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인이 사라진 에이즈의 날
상태바
에이즈 감염인이 사라진 에이즈의 날
  • 김랑희
  • 승인 2013.12.12 12:2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랑희, 인권활동가

 

12월은 마치 한해 인권을 총정리하듯 인권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날들이 많다.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12월 15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그리고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제정일이다. 올해로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지난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 65년이기도 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서 세계인권선언일과 같은 햇수를 세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또는 오히려 후퇴한 반인권적인 현실을 다시 이야기하게 되는 이 날들을 웃으며 맞이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각각의 날들을 맞이하는 인권의 주체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들이 있음을, 그로부터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걸음을 함께 내딛는 시작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말을 건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응답을 하고 있을까?

 

 

HIV/AIDS감염인을 배반한 세계 에이즈의 날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에이즈 공익광고를 보게 되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에이즈는 이제 만성질환의 하나일 뿐이며, 치료와 관리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거 에이즈를 죽음의 병으로 이미지화하며 공포를 조장했던 것에 비하면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고를 제작한 곳을 보니 기가 막혔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라는 이름을 본 순간 이들은 진정 HIV/AIDS 감염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이런 광고를 제작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왜냐하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11월 30일로 예정되어있던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를 코앞에 두고 11월 27일 기념행사를 취소하게 했기 때문이다.

1993년부터 에이즈 민간단체(한국에이즈퇴치연맹, 대한에이즈예방협회)와 정부의 주도로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해왔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후원하고,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번갈아가며 정부예산으로 기념행사를 주최해왔다. 올해도 역시 제26회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주최로 거리행사와 콘서트 등이 준비되었다. 물론 질병관리본부도 함께. 그리고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이 행사에서 ‘캠페인 진행, 팸플릿 나눔’을 위해 부스 1개를 신청했다.

그런데 돌연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관련 단체들의 피켓시위 등의 시민들의 안전문제가 대두됨’을 이유로 기념행사를 취소하도록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지시했다. 이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은 ‘제26회 세계에이즈의 날 행사(레드리본 희망의 콘서트)를 취소했는데 부스를 신청한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지금껏 기념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도, 공문도 받지 못했다. 손을 내밀어 다가가자는 질병관리본부는 정작 감염인들이 직접 시민들과 만나 소통하려는 기회조차 박탈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시민의 안전'이라는 이유와는 다른 상당히 의심 가는 이유가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안전을 들먹이며 우려하는 ‘에이즈관련 단체’의 피켓시위는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일환인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캠페인 때문일 것이다.

피켓시위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 내용 때문일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피켓을 들고 선전물을 나눠주며 국가의 에이즈관리사업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마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로 둔갑시킨 것이다. 에이즈의 날에 에이즈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3,500만 원이 든 기념행사를 이틀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감염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막아버리는, 참여를 배제하는 질병관리본부의 행위로 세계 에이즈의 날은 감염인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날이 되었다.

 

 

‘유일한’ 병원에 맞선 용기

지난 11월 5일과 27일 HIV/AIDS감염인들이 국가에서 지정한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세상에 알렸다. 다른 요양병원에서는 HIV/AIDS감염인을 거의 거부한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시작했고, 수동연세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병원이 되었다.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하나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탁해온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들은 그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참담한 대우를 받았다. 적절한 의료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과 징벌, 감시 및 프라이버시 침해, 간병인 노동력 착취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간병인들은 40분으로 정해진 식사시간 동안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자신도 밥을 먹어야 해서 물에 만 밥을 떠밀다시피 먹여야 했고, 환자 한 명당 하루에 2번 배정된 재활치료 스케줄을 처리하기 위해 환자를 윽박지르고 때리기도 했다. 욕창 환자의 드레싱과 썩션 등 치료 행위뿐 아니라, 사망한 에이즈 환자의 염도 간병인들이 했다.

에이즈 환자의 병실을 간병인이 청소하도록 했는데, 병원의 다른 곳의 청소는 청소노동자가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동연세병원은 인성교육을 빌미로 예배를 강요했고, 간병인들에게 일상적으로 환자감시를 지시했다. 다른 병동의 환자를 만나거나 ‘에이즈’에 대해 얘기한 환자에게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징벌했다. 수동연세병원은 간병인과 환자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일체 밖에서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환자들은 “해주는 것 없이 환자를 눕혀놓기만 하면서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진료비를 챙기는” 병원을 보고 화가 났지만 ‘유일한’ 요양병원이라서 참아야 했다. 이렇게 에이즈 환자에게 배제와 차별,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는 동안 관리・감독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묵인하였다. 질병관리본부의 무책임함과 HIV/AIDS감염인에 대한 무시는 환자 사망, 차별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유일한' 요양병원마저 잃을까 걱정하던 환자들은 3년 만에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육신과 정서를 치유한다고 광고하는 이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는 차별과 모욕으로 마음을 다치고 제대로 진료도 받지 못해 병이 깊어지기만 했다. 병원은 환자들과 감염인 단체들의 문제제기에 귀 기울지 않고 있고,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운영상의 문제와 질병관리본부의 관리감독 부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직무윤리교육 및 복무규율 강화 등 직원 관리 철저’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지시는 환자 치료 방치, 환자의 자기결정권 무시, 차별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를 취소해버렸다.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날 또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날-장애인의 날, 이주민의 날처럼 세계 에이즈의 날도 HIV/AIDS감염인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날이다-은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게 만들거나 유명인을 부르는 정부행사에 구경꾼으로 만들게 하는 날이 아니다.

그들의 삶에서 겪는 문제들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드러내고,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와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주고, 차별과 배제 속에도 용기를 잃지 않은 그들에게 응원과 힘을 보태주는 날이다. 그들을 삶을 은폐하는데 국가가 앞장선다면 차별과 배제의 사회는 더욱 견고해지게 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자신들도 실천하지 않을 저런 공익광고를 만들었단 말인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질병

고등학생 때 결핵을 앓았다. 병원에서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는 요즘 시대에도 ‘결핵’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 의아스러웠다. ‘결핵’은 가난한 나라에서나 발생하는 병이거나, 혹은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이 걸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결핵’은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더욱 걱정이었다.

병의 특성상 너무 피로감이 심해 장시간의 수업을 의지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맨날 잠만 잔다고 놀렸지만 내가 결핵 환자인 것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무도 내 곁에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8개월의 치료기간 동안 난 휴학을 할 수도,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과 외로움만 있었다. 친구들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비밀을 간직한 마음은 오히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결핵 환자는 생각보다 많았고, 주의만 기울이면 쉽게 전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약을 잘 먹으면 치료가 되는 그런 병이라는 것을.

이렇게 어떤 질병은 의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이다. HIV/AIDS라는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은 질병의 증상을 경험하는 것보다도 사회적으로 구성된 질병의 의미로 인해 제한된 삶의 조건을 경험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HIV/AIDS에 대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낙인과 편견, 공포는 질병 당사자를 고립시키고, 국가의 통계자료와 자극적인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을 넘어,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들을 기회를 희박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적 시선에도 용기 내서 감염인으로 사는 삶을 드러낸 그들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할 것은 박수다. 그리고 그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이 여전히 ‘유일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야 한다.

‘유일’하다는 것은 그것 외에는 배제되어 있거나 박탈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기 때문에 그런 인권침해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내년 세계 에이즈의 날에는 모든 병원에서 

HIV/AIDS감염인들이 차별 없는 진료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전양호 2013-12-12 17:00:56
정말 살수가 없다...살수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