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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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part 3
  • 정준오 학부생
  • 승인 2014.04.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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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정준오 치전원생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스님

 

폰페라다-트라바델로 코스는 산티아고 길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30km를 넘은 코스였고, 8시간이 걸렸다. 달리듯 걷는 법을 터득해서 조금 더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폰페라다에서 함께 머물렀던 다른 순례자들보다 조금 더 멀리 걸어서, 작고 조용한 마을 트라바델로의 아늑한 사설 알베르게에 호세 형들과 셋이 묵었다. 모두 많이 피곤했던 탓에 샤워와 빨래 후 곧장 드러누웠다. 졸리고 피곤하고 아픈, 힘든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지만 마음만은 단연코 행복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먹어주고 자야한다. 드러누웠던 우리 셋은 절뚝거리며 알베르게를 나서 동네 식당을 찾았다. 스페인 식사는 세 코스로 나오는데, 저녁은 디저트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두 번째 메뉴 모두 고기류로 주문했다. 근육이 생기는 느낌. 큰 호세는 서른 넷, 영어를 잘하는 작은 호세는 서른하나. 서른 줄 남자들의 수다와 함께한 오붓한 저녁식사. 남자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역시 여자 이야기다. 우리의 결론은 서울과 마드리드 어디나 ‘Women are women.’

서른이 되면 이성에 대해 철학자가 되나 보다. 오르막이 이어지던 멋진 산길에 서 갑자기 작은 호세가 걸음을 멈추더니, “hey, pepe!” 날 부르고는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El camino is like a woman!”
어리둥절했더니, 덧붙인다.
“More beautiful, more difficult.”

▲ 알베르게에서는 훈훈함이 넘친다. 다른 순례자의 발을 치료해주는 호세형님

 

다음 날, 오세브레이로에서 다시 만난 대부분의 순례자들과 호세 형님들은 모두 트리아세라까지만 간다고 했고, 나는 그보다 10km를 더 걸어 사모스까지 가기로 했다.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동행이지만 빠듯한 일정상 그래야만할 것 같았다. 갈 수 있을 때 조금 더 가는 것이 좋겠다는 동물적 판단에서다.

호세 형님들의 만담을 듣지 못하는 것도, 멋진 미소를 보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형들이 도와주었던 식당에서의 주문도 모두 내 손으로 해야 한다. 그런 귀찮음보다 따뜻함이 줄어버린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인연, 내가 더 힘들지 않게 사람 집착은 하지 않기로 했다.

▲ 별빛 가득한 오세브레이로의 밤하늘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인연들과 분홍빛 아침 하늘이 예뻤던 오세브레이로 알베르게를 떠나 일찍이 길을 나섰다. 10km를 걸어 언덕 위 작은 알베르게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엔, 달리듯 앞장섰다. 줄곧 내리막이어서 20kg 배낭을 지고 뛰어다녔다. 트리아세르에 이르러 형들과 뜨거운 작별 포옹을 나누고, 작은 마을을 떠나오는 길에 왠지 울컥했다. 이 좋은 사람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여느 아침처럼 “페페, 바모스(Vamos)!” 하며 큰 호세가 마지막 선물처럼 주었던 쌀 과자 아몬드바를 꺼냈다. 그냥 과자가 아니라 함께 했던 기억을 베어 물었다. 힘이 났다.

▲ ‘Good speed is your speed’

‘오늘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며 들어온 수도원 알베르게. 어쩜 이럴 수가. 커다란 알베르게에 혼자였다! 수도원에서 순례자 여권에 확인 도장을 찍고 슈퍼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는 동안 어둠이 내렸다. 샤워하면서 발에게 이야기 했다.

고생 참 많았다고. 빨래도 하고, 과자를 꺼내 들고 누우니 큰 성에 사는 왕이 된 것 같았다. 유난히 다리가 저려서 노곤하기도 했다. 절뚝거리며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면 다시 걸 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이미 알고 있다. 아침이 오면 마법처럼 또 걸을 만하게 된다는 것을.

사모스 수도원 알베르게의 방명록에는 여느 알베르게처럼 한국인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곳이 산티아고 최악의 숙소라는 소문이 있나 보다. 하지만 담요를 두 장 덮으니 춥지도 않았고, 따뜻한 물이 철철 나왔고, 침대 벌레도 없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어서 커다란 것을 기대할 수 없기도 했지만 불편한 것도 없었다. 방명록을 뒤적이다 보니 나보다 조금 앞서 간 신혼부부가 있어 놀랐다. 산티아고 길을 모두 걸은 뒤 프러포즈했다는 터프하고 낭만적인 커플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가슴 아프도록 부럽다.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이틀 거리에 앞둔 아르주아 알베르게 침대 위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이틀만 더 걸으면, 이 지긋지긋한 짐을 들고 절뚝거리며 하루 여덟, 아홉 시간씩 걷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묘하게 길이 끝나가는 동안 아쉬움이 커지고 있었다.

그저 여행 중에 알게 되어 얼떨결에 걷기 시작한 길인데,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생각한 여행인데, 이렇게 좋은 길을 800km 처음부터 걷지 않고 300km만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내 아쉬웠다. 오래전부터 묵묵히 걸어온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억울하고 부러워지곤 했다. 800km를 모두 걸은 이들도 이쯤 되면 길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부러 천천히 걷는다고도 한다.

마지막 먼 거리를 걸을 걱정에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 음, 내일이 마지막이라고?

내일이 지나면 이제 숙소에 온수 잘 나온다고 폴짝 뛰며 샤워실에 들어가 물 틀어 놓고 반신욕 하듯 주저앉아 멍한 표정으로 행복감 느끼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어제 널어놓은 빨래가 다 말랐다고 흥분하지 않아도 된다. 카메라와 노트북 때문에 무거워진 20kg 배낭 짊어지고 삐걱대며 여섯 시간이고 아홉 시간이고 2~30km걷고는 숙소 들어와 절뚝대는 내게 괜찮은지 묻는 이 길 위에 참 멀리서들 날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매일 같은 대답하며 당신은 괜찮은지 당신도 행복한지 같은 질문하지 않아도 되고, 길에서 만나는 마을 어르신들이 ‘부엔 까미노’라고 말을 걸기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 ‘그라시아스’하며 힘든 표정 숨기고 웃지 않아도 된다.

내일 점심 간식은 뭐로 해 볼까 킁킁대며 슈퍼마켓 뒤지지 않아도 되고, 내 발목 이렇게 매일 고생시키는데 뭐가 좋다고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나 생각 안 해도 되니 참 좋겠다.
그런데 베개에 이 뜨거운 것은 뭐지?

▲ 100km 남았다는 표지석, 낙서 가득한 귀여운 표지판

저기 우리 바로 위에 있는 저 별은 「성 야곱의 길(은하수)」이에요. 저 별은 프랑스에서 곧장 스페인까지 뻗어 있어요. 용감한 사를마뉴 황제가 사라센을 쳤을 때, 갈리스의 성 야곱이 저것을 만들어서 왕에게 길을 알려줬죠.
- 『별』, 알퐁스도데

거리 표지석은 500m 마다 있었는데, 12.5km 남았다는 표지석 이후에는 보이지 않았다. 볼 필요도 없이 다왔다는 말인가. 산티아고가 가까워 올수록 돌이나 방향을 가르쳐주는 표지마다 낙서 빈도가 늘어났는데, 한글도 많이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다 왔어요. 여기서부턴, 뛰세요!’ 라는 글도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이름도 얼굴도 모를 순례자에게 남긴 응원의 메시지도 가득하다. 먼저 지나간 이들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모두가 비슷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리라.

한 터널 안에서 본 “Life is too short"라는 낙서가 먹먹했다. 아마 낙서를 남긴 이도 목적지에 거의 이르렀다는 기쁨보다 행복했던 길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컸나보다. 정말 그랬다. ‘Happiness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길 위에서 나는 정말이지 행복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두 시간 거리에 잡히는 몬테도고조. 크고 쾌적한 알베르게에 머무는 이들은 서너 명, 제철이 아닌 탓에 한적했다. 이 길이 아니면 없을 마지막 샤워를 했다. 뻐근한 근육에 온수가 닿는 느낌은 행복이 따로 없는 촉감이다.

해가 저무는 여섯 시. 잠시 누워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멍하니 있다가 문득, 이제 길이 끝나는 것도 아쉽지만 날 부르는 곳이 있어 이렇게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행이다. 카미노 길을 만나고 그 길을 버틴 허벅지를 만질 수가 있어서.

무심코 간식거리를 사려 슈퍼마켓에 들어갔다가 이제 길 위에서 먹을 시간도 기회도 없다는 것이 아쉬워졌다. 근처 바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 어둑한 길에, 저 멀리, 그간 보지 못했던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아, 이제 다 왔구나. 산티아고가 눈앞의 실체로 다가왔을 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희열보다 걸어온 길에 대한 향수가 더 진하게 밀려왔다.

목적하는 곳에 가도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내겐 이미 이 길을 걷는 모든 걸음들과 걸음이 닿는 공간을 채워 준 내 눈과 귀와 입과 가슴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소중했다. 그것이 지난 기억이든, 막 만들어진 것이든.

열흘 조금 넘는 날들 동안 본능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방향,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태양과 함께 걸어왔다. 이 길은 은하수를 따라 걷는 길이라고도 한다. 아주 까만 밤에는 하늘 위로 은하수가 흘렀을 것이다.

▲ 드디어 보이는 도시의 불빛,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제 마지막, 여느 아침처럼 하품하며 걷노라니 금세 저 멀리 큰 도시가 가까이 다가왔다. 지난 열하루와는 다른, 높은 건물들이 배경이 된 멀지 않은 길을 걸으니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안내판이 보였다. 가슴 벅찬 것은 미리 다 느꼈던 탓인지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렸는데,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 방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피니시 라인을 넘는 과정은 감상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먼저우체국에 들러 무사히 먼저 도착해 있던 캐리어 가방을 찾고,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도장을 받으며 순례 증명서를 품에 안았다. 대성당은 부분 공사 중이어서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그런 것쯤 아무 상관없었다. 크고 멋진 곳.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매일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한 미사가 열린다. 에스파뇰로 진행된 미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순례자를 위한 특별한 것이라니, 기분은 참 좋았다. 미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언제 헤어졌는지,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순례자들. 길에서 스쳐갔던 이들을 만나 포옹을 나누었다. 길은 끝났지만 인연은 끝나지 않은 때문이다.

▲ 순례자들을 위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미사

마드리드로 돌아가던 밤 비행기에서 왠지 모를 노곤함에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다 왠지 모를 허전함에 잠이 오질 않아 길 위에서 듣던 음악을 켜고 펜을 들어 기억을 끼적였다. 온 마음은 아직 산티아고 길에 있던 탓이다. 몸이 더 힘들어도 차라리 그 길 위였으면 했다. 다른 도시 여행이 버거운 느낌, 이미 끝났는데 끝난 것 같지 않은 느낌, 저린 발목과 무릎이어도 그 길 위로 가면 마음이 더 편해질 것 같은 느낌들 때문에.

잊지 못할 것이다. 몸은 투덜대고 절뚝거리지만 머릿속엔 선명하게 그날의 목적지가 새겨져 있고, 더 없이 푸른 하늘 아래 나와 같은 속도로 흐르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내 힘과 내 의지로 내 짐을 지고 태양이 가는 길과 함께한 위대한 한 점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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