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94]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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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94]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 전민용
  • 승인 2014.02.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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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 천년의 상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 전문>(1968.5.29.)

 
김수영이 68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니 ‘풀’은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많은 시인들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민중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한 현실 참여시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강신주는 이 시에서 김수영의 여유로운 ‘자유정신’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예고를 읽었다고 말한다.  

6월 16일은 강신주 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니까. 강신주는 자신의 육체를 낳아 키워준 것은 아버지지만 정신을 보듬어 키워준 것은 김수영이라고 고백한다. 정신과 육체의 아버지가 같은 날 돌아가셨으니 예사 인연은 아닌 것 같다. 두 사람 다 6월 15일에 사고를 당하고 다음 날 사망했다. 김수영을 시인을 넘어 우리나라 최고의 인문정신의 구현자라고 생각하는 강신주의 ‘김수영 해설’이 이 책이다.

김수영은 1950년 4월 김현경과 결혼식 없이 동거에 들어간다. 이화여전을 다녔던 김현경은 문학과 회화에 조예가 깊고 수려한 미모까지 더해 김병욱, 박인환 등 다른 문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김수영 역시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누구나 부러워 할 선남선녀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터진 6.25는 김수영에게 평생 치유할 수 없는 두 가지 정신적 외상을 안겨준다. 김수영은 북한의용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간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탈출에 성공하지만 다시 인민군에 잡히고 거짓말로 다시 도망치지만 이번에는 경찰에 체포되어 수난을 당한다. 결국 김수영은 인민군 첩자로 낙인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이곳에서도 김수영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사이에서 인간의 자유가 이념에 의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를 비극적으로 체험한다.

김수영에게 또 하나의 비극이 닥친다. 김현경이 50년 12월 김수영의 첫째 아들 준을 낳은 후에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부산으로 내려가 김수영의 고교 동창인 이종구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김수영이 거제도 수용소에서 나온 후 김현경을 찾아가 함께 서울로 갈 것을 권하지만 김현경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김수영에게는 참을 수 없는 좌절이자 모욕이었을 것이다. 54년에 김현경과 합치고 나중에 둘째 아이까지 낳지만 김수영은 다시는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연애시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강신주가 보기에 김수영이 겪은 비극적인 정신적 외상은 김수영의 인문정신인 자유정신의 뿌리가 된다. 특히 반공포로로 지냈던 2년의 경험은 피와 땀과 굴욕의 현장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자유정신을 영혼 깊숙이 각인시킨 기간이었다. 김수영이 박인환이나 김춘수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도 자신만큼 바닥까지 내려가는 삶을 체험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한다. 절박감과 진실함이야말로 김수영이 가진 긍지의 실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김수영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김수영이 단순히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단독성을 추구했고 그것이 다른 모더니티 시인들과 다른 점이라고 강조한다. 단독성을 통한 보편성의 획득,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쓰는 시가 김수영 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강신주가 본 김수영이 마음에 품었던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 내고, 그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다. 이런 민주적인 사회는 단독적인 자아들이 서로 공명하는 보편성이 회복된 사회이자 자신들이 온 몸으로 겪어 낸 삶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예술적 사회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시인은 이런 자각된 이상을 온 몸으로 실천하면서 모두의 삶과 언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의 시를 쓰는 사람이다. 진정한 시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감각, 이상을 꿈꾸는 집요한 이성,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비판적 감각은 김수영을 참여 시인으로, 새로운 표현은 그를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오해하게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김수영의 이상이라고 강신주는 강조한다.

강신주는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김수영이 스스로 도는 팽이를 노래한 ‘달나라의 장난’이란 시에 큰 위로를 받았고, 철학도 글쓰기도 계속 해 나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을 만든 김서연은 서럽고 힘겨울 때마다 김수영의 ‘거미’를 끼고 살았다고 한다. 나에게는 좋아하는 시들은 있었지만 내 가슴을 울리는 나만의 인생의 시가 없다는 것이 바로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김수영의 삶과 시와 산문들에 대한 강신주의 ‘단독적인’ 해석이다. 그의 단독적인 해석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일정 부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음을 밝힌다. 강신주는 이제 김수영과도 이별을 고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김수영 없이도 스스로 도는 힘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김수영을 통해 스스로 도는 힘을 터득한 강신주를 참고해서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 갈 용기와 지혜를 얻는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로 충분할 것이다.

2013년 체제라는 희망이 좌절되어 간 2012년 무렵에 읽으며 위로 받았던 김수영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 그 방을 생각하며 -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슨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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