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정책 논설•시론
[시론]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들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3.05 00:00


“일하지 않는다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 성경 말씀을 가장 새겨들어야 할 집단이 정치인이라는 데 이의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영리한 도둑이 칭찬 받듯이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이들이 하면 범죄인데, 정치인이 하면 통치행위니 초법적 행위니 하는 야릇한 이름을 붙여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코메디를 연출한다.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는 정치판은 점입가경이다. 재벌에게 구걸과 협박을 해 차떼기로 수백억원의 검은 돈을 챙겨온 것이 드러나자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집권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게 한나라당의 진심이다.

그런 돈으로 철새정치인에게 ‘이적료’를 지불한 것은 이제야 꼬리 잡힌 관행일 뿐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인 이문열은 이에 대해  “목소리는 분노로 높고 혀는 조롱과 야유의 악의로 뒤틀려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라 했다. 이제까지 한나라당을 대변한 그조차 “한나라당은 싹수가 노랗다. 자폭하라”고 권했다.

열린우리당이 싫어 한나라당에 공조해 서청원 의원을 ‘탈옥’시키는 데 일조한 민주당의 작태는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폭거’이자 이번 정치 코메디의 백미였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 역시 국민의 지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DJ정부에서 군사정권에 있음직한 날치기 통과를 주도한 정치인이 핵심 자리를 차고 앉아서는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을 당론으로 반대해 왔으면서도 특전사 해병대 같은 전투 병력을 3천명이나 추가 파병하는 문제로 한나라당과 공조해버렸다. 남에게 개혁의 잣대를 들이 댈 자격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정치인은 여야할 것 없이 이권의 내막이 밝혀질 때마다 너무나 당혹해 하는데 그것은 마치 매춘부가 자신의 정조가 유린된 것을 불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민주당에서 탈당과 복당의 부침을 거듭한 정범구의원이 더 이상 “범죄 구조에 부역할 수 없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금 정치판이 얼마나 추악한 블랙홀인지를 쉽게 짐작케 해준다. 

이런 난장 정치에 주위의 누가 뛰어들라 하면 우선 경원시하는 것이 일반인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선거철만 되면 이 판에 뛰어들 장삼오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정치는 곧 권력이며 정치인은 사회의 리더로 대접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리더들은 노블리스(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오블리제(책임)를 행하지 않았기에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툭하면 색깔론을 외치거나 지역주의에 기대 국민의 견제와 비판을 비켜나갔다. 재벌과 유착해 검은 돈을 얻어 타면서 공생을 다졌다. 이제 더 이상 정치인들에게 자정을 요구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다.

꼴불견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의 자질이지만 이런 풍토를 외면하는 보수 언론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지난 연말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후원금 영수증의 선관위 제출 의무화 거부, 돈세탁 방지제도 강화 반대, 선관위 조사권 강화 반대”같은 개악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한겨레는 머릿 글에 ‘정치개혁안 개악 비난 빗발’이라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이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재산세가 강북에서는 20-30%인상하는 데 비해 강남에서는 5-6배가 오른다는 부자들의 우려를 일면 톱으로 대변해 주었다.

 경제계 또한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 정치인이 정치의 키를 잡고 있지만 동력을 제공하는 쪽은 재계이다. 항상 정치인에게 핍박받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정경 유착이 탄로날 때마다 국민경제를 볼모로 사법처리를 피해갔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재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족벌로 강화되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안티스테스는 타락한 정계를 보며 이렇게 개탄했다.
“사람들은 곡식을 심어놓고 독보리를 열심히 골라낸다. 또한 군대에서는 용기없는 병사들을 가려내 집으로 돌려 보낸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천하고 추하며 극도로 못된 자들이 정부 속에 끼여 있어도, 그들을 가려내 내치지 않는다.”

결국 정치 변화의 몫은 국민의 것이다. 물을 병에 부으면 물은 병과 똑같은 형상이 된다. 물은 정치인이고 병은 국민이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필경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4길 21, 제1호 3층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9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