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힘들고, 가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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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힘들고, 가끔 즐겁다”
  • 정준오
  • 승인 2014.06.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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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part 1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 여행기 네 번째 이야기

 

지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이야기에 이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여행에세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 중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글이며, 여행에 대한 문의사항 등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astonut@naver.com 으로 연락바랍니다.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에 가는 날! 8848m 에베레스트 정복은 오래된 버킷리스트였는데, 정상까지 가려면 입산 허가에 필요한 비용만 어마어마하다고 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Everest Base Camp)까지라도 가기로 한 거다. 내 발로 가쁜 숨을 내쉬며 EBC에 올라 에베레스트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더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인천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긴 비행시간 동안,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를 익혔다. 네팔 시간은 서울보다 3시간 15분 빠르다. 한국시간과 3시간 30분 차이 나는 인도와 네팔은 거의 같은 경도를 가지지만, 네팔이 독립국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불안함에 들고 온 네 권의 가이드 북들을 2번씩 읽다 보니 네팔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도 정말 다양했지만 그 외에도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였다.

 

소박한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이르러 공항 비자를 받으러 가는 길에 함께 걷던 수 차례 네팔에 와보았다는 한국 분께 여쭈어보았다. 타멜 거리로 걸어서 갈 수도 있냐고. 긴말 없이 택시를 타라고 하신다. 그리고 숙소는 싼데 잡지 말고 괜찮은데 잡아서 지내라고. 예전에 어떤 한국 사람은 그곳에서 주는 음식을 먹었다가 정신차려보니 팬티만 남아있었다고 그래서 대사관에 연락해야 했다고….“네 알겠습니다.” 바짝 긴장했다.

네팔 어디에도 내가 간다고 말해두지 않았다. 일단 여행자로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타멜 거리에 가면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 여행자들이 잔뜩 모이는 인도 델리의 빠하르간즈,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비슷한 곳이다. 그런데 타멜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항에서 잡아 탄 택시 안에서 운전기사와 함께 동승한 한 현지 여행사 직원과 이야기하다가 트레킹 일정이 만들어졌다. 그가 네팔 사람들은 순수하니 걱정 말라며 뒤돌아 뒷좌석에 탄 나를 보곤 하던 말.

“내 눈을 바라봐(Look at my eyes).”
 

물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나는 그만 반짝이던 순수한 그 눈빛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처음 만나 믿지 못하는 외국인 여행자를 대하는 것이 일상일 터. 안심시키는 화술도 수준급일지 모른다. 그렇게 그가 일하는 타멜에 있는 여행사에서 루클라 항공권 예약, TIMS(Trekking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트레킹 사전에 등록하고,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포터 계약 등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여행사에 있던 지난 트레커들이 남긴 방명록을 보니 믿을 만한 사람들인 것 같아 안심했다. 이곳은 그렇지 않았지만, 방명록마저 조작한 사례도 종종 들린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 내 선택을 믿기로 했다.

 

11월의 네팔의 가을 거리를 거닐며, 반나절 만에 네팔 사람들이 순박한 미소를 가졌다는 것과 복잡한 거리, 매캐한 냄새가 타멜 거리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긴 비행 후에 종일 매연과 차와 자전거를 신경 쓰면서 걷다 지쳐서, 보이는 대로 선택한 게스트하우스 싱글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네팔 방송을 틀어놓고 쉬었다. 혼잡한 거리와 탁한 공기로부터 어서 벗어나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가고 싶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지만 외로울 틈도 없었기 때문에 바라는 것도 없었고, 유일한 소망은 어서 아침을 맞는 것이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로 가기 위한 관문, 루클라로 가기 위한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바지런히 돌아온 트리부반 공항 국내선. 나쁜 날씨 때문에 이미 일주일째 결항된 상태다. 여전히 하늘은 많이 흐렸고, 날씨가 맑아질 것이라는 희망만 품고 온 것이다. 루클라 공항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루클라에 일주일째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전 세계 트레커들의 로망인 이곳은 최빈국 네팔. 프린트된 승객 명단에 사인펜으로 체크한다. 8시 30분 편에 내 이름이 올라와 있다. 덜 마른 빨래를 의자에 널어놓았다.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이니 속옷이라도 부끄럽지 않았다. 나쁜 날씨로 인한 불안함 속에 위안이 되는 것은 기다리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루클라로 가는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가득 들어찼고, 여기저기서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도 보였는데 나는 혼자인 탓에 짐을 두고 잠들지도 못한다.

 
 
 

기다림이 슬슬 길어지고, 공항 내 한기 때문에 산 정상에서나 입으려 했던 다운재킷을 꺼내 입었다. 작은 매점에서 파는 30네팔루피(약 400원) 밀크티 한 잔은 마음까지 따뜻하게 한다. 이미 오래 기다린 트레커들과 얼굴은 이미 익었고, 공항 안에 사는 새들도 심심한지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좁은 공항 대합실은 몸을 한 바퀴 돌리면 구경이 끝난다. 작은 전광판에 ‘지연’이 아닌, 루클라로 간다든지, 아예 취소된다든지 하는 표시가 보일 때까지 가만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오전 내내 어느 항공편도 루클라에 이르지 못했다.
 

거의 일주일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도 아니고, 칼라파타르(Kala Patthar, 5545m,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등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인근의 산)도 아니고, 트레킹 출발지점, ‘루클라’라는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곳을 가기 위해 이 작은 공항에서 발길을 돌렸을까. 루클라까지 걸어가면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마냥 기다리기로 선택한 결단은 어려운 것이었지만, 기다림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니 기다림을 선택한 후의 기다림이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기 시간 일곱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는, 짐을 싸서 돌아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다음 날 비행기로 예약을 바꾸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설사 날씨가 맑아져 비행기가 뜨더라도 오후 늦게 루클라에 도착하게 되면 쉬는 일밖에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구경거리가 많은 카트만두에서 하루 묵고 아침에 다시 나오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다시 돌아온 타멜 거리에서 ‘몽키 템플’이라는 애칭을 가진 스와얌부나트에 들렀다. 하늘의 뜻으로 무장해제 된 열망이 깊은 탓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원숭이들을 보았는데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꼭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오른다고 내가 훨씬 나은 사람이 된다거나 돌아와서 많은 것이 변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열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지는 열망을 향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사무치게 좋았다.

깨끗이 비우게 된다는 곳에 오르기도 전에, 오히려 욕심이 늘어갔다. 에베레스트는 이미 간절한 그리움이 되었다. ‘지금 아니면 갈 수 없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으로 더욱 간절했고 그곳에 가면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굳이 다른 곳이 아닌 에베레스트에 가려 한 이유는 가슴에 품은 꿈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해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게 뻔하고. 하지만 많은 바람, 많은 욕심 때문에 세상에 지치기도 한다.

트리부반 공항에 대기하면서 ‘꿈을 멈추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변명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할까?’를 묻다가, 다음 날 아침 여전히 흐린 날씨를 보고는 하루 만에 포기를 전제로, ‘열망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어떤 것들이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구체화된 변명이 포기를 더 쉽게 만들어 주었다.

루클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무디어지자마자 현실적으로 변한 나는, ‘Cancel’이 아닌 ‘Delay’로 가득 찬 루클라행 항공편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 대신, 여행사에 가서 EBC 행을 취소한 후 푼힐-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생추어리 루트에 가기로 협의했다. 루클라로 가는 방법은 항공편 밖에 없고 안나푸르나 루트는 버스편과 항공편을 선택할 수 있는데, 당연히 버스를 선택했고 비용은 줄어들었다.

열망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생각보다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안나푸르나행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공항에서 돌아왔던 날 저녁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타멜의 카메라 수리점에 맡겨놓은 상태였고, 하루 이상 지연되면 트레킹 일정이 타이트해지며, 돌아올 때도 이렇게 지연되면 네팔 여행 후 인도에서 하게 될 워크캠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이었다. 여행 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는데, 여행을 조금 더 알차게 만들기 위해 추가적으로 하게 된 일, 예를 들면 워크캠프 일정이 그것을 결국 가로막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루클라로 가지 못한 날 카트만두로 돌아와 싱글룸이 아닌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에 묵은 것을 잘 했다고 생각한 것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세 침대 중 하나를 쓰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독일 소녀는 서양 십대들이 흔히 그렇듯 전혀 어려보이지 않았다. 티베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네팔 여행 중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의 대화는 멋진 인사‘나마스떼(namaste: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인사합니다)’로 시작되곤 했다.

 

일본 오사카 출신 유스케는 뮤지션이다. 장기 여행자인 그는 베이스기타를 주로 다루는데, 카트만두에서는 인디안 드럼 레슨도 받고 있었다. 그는 2년 전에도 네팔에 와서 안나푸르나도 올라보았고, 그 때 만난 네팔친구와 술 한 잔하고 들어온 참이라고 했다. 우리는 네팔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세대가 사랑한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보다 더 큰 공감대로 가까워졌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을 공감하게 하고, 하나로 묶는다. 그런 우리의 대화 속에서 네팔은 진정 ‘Never End Peace And Love’이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괴테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는데도, 결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안나푸르나라는 대안이 괜찮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사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루클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면 돈은 조금 더 들고 위험부담은 컸겠지만, 스스로 정한 목표에 대한 성취감은 더 컸을 것이다.

후에 루클라행을 취소한 바로 그 다음날 오후에 운항이 잠시 재개되어 비행기가 간절한 트레커들을 실어 날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씨가 일주일째 심술을 부리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는 것이다. 아쉬움이 나를 흔들었다. 아쉽지, 많이 아쉽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기 위해 간 포카라의 서점에서도 목전에서 이루지 못한 꿈, ‘칼라파타르에서 본 에베레스트’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돌아왔었다. 포기를 합리화하는 동안 간절함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정말 바라던 것은 ‘그곳에 올랐다!’는 자부심이나 허세가 전부는 아니었을까.”라고.

 우리는 때로 가지지 못한 것들에 열광하고 별다른 까닭 없이 열망하다가는 너무 쉽게 절망한다. 그래도 칼라파타르에 오르지 못한 절망이 그리 깊지 않았던 것은, 산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하늘이 도와주어야 가능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산은 그건 하늘의 뜻이니 네 탓이 아니라고, 괜찮으니 다시 도전하라고, 지금 그렇게 내려가도 괜찮다며 아쉬움마저 포근히 안아준다.
 
사실은 나는 그것을 정말 간절히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간절한 척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았다고 자위하고 만 것인지도, 너무 쉽게 현실에 굴복해 버리고 말았던, 혹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많은 지난 기억 같은, 원래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됐건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없을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기 때문이다.

다만 멋진 꿈은 삶을 더 아름답게 해준다는 것을 변함없이 믿는다. 더욱 간절한 열망과 꿈이 생긴 것만은 감사하다.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꿈을 자주 꾸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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