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국민행복
상태바
월드컵과 국민행복
  • 김철신
  • 승인 2014.07.15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 김철신 논설 위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끝났다.

사상 최강의 멤버라던 우리나라는 사상 최악의 경기력으로 온 국민을 멘붕시키며 광속 퇴장했고 개최국 브라질마저 내 평생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충격의 1-7 패배로 폭동소식까지 들리는 지경이다.

반면 어떤 팀들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큰 호평을 받았는데 3패에도 불구하고 멋진 경기를 선보인 호주, 그리고 죽음의 D조 최고의 불사신 코스타리카이다.

코스타리카는 잉글랜드, 이탈리아, 우루과이와 예선 같은 조여서 그야말로 죽음의 조의 최약체로 평가됐었지만 우루과이, 이탈리아를 잇달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더니, 그리스까지 꺾어 버리며 8강에 올랐다. 이름조차 생소하던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가 탄탄한 수비와 멋진 공격력을 선보이며 스타들이 즐비한 축구강국들을 멋지게 격파해 버리자 찬사가 쏟아졌다. 선제골을 넣으면 시간을 끌며 잔디를 침대 삼아 드러누워 버리는 침대축구가 아니라 수비를 탄탄하게 하며 끊임없이 역습을 노리는 정석을 보여준 코스타리카의 축구는 아름다웠다.

중남미의 이 작은 나라가 강팀들을 쓰러뜨리는 것에 매료된 한국 축구팬들은 인터넷에 코스타리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일간지는 ‘코스타리카의 진실과 오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대부분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 그저 그런 중남미 국가라고 생각했었지만 이 코스타리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축구보다 매력적인 것이 훨씬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행복지수로 2012년에 세계 1위였고, 이 나라의 평화헌법은 군대폐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중남미 평화협상을 주도한 공로로 노벨상을 타기도 했다. 또한 전 국토의 25%가 국립공원으로 생태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보존을 위해서도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나라였다.

사실 건강불평등 연구(그중,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데 결정적인가 하는 연구)분야에서 코스타리카는 원래 유명한 나라이다.

대체로 국민총소득과 기대수명은 명확한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그 국민들이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에 이르면 그 상관관계는 약해진다. 소득증가와 더불어 가파르게 늘어나던 기대수명이 그때부터는 다른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대략 그 시점이 코스타리카 정도 수준이다. 즉, 코스타리카 정도의 국민소득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소득의 양적 증가가 국민들의 건강향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소득이 1만 불에 못 미치는 코스타리카는 5배가 넘는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미국과 비교해서 여러 가지 건강지표가 높거나 비슷하다. 코스타리카를 부패와 독재가 판치는 나라쯤으로 묘사하는 미국의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건강과 생태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 미국의 영화노동자들보다 코스타리카 국민들의 행복수준이 훨씬 앞서 있다.

물론 최근 확대되는 빈부격차와 악화되는 경제 사정 때문에 코스타리카가 지향하는 평화복지생태국가가 지속가능한지 논쟁이 있지만 지금까지 이 나라가 걸어온 길을 보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한다. 국민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민소득이 코스타리카의 세 배가 넘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매년 세계 최하위권을 헤맨다. 그런데도 더 많이 성장해야 더 많이 행복해질테니 더 열심히 뛰라고 한다. 심지어 보건의료를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병원들에게 영리자회사를 차려서 환자로부터 어서 더 벌어들이라고 한다. 이건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다.

양적성장이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정말 국민행복시대를 열고 싶다면 중요한 것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하는 전략이다.

일정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라면 어떻게 훈련하고 조직화하느냐에 따라 4강의 기적도, 4골의 치욕도 가능한 것이 월드컵이다. 스타 한 명 없이도 찬사 받는 경기를 선보인 코스타리카를 보면서 좋은 자원을 갖추고도 미숙한 전략으로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축구는 이번만으로 끝나길, 아니 그런 구식 전략은 축구만으로 그치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축구팬으로서의 사족 : 도로 정홍원과 도로 홍명보 중 그래도 교체된 건 축구뿐이니 적어도 대한민국 축구는 비겁하진 않았다.)

김철신(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