’이라는 세분화된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부산대의 특성입니다. 부산대는 메디컬 캠퍼스가 양산에 따로 있고, 그 안에 의학, 한의학, 치의학, 간호대학까지 네 개 대학의 캠퍼스가 모여 있어요. 저는 치의학전문대학원 소속이지만, 의료인문학은 네 개 대학이 공통으로 추진하고 있죠. 과거 인문의학이라는 자체에 묶여 있었다면, 이제 좀 더 실천해나갈 수 있는 인문학을 찾는 겁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좀 더 자유롭게 인문학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웃음)”

- 간호대, 한의대 모두 강의하시는 건가요?

“지금 현재는 아니에요. 여기 와서 안건데, 2015년부터 부산대 의과대학에 새로운 과정이 생긴다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부산대는 의전원이 의대로 돌아가는 반면, 치전원과 한전원을 돌아가지 않았죠. 세 개 대학이 2년 내지 3년 간 공통으로 인문학과정을 만드는 곳은 이 곳뿐입니다. 앞으로 변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6학점 전공필수과목으로 공통 적용할 계획이에요. 저로서는 굉장히 도전적인 일이죠(웃음). 제가 그간 공부해왔던 것을 펼치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직업학원이 된 치과대학과 생계형 학생들
‘의료민영화’ 저항하지 않는 요즘 치대생
교육은 사라지고 기능적 의료윤리만 남아

- 십수년을 교직에 계셨는데요. 과거 학생들과 요즘 학생들, 어떻게 다른가요?

“그건 7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 땐 유신시절이었지만 치과대학생들 중에는 일부만이 불만을 가졌죠. 요즘은 그나마 그런 일부도 없다는 게 차이점일 수 있겠네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계형이에요. 치과대학을 직업학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에요. 교육기관 본연의 교육은 사라지고 윤리까지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지는 거죠”

- 왜 그럴까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어요. 치전원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서른이에요. 등록금도 싸지 않죠. 대출 내는 학생들도 많아요. 졸업해서 나가자마자 해결해야 할 게 돈이에요. 물론 이런 현실을 비판할 순 있겠죠. 그래도 이게 전면적인 이유가 될 순 없어요. 교육은 당위 위주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 70년대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했잖아요. 이제 삶의 수준이 많이 향상됐는데,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더 민감해요. 좀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세상이 다 돈으로 돌아가니 더 그럴 수밖에 없죠. 물론 70년대에도 돈이 중했지만, 돈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사라졌고요.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사회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거의 없죠. 의료민영화에 맞설 때도 학생들로부터 동력을 얻을 수 없어졌어요. 현실을 사는 게 더 중요해진 거죠”

- 1960~197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도 자본주의의 전성기였죠. 인문학적으로도 노동자, 즉 인간을 위한 제도가 형성됐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도리어 후퇴했어요.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역설적으로 인문학이 악화됐다는 증거는 의료운동이 시작되는 60년대부터 나타났고, 그 후 쭉 더 심해졌죠. 의료운동이 시작됐다는 건 곧 그 가치가 사라졌다는 반증이에요”

- 먹고 사는 게 나아지니 가치를 잃었다는 건가요?

“우리가 소위 인문학이라고 자주 이야기하죠. 재밌잖아요. 인문학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먹고 살만하다는 증거에요. 이제 가치를 찾아야한다고 말하지만, 먹고 사느라 이미 가치를 잃어버린 거예요. 인문학운동 자체가 아주 역설적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을 찾는 정신자체가 비인문학적이죠. 우린 이미 비인문학적으로 살아왔고 성장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인문학을 통해 그걸 순화시키고 행복해지려고 하죠. 인문학이 내 삶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돼 버렸어요. 의대나 치대가 인문학을 찾는 이유도 상당부분 여기에 있다고 봐요”


대한민국 의사들 지독한 피해의식부터 버려야
‘아청법’ 가치 없는 절차적인 윤리론 못 풀어
허울뿐인 ‘윤리위’ 독점체제에서 협의체로

- 의료계에 빗대보면, 과잉진료 문제가 많이 대두될수록 의료윤리가 강조된다는 거죠. “현상이 후퇴될수록 윤리학은 발전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가요?

▲ 전민용의 만남 첫 주자 '강신익 교수'
“한국사회가 의료윤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첫 번짼데,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던 환자가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 환자 보호자가 병원비를 댈 자신이 없다고 환자를 퇴원시켰어요. 환자는 죽고 유가족들이 의사와 아내를 고발하면서 이들은 살인자가 됐죠. 그 다음이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벌어진 의사들의 파업이었고, 그 후로 2005년엔 줄기세포 파동이 있었어요. 이 큰 계기들 중에 치과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죠. 그래서 더 의료윤리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놓고 의료계가 시끄러웠죠. 의료인에게 더 높은 윤리의식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본적인 중심가치를 못 챙기기 때문에 혼란이 온 겁니다. ‘환자의 권익을 위하고 있는가’와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겠다’ 하는 두 가지 가치를 말하는 거예요. 의료를 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죠. 이 두 가치를 바탕으로 하면 성추행이라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 문제는 환자를 진료하는 자체가 침습적인데, 그 행동을 해석하는 여지가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법조인들이 늘 하는 얘기해요. ‘판사가 바보냐?’ (피하자가)추행을 주장한다고 해서 판사가 곧이곧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청법에 반대하는 것 역시 살아온 가치 반성 없이 절차로 윤리를 대하겠다는 거죠. 대한민국 의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독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거죠. 의사를 규제하는 법안은 무조건 공산주의로 몰아붙이잖아요. 나는 항상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이제 벗어나야죠”

- 치과계가 윤리강령을 만들고 윤리위원회를 구성한지 10년 가까이 됐어요. 그동안 윤리위는 딱 두 번 소집이 됐고요. 작년에 의료법 개정안으로 협회에 자율징계권도 생겼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못보고 있는데요. 문제가 뭘까요?

“핵심은 윤리위든 뭐든 치과의사들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치과의사협회는 이익단체예요. 10년 전 당시에는 문장으로만 그럴싸하게 만들었을 뿐 좋은 의도였다고 볼 순 없다는 거죠. 제대로 신뢰받으려면 끼리끼리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영국은 치과의료정책을 다루는 조직이 별도로 있어요. 치대 교육기준부터 과정, 면허관리, 징계 등 일말의 과정을 모두 그 조직이 관리해요. 50년대에 처음 조직이 구성될 땐 대부분이 치과의사였지만 지금은 반반이에요. 치과의사협회가 만든 조직도 아니죠. 독점체제에서 협의체로 넘어온 겁예요. 우리도 그렇게 가야죠. 프랑스는 아예 법과 윤리가 구분 안 돼 있어요. 윤리기준 자체가 법적 처벌 사유가 되죠”


평촌 개원의서 영국유학까지 지원자는 와이프
치과 임상 떠난 건 ‘가장 잘 한 선택’
내년 여름엔 의료인문학 자전거 여행 떠날 거예요

- 마지막으로 좀 개인적인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원래 전공이 구강외과시죠. 백병원에서 5년 근무하셨고, 개원하고는 평촌에서 잘나가는 개원의로 이름을 떨치셨는데요. 돌연 영국유학을 가셨어요. 그것도 전공하곤 전혀 무관한 의철학 전공으로요. 웨일즈스완지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로 들어가셨는데 바꾸실 때마다 후회는 없으셨나요?

“치과의사 임상을 그만둔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해요(웃음). 사실 와이프의 지원이 없었다면 못했을 일이죠. 가장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고,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감사하죠. 와이프에게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 상위 2~3% 안에 드는 후배들이 어렵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불안해하고, 개원가에서는 폭행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도 생기는데요. 조언을 해주신다면.

“요즘 치전원 학생들은 자기들 스스로 출결관리를 해요. 타대학에 비해 의과대학생들의 우울증 척도도 높아요.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죠. 학창시절 경쟁에서 이기고 잠시 승리감에 도취할 뿐이지 끊임없이 압박에 시달립니다. 개원 후에도 그렇죠. 수익 문제는 부차적인 거예요. 경기가 좋단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항상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불만을 긍정적인 동력으로 활용해야죠. 자신에 대한 가치관, 의료인의 기본적인 가치를 지킨다면 환자와의 관계는 자연 좋아집니다. 진짜예요. 결국 환자와의 사이도 관계의 문제거든요”

▲ 본지 대표이사인 전민용 원장
- 어느 책에서 봤는데,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15분간 녹취해서 점수표로 분석을 하면 15년 내에 의료소송을 당할 확률을 90% 이상 맞춘다고 하네요. 목소리 톤만으로도 70%를 맞춘대요. 소통의 문제인 거 같은데요. 이건 교육으로도 어렵겠죠?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선 비언어적인 소통이 훨씬 중요해요. 의과에선 이미 몇 년째 이걸 교육하고 있죠. 의사면허 시험 때 실제로 모의환자 실습을 하는데 여기서 많이 떨어집니다. 간호사 출신들이 모의환자 역할을 많이 하죠. 딱 보면 알아요. 저도 이제 (임상에서) 물러난 지 10년쯤 됐으니 이제 (치과계에서) 이런 일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 그동안 저서도 많이 내셨어요. 의료인들에게 꼭 한 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를 추천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잘 안보는 책이죠(웃음). ‘의료인문학’이 아닌 ‘인문의료학’에 대해 이해하게 될 책이라고 생각해요”

- 요즘 부산에서 어떻게 지내세요?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24시간을 콘크리트 안에 갇혀 살다가 부산대에 오니 가장 좋은 게 자연이에요. 여기 오면서 생활이 많이 달라졌죠. 우선 출퇴근부터 하루 40분을 걸어요. 요즘은 자전거에 취미가 붙었어요. 치과대학 1학년 때 친구 셋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37년 전이죠. 이제 부산에서 서울로 거슬러 올라오는 걸 해 보고 싶어요. 내년 여름쯤 도전해볼까 해요. 부경건치에서 같이 떠날 분을 찾는다고 홍보 좀 해주세요(웃음). 타이틀은 의료인문학 자전거 여행으로 할게요. 학생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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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2013-11-19 13:42:24
치과의사를 양성하는 교육자이면서 본인은 스스로 치과의사 임상을 그만둔 것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왠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자기는 먹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듣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서 조금 다른 표현을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양호 2013-11-19 10:43:10
이제 정말(?) 치과계로 돌아오셨으니 좋은 얘기들 많이 많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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