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와 기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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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기창덕
  • 강신익
  • 승인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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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는 자신이 성공시킨 혁명의 달콤한 과실을 뒤로한 채 질병과 죽음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볼리비아의 원시림으로 떠났으며 거기서 짧은 인생을 마쳤다.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지만, 전하는 바에 따르면 혁명에 참여하기 전의 게바라는 평범한 치과의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로 하여금 진료실을 박차고 나오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좁은 진료실의 치과의사가 정글을 주름잡는 혁명의 영웅이 되었던 것은 필연이었는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그를 움직인 것은 남미의 암담한 정치현실이었나 아니면 게바라 개인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었나? 치과의사 게바라와 혁명가 게바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나?

고 소암 기창덕 박사는 평생 환자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치과의사였다. 한때 대학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그는 대부분의 인생을 개업 치과의사로 보냈다.

대한의사학회장 등 굵직한 공직을 지냈으며 한국 의사학계의 큰 별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많은 연구 성과를 쏟아내면서도 그의 직함은 언제나 기 치과의원장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연구와 관심의 방향은 치과에 국한되지 않았다. 다른 의사들과 함께 한국 최초로 면역학회를 만든 창립멤버이기도 했으며 그의 의사학 연구는 시대와 전문분야를 초월해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그 분은 그렇게 70평생을 마땅한 직함도 없이 학문을 위해 살아오셨다. 6.25 전쟁 때 피난을 가면서도 중요 사료를 짐 속에 넣어 지고 다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개업 치과의사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개업에서 벌어들인 돈은 거의 대부분 자료를 구입하고 연구결과를 출판하는데 썼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매주 하루는 온전히 나병환자를 위해 바쳤으며 그 밖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선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 게바라가 보여준 행동은 치과의사의 외면적 가치를 극대화한 것이었고, 기 박사가 보여준 활동은 치과의사의 내면적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바라의 혁명이 다소 극단적이고 이념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신체의 한 부분을 고치는 작은 의사(少醫)나 고통받는 인간을 고치는 보통의 의사(中醫)를 뛰어넘어, 사회의 구조를 고치는 큰 의사(大醫)이기를 갈망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기 박사의 꾸준한 공부와 봉사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알려진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꾸준한 공부와 봉사의 일생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사(心醫)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 치과의사들은 어떤 가치와 삶의 지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신체의 한 부분에만 눈이 팔려 그 몸의 주인인 인간과 이러한 인간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보지 못하는 작은 의사(少醫)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할망정 인간의 고통을 볼모로 재물을 탐하는 소인배(詐醫)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신익(인제대 의사학 및 의료윤리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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