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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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알피
  • 강재선
  • 승인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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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도에 제작된 영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알피’는 바람둥이의 연애담 영화다. 영화 내내 주연 배우 주드 로가 끊임없이 카메라를 보며 재잘거리고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조각 같은 얼굴, 단단한 몸매가 다양한 각도로 클로즈업되니 그의 팬클럽 회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되겠다.

부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화려한 싱글의 삶을 만끽하며 독신모, 주부, 친구의 애인, 능력 있는 연상의 독신녀 등 수많은 여인들을 자유로이 거치는 알피에게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은근슬쩍 충고하지만, 약간 번민하는 듯했던 알피는 다시 쿨한 태도로 영화를 마감한다.

-가끔은 성악설과 성선설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대개는 성선설 쪽으로 기울곤 하는데, 맘먹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자 일부러 노력하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싶어서다. 그런데 상처받은 영혼들의 슬픔은 차치하더라도 정작 상처를 준 이들이 자신이 어떤 상처를 준 지도 모르는 채 천진난만하게 살아가기도 한다는 게 문제다.

그들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어느 순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전도되는 상황을 쉽게도 연출해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어서 제3자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인 걸. 웬 사랑타령이냐고 묻는다면, 주위를 둘러보시라. 그것이 허상이든 실재하는 어떤 것이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신음하는 수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고전적인 방법 이외에 다양하고 색다른 무기와 기술을 연마한 현대의 남녀 알피들은 언뜻 보기에는 구분이 가지 않는 보호색을 갖추고 있다. 자신이 알피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부단한 노력에 의한 진화 덕이기도 할 것이다.

궁금한 건, 어째서 알피들의 먹이들은 진화하지 않는지, 어째서 그들은 항상 괴로워하면서도 알피들을 옹호하며, 어딘가로 은신하여 자신의 선택의 대가를 혼자만 치르는지, 흐르는 눈물은 왜 그다지도 많은지.

66년도의 알피는 누가 봐도 정말 나쁜 놈이었겠지만, 요즘 세상이 워낙 요지경인데다 책임과 고통을 함께 하는 관계를 강요하기가 쉽지 않으니 알피들에게 뭐라 손가락질할 수는 없겠다. 젊어서 알피처럼 즐기며 사는 것을 너그럽게 용인하는 자유롭고 감각적인 사회 아니던가. 그러니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알피를 사랑했던 중생들이 고통의 나락에서 당차게 떨쳐 일어나는 일이다.

강재선(인천 남동구 유명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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