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윤리·봉사·사람이 최우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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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윤리·봉사·사람이 최우선 가치”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4.04.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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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④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철수 29대 협회장 후보…“회무성과란 회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29대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3명의 후보자들이 치열한 정책·공약 대결을 벌이고 있다.

향후 3년간 치과계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떠한 정책·공약을 제시하고, 검증된 회무능력을 보여주느냐는 당선 여부에 무척 중요한 척도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또 하나, 독자들이 궁금해 하고, 실제 중요한 척도는 후보자의 자질과 회무철학, 리더쉽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성품이나 철학 등을 엿보자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느냐를 살펴보는 게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이에 본지는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4~6번째 기획으로 치협 29대 협회장 후보자들을 만나봤다. 후보가 아닌 인간 김철수, 인간 최남섭, 인간 이상훈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였다.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은 대담 형식이라는 기획 특성상 일정정도의 각색이 들어가지만, 선거운동기간이란 민감한 시점을 감안, 세 후보 모두 정형화된 틀에 맞춰 대담이 이뤄졌다는 점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또한 연재는 인터뷰어와 만난 순서와는 상관 없이 기호 순으로 3~4일 간격을 두고 노출됨을 알려드린다. 편집자


 
3월 23일 일요일 오후 6시 이태원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애초는 2월 중으로 인터뷰를 하고 3월 후보등록 시점을 전후해 기획을 내보내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바쁜 3인에게 평일 저녁이나 주말 3~4시간을 빼내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룰수록 더 더욱 약속 잡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선거유인물에 들어갈 사진·화보 촬영을 마친 후 스튜디오가 있는 이태원 부근에서 간신히 그에게 인터뷰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진료봉사활동이 인생의 큰 전환점

전민용(이하 전) : 참 인터뷰 한번 하기 힘드네요. 요즘 많이 힘드시죠?

김철수(이하 김) :  지금까지 선거를 두 번 해봤는데 그리 힘들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어요. 그런에 이번에는 부회장이 아니라 협회장 후보로 나와서 인지, 이리저리 신경 쓸 것도 많고 힘드네요.

 
전 : 자! 살아온 얘기부터 해보죠. 소년 김철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김 : 음...서울 용산에서 3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어요. 우리 집안 유전자가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형제들이 모두 공부를 잘 했어요. 저는 특별히 똑똑했다기 보다는 그냥 착실한 학생이었달까?

제 성격이 긍정적이어서 그런지,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또 나서는 걸 좋아해서인지 학창 시절 반장과 회장 등을 도맡아 했구요. 어릴 때부터 주변을 이끌어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같아요.

고등학교는 최남섭 선배도 나온 용산고를 다녔는데, 별다른 서클 활동 같은 것은 안했어요. 하여튼 학교생활은 모범적으로 했어요.

전 : 치과대학을 가게 된 계기는요?

김 : 솔직히 전 특별히 어느 분야를 선택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순전히 아버님의 강력한 권유 때문에 치과대학을 가게 됐죠. 당시 이리저리 알아보셨는지, 치과의사가 향후 전망이 있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전 :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김 : 고등학교까지 모범적이고 착실하게 해서인지 대학에 들어와서는 기존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보다 자유분방하게 새로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예과 때는 공부보단 다양한 경험과 교유관계를 맺는데 주력했죠. 친구들과의 다양한 관계는 물론이고 새로운 사회와의 접촉에 재미를 느꼈고, 그만큼 학교 공부에 소홀해 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본과 진입해서는 ‘송정의료봉사회’에 합류해 진료봉사를 시작했는데, 제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나눔과 봉사의 참 뜻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거죠. 이후로 주말마다 소외된 지역의 빈곤층을 위해 매주 진료봉사활동을 했고, 제 본과시절 희로애락의 대부분을 봉사회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사실 집사람과의 인연도 그곳에서 시작됐구요.

송정의료봉사회는 졸업 이후에도 하계 및 동계 정기진료 때마다 선배로서 꼭 참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때의 진료봉사 경험이 저에게는 치과의사로서의 자부심 그 자체입니다.

 
전 : 집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김 : 송종의료봉사회를 함께 하던 여자 후배가 자기의 여고 동창생을 소개해 줘서 만나게 됐는데, 최종 와이프를 만나게 되기까지 말하자면 좀 복잡해요.

당시 와이프는 같은 대학 미술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도 도예를 하고 있죠. 제가 예술에 크게 취미가 있고 그런 건 아닌데, 집사람이 1년에 전시회도 2~3번 하고 하다보니 나름 그 분야 지인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전 : 자녀분이 특이한 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같은데요?

김 : 딸이 하나 있는데, 서울 공대를 들어갔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공대 산업공학과 나오면 갈 곳이 매우 많잖아요, 그런데 졸업하고 어느날 갑자기 의사가 되고 싶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대 의전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또 어느날 법의학을 하겠다는 거에요? 부모된 입장에서는 3D업종을 하는 것이 마음에 편치 않죠. 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뜻을 굽히지 않으니 뭐... 지금은 서울대병원 해부병리 레지던트를 하고 있어요.

한번은 말리는 심정으로 ‘죽은 사람 보면 무섭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산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더라구요.(웃음)


면접 1호 스텝과 30년간 동고동락

전 : 개원 얘기를 해보죠. 언제 개원하셨죠?

김 : 군대 갔다 와서 전공을 마치고 86년에 개업해서 28년동안 김철수치과를 운영하고 있어요. 한 자리는 아니었고, 부근에 있다가 현재 건물에 한번 이전했죠. 말 그대로 동네치과에요.

솔직히 예전에는 환자도 많았고, 돈도 잘 벌었죠. 요즘에는 저도 경기 악화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어요. 요즘 치과보험이 불루오션으로 뜨고 있는데, 저도 ‘보험에 좀 더 신경 쓰고 공부 좀 할걸’ 하고 후회할 정도니깐.

 
(동석한 기자) : 치과 데스크에 계신 치과위생사 분은 꽤 오래 계시지 않았나요?

김 : 제가 개업할 때 스텝을 구해야 했는데, 면접을 본 제1호 치과위생사가 그 분이에요. 생각해 보니 그 분과 무려 28년동안 같이 동고동락했네요. 와이프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하긴 제가 시집가고, 자식 낳고, 대학 보내는 것까지 다 봤으니…(웃음)

전 :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하기도 쉽지 않은데 대단하시네요.

김 : 스텝은 월급을 줘야 할 대상자를 떠나 치과를 함께 만드는 주체잖아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함께 나아가는 편입니다.

특히, 그 분은 익산 여성 분인데, 참 순박해요. 어느날은 진료 후에 진료비를 수입 정산을 하는데 진료비를 안받았더라구요. 왜 안받았냐고 물으니깐 그냥 안주고 갔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달라고 했어야지 하니깐 그냥 가시던데요라고 얼버무려요.

그런 적이 여러번 있었어요. 그만큼 순박해요. 그래도 덕분에 단골환자가 많은 것같아요.(웃음)

전 : 한 곳에서 무려 28년을 했으니, 이런저런 기억에 남는 환자도 많으셨을 것같네요?

김 : 당연히 많죠. 형편이 어려워 진료비를 못내고 가신 환자에서부터 진료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의뢰를 해 온 분 등등. 그래도 크게 진상환자는 없었던 것같아요.

아. 진상환자라고는 할 수 없고, 한 단골환자가 있었는데, 치아가 불편하다고 막무가내로 빼 달라는 거에요. 치료만 잘 하면 얼마든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치아인데… 그래서 발치를 안해줬죠.

그런데 막무가내로 계속 빼 달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거에요. 밤 9시가 됐는데도 버티고 있어서 스텝들도 퇴근을 못하고 발만 둥둥 구르고…. 끝내 발치를 하지 않았어요. 끝까지 설득했죠. 전 그때 제 양심과 주관을 끝까지 지킨 것을 지금도 잘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환자는 지금도 단골환자입니다.(웃음)


 
불법 ‘의료광고’ 척결 모범 이끌어

전 : 자 이젠 공적인 얘기를 시작해 보죠. 회무는 언제부터 시작해서 어떠한 일들을 하셨나요?

김 : 1990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 선배인 당시 이성복 강남구치과의사회(이하 강남구회) 회장님의 권유 내지 반 강압에 의해 처음으로 이사직을 맡으며 회무에 입문하게 됐어요.

이후 여러 이사직을 거친 후 2001~2년 구회장을 맡게 됐고, 2005년 서울시치과의사회(이하 서치) 회장에 출마하려다 접고, 치협 법제이사를 3년간 역임했습니다.

전 : 회무를 하면서 성과랄까? 기억에 남았던 사업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 : 지금은 불법네트워크치과로 난리인데, 제가 강남구회장을 맡았을 당시에는 불법의료광고 문제로 개원가가 심한 갈등과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어요.

특히, 강남구가 제일 심했죠. 그래서 제가 회장을 맡으며 철저하게 강화된 의료광고 규제 및 기준을 만들었어요. 그게 모델이 돼서 다른 지부들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강남구가 전국적인 불법 의료광고 규제의 모범이 되기도 했어요.

그 때는 지금과 달리 의료광고 자체가 금지됐을 시기라, 요즘 불법네트워크처럼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불법 광고들이 횡행했는데, 그거 적발하느라 정말 힘들었죠.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면, 교묘한 불법광고들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심지어 같은 구의 회원을 검찰에 고발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활동과 경험이 있었기에 후일 치협 법제이사와 의료광고심의위원장의 책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치과계 발전 위해서라면 ‘과감히 양보’

전 : 서치 회장에 출마할 뜻을 세웠다고 했는데, 저도 당시 언론에서 본 기억이 나요. 당시 접었는데, 왜 그랬는지 궁금하네요. 우선 서치 회장 출마를 결심하기까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김 : 강남구회장을 마치고, 또 불법 의료광고 척결 싸움을 하면서 치과의사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시각에서 이 사회를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회를 이뤄가고 유지·발전시키는 시스템을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다른 공간에서 배우고 경험해 보고 싶었달까?

그래서 다소 생소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과 서울대 e-business 최고경영자과정,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최고과정을 수료했어요.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사회 전반적인 운영체제 등 치과계 이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한 간접 경험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다른 직역의 사회적 리더들과 교류를 갖고, 지금까지 인적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강남구회장을 비롯해 회무경험과 사회적 참여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겁니다.

전 : 근데 왜 접으셨나요?

김 : 음... 한마디로 다양하고 오랜 서치 회무경험에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인품을 지닌, 게다가 저보다 연배도 높은 김성옥 당시 부회장님 같은 분이라면 학연 지연을 떠나서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선거공학적인 유불리를 떠나 치과계를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양보했어요. 통크게요(웃음). 근데 당시 양보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어요. 제 개인적 결단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전 : 개인이 마음 먹으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였나요?

김 : 당시까지만 해도 서치회장은 서울대 출신들이 의례적으로 순번을 정해서 해왔어요. 어찌 보면 제가 그 관례를 깨버린 거죠. 선배들이 ‘야 이번에는 너가 해봐라’ 하고 밀어줬는데, 사퇴를 해버리니 얼마나 화가 나셨겠어요. 선배들이.

하지만 전 생각이 달랐어요. 당시 강남구만 해도 회원간 화합 차원에서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3개 치대 출신들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았었거든요.

전 치과계 화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서울대 뿐만 아니라 이제는 타대학 출신들이 서치는 물론 나아가 협회장까지도 역할을 맡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출마 자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 것이고, 결국 사퇴한 겁니다.


위기 해법은 실종된 ‘윤리의식 회복’

전 : 그래서 운명인지는 몰라도 협회 법제이사의 길을 가게 되셨죠?

김 : 그렇죠. 협회 법제이사 당시에는 정부와 상대로 의료법 개정에 대한 실무대책을 협의하게 되면서 의료법 개악 반대에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불법 의료광고에 대한 규제를 위해 의료광고 심의위원회를 처음으로 구성해 의료광고 심사를 강화하는데 앞장섰고, 이로 인해 불법의료광고에 대한 협회의 규제에 관한 틀을 마련했다고 자부합니다.

전 : 법제이사 하면서 성과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김 : 제 회무경력에서 가장 큰 치적이라 생각하는데요. 치과계에서는 최초로 ‘윤리선언 및 지침’을 제가 직접 만들었다는 거에요. 물론 강신익 교수님과 TF에 참여해주신 여러 분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2007년 대의원총회 때 윤리선언 및 지침 제정안이 상정됐는데, 대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당시 박종수 의장님께서 법제이사인 저에게 대의원 전체로 하여금 기립박수를 쳐주도록 격려해주신 때를 잊지 못할 겁니다.

덧붙이자면, 치과계 위기 탈출 해법은 윤리선언 및 지침의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치과계가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온 내부적 요인은 만연해 있는 윤리의식의 실종 때문이에요. 윤리선언은 강화돼야 합니다.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일선 진료현장의 표준진료지침으로까지 발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 법제이사까지는 탄탄대로였던 것같네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2번이나 부회장에 도전했다 실패했잖아요.

김 : 물론 낙마했죠. 하지만 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과정조차 저에겐 큰 경험이었던 거죠.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전국 각 지역 수많은 개원의들을 만나면서, 그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개원가의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개원환경의 문제점들을 직접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회무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을 갖게 된 좋은 계기였달까? 회무란 회원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정책개발과 함께 민생의 어려움을 바로 회무에 반영함으로써 어떠한 직역이나 지역적 소외 없이 정책을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정부 및 관계기관과의 정책적인 협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원환경으로부터 생기는 일선 개원의들의 어려움을 회무에 녹여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깨달았죠.


 
회무란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것

전 : 이제 협회장 29대 선거 국면으로 넘어가죠. 우선 자신의 회무철학과 소신부터 밝혀주세요.

김 : 사람들은 제각기 가진 장점을 아끼고 서우 배우면서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것이고, 또 그러한 과정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군자의 바탕이 된다는 것과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맹자의 능구정신이 저의 기본철학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는 협회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민생을 개선시킴으로써 우선은 개원의들의 경제적인 여건 개선에 힘쓰고, 동시에 치과의사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제고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여러 측면에서 치과의사의 정신적인 힐링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 : 젊은 치의, 여성 치의와의 소통 강화가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인데, 어려운 현 치과계에서 후배들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김 : 정말 안타깝죠. 저만 해도 30년 전에 개원할 때 선배들께 인사를 다니면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안타까워 했는데, 심지어 지금이야….

치과계는 지금대로만 가면 정말 암울해요. 지금 치대나 치전원 들어온 학생들은 초일류 우수한 인재들인데도 장밋빛 전망을 찾기 힘드니...

그렇다고 선배들이 해줄 게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은퇴를 앞둔 선배들부터, 함께 믿고 치과를 경영할 동료가 필요한 선배들까지...문제는 이를 연결해주고, 후배들에게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줘야 할 협회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해 왔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리를 잡고 숨통이 트여 회비 꼬박꼬박 내는 선배들은 선량한 회원이 되고, 자리를 못잡아 회비도 못내는 후배들은 일부 몰지각한 무적회원이 돼 버렸어요.

회비를 안내는 후배들의 문제를 논하기 앞서, 그들이 회비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방치한 협회의 문제를 먼저 논해야 합니다.


불법 척결! 현실적인 전술 구사해야

전  자, 이제 주요 정책에 대한 얘기를 해봅시다. 전문의제에서부터 선거제도, 불법기업형 사무장 치과 척결, 인력수급 등등 수많은 현안이 있는데, 짤막짤막하게 입장을 밝혀주세요.

김 :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공약에 나와 있으니 일일이 구체적으로 말 할 필요는 없겠고, 핵심적인 생각만 말씀드릴게요.

우선 전문의제 문제의 핵심은 ‘전문의다운 전문의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본래의 도입 취지와 원칙에 부합한 제도가 되도록 해야죠. 또 대의원총회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며 합의된 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죠. 궁극적으로 합리적 치과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전문의제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선거제도는 직선제가 대세 아닌가요? 그 누구도 대신해서 치과계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회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협회장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직선제를 도입해야 ‘참여와 소통’이란 명제가 구호가 아닌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당선되면 곧장 ‘직선제 추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낮은 투표율이나 소수집단의 단체행동, 비용 등 직선제의 단점으로 화자되는 문제들의 극복방안까지 마련해 대의원들을 설득해 낼 겁니다.

불법네트워크 척결 문제는 김세영 집행부의 성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유디와의 투쟁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졌고, ‘반값 임플란트’라는 정말 부끄러운 신조어까지 만들면서 치과계 치부까지 가감 없이 노출했어요. 그렇다고 척결이 됐습니까? 유디는 오히려 늘어났고, 유디 이상의 아류치과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요.

‘불법 네트워크 척결’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목표입니다. 문제는 척결을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이냐죠. 무조건 싸움만 하면 척결됩니까? 베릴룸 등 한건주의 식으로 터뜨리면 척결됩니까? 우리가 처한 처지와 지형에 맞게 현실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 다른 정책공약들도 설명할 게 참 많은데…. 전 선거인단들이 꼭 한번이라도 정책집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전 : 마지막으로 최남섭과 이상훈 후보를 평가해 준다면요?

김 : 먼저 최남섭 후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셨고, 회무경험도 있으신 분입니다. 다만 저도 그렇지만, 함께 모교 단일화 경선에 나올 수밖에 없었고, 제가 단일화 후보로 결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동문들의 뜻과 다르게 (협회장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단일화 경선에 불복해 선거에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상훈 후보도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도 치과계 현안에 대해서 그만큼 심도 있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없어요. 또 여태까지 애정을 가지고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 존중합니다.

전 : 바쁘신데 이렇듯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정책 현안도 그렇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조금은 아쉽네요. 아무쪼록 29대 협회장 선거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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