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가기
상태바
2014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가기
  • 김철신
  • 승인 2014.08.18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날이다. 이날을 전후로 하여 ‘원수폭금지 세계대회’가 히로시마에서 개최된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에는 미군의 보도통제 등으로 원폭의 참상이나 문제점이 적극적으로 알려지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54년 3월 그 유명한 비키니 섬에서 미국이 수소폭탄실험을 감행하자 일본에서는 적극적인 반핵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국인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이들에 대한 철저한 책임규명과 처벌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이 다시 정권을 차지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들 집권세력과는 별개로 일본국민들의 반핵정서는 대단했던지 3천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핵무기 금지서명을 통하여 이를 규탄하였다 한다.

일본의 평화세력들은 이를 동력으로 하여 1955년 8월 원수폭금지 세계대회를 개최하게 되고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이하 원수협)를 결성하게 된다. 이후 원수협은 핵무기의 폐기, 피폭자에 대한 구호, 국제적 반핵운동과의 연대를 목표로 하는 세계대회를 매년 개최하게 된다.

이 원수협에는 일본내 반핵평화운동세력, 진보단체, 양심적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한국의 보건의료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민주의료기관연합(이하 민의련)은 원수협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의련은 매년 한국의 보건의료단체를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초청하고 있다. 올해는 필자를 비롯한 4명의 대표단이 2014 히로시마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민의련 참가자 교류회

올해 히로시마 세계대회는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을 위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8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진행되었다. 히로시마 현립체육관에서 열린 개막총회는 26개에 달하는 각국평화단체, 유엔대표단, 각 정부의 참가단 등 17개국 70여명을 비롯하여 일본각지에서 참가한 단체들이 7,000석 규모의 체육관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되었다.

대회에서는 주요 참가자들이 연설을 통해 원수폭금지 운동의 의의를 설명하였고, 원폭투하70년인 내년에 개최되는 NPT재검토회의를 핵무기전면금지를 위한 주요한 전환점으로 삼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원수협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피폭자 단체, 전국노동조합총연합의 대표들과 각국 평화운동단체 대표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가운데 20살에 피폭당하여 현재 89세이신 피폭자 단체 대표자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피폭자들은 수많은 참상을 겪은데다가 가까스로 생존해도 피폭으로 인해 발생되는 치명적인 각종 질환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 불안감 속에서도 평생을 반핵평화운동을 위해 헌신한 사람의 냉정하지만 피끓는 절규에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절대 잊지말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 평화를 위해, 생명의 소중함을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자’ 원폭의 참화 속에 살아남아 평화운동에 헌신하며 90을 바라보는 한사람의 인생을 건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 피폭자 간담회 후

일본민간단체가 주관한 대규모 행사들이 그러한지 아니면 국민들의 참여와 역할을 중요시하는 진보적 단체들이 주관한 행사여서 인지 외국인인 내게 인상적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각지에서 대회에 참가한 지역단체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각 지역단체들이 본 세계대회를 앞두고 어떻게 활동해 왔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히로시마에 왔는지를 무대 위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지역단체의 간부와 일반회원, 그리고 가족들까지 전부 무대에 올라 반핵평화운동을 위해 우리는 어떠한 활동을 해왔고, 이 대회 참가가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발표하고 청중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해준다.

어찌보면 90년대 초반 필자가 대학 다닐 시절 개최되곤 했던 총학생회주최의 전국행사를 보는듯했다. 특이한 것은 이 지역단체들의 활동보고에는 짐작컨대 강렬한 지역색이 드러나는 듯 했는데 특히 오사카의 참가자들은 원색의 복장을 하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입장하여 만담에 가까운 보고를 하여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우리를 안내한 민의련 오사카지부의 선생들이 끊임없이 오사카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것을 볼 때 그들만이 공유하는 지역정서를 잘 표현한 보고인 것은 분명한 듯 했다.

▲ 개막식에서 오사카 지역 참가자들이 보고를 하고 있다.

유엔대표와 각국 대사들의 발언과 동시에 소규모 지역단체 참가자들을 몇십명, 몇백명씩 무대에 올려 활동보고를 하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사회운동보다 훨씬 노후한 것으로 평가해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 각지의 풀뿌리 사회단체들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리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참가단들이 인상 깊게 행사를 지켜보았다.

개막총회와 함께 세계대회에서는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들이 활발하게 개최되는데 우리는 일정의 중간에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찾았다.

▲ 원폭 돔 앞에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히로시마 원폭의 배경과 그 참상, 그리고 현재 전세계 핵무기의 실상을 담고 있다. 일본의 원폭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필자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의 심정일 것이다.

특히 평화기념관의 원폭을 둘러싼 국제정세, 정치적의미에 대한 설명은 보수적인 일본정부와 일본 내 평화세력의 시각이 절충된 듯 한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원폭투하의 배경으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전쟁책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외면하고, 미국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심한 수탈을 당했던 국가의 관람객에게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가져온 히로시마 시민들의 참상은 반핵평화운동이 지향해야 하는 점을 명확히 일러준다. 특히나 전쟁의 직간접책임자들이 여전히 정권을 이어갔던 일본이나 민간인 대략살상위험을 명확히 인지하고도 원폭을 감행하고, 이후에도 세계각지에서 거의 매년 쉬지 않고 전쟁을 지속하여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있는 미국을 생각하면 반핵평화운동은 일국적 차원의 일이 아니라 세계 민중들의 적극적인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세계대회기간에는 초청자인 민의련 인사들과 한국의 보건의료단체가 공동 세미나를 통해 보건의료를 중심으로 한 양국의 사회문제들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활발한 토론도 진행한다. 올해는 의료민영화를 주제로 했다.

‘박근혜정부의 의료민영화 현황과 전망’에 대하여 필자가 발표를 하였고, 일본에서는 아베정권의 사회복지정책을 중심으로 하여 최근 일본보건의료계의 문제를 민의련의 중앙사무국에서 발표하고 토론하였다.

박근혜정부가 추진 중인 투자배당이 가능한 병원의 영리자회사도입과 관련하여 일본측에서도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 최근 아베정권이 강조하는 사회복지정책에 있어서의 이른바 ‘자기책임론’에 대해서는 민의련 참가자들의 성토가 이어져 일본 진보진영의 아베정권에 대한 반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 아베정권이 추진 중인 해석개헌(개헌이 아니라 헌법은 그대로 두고 그 해석을 달리하는 것)을 통한 전쟁가능국가 실현문제에 대해서는 아베총리를 히틀러와 합성한 모습을 발표 자료에 싣기도 하여 강한 반대와 투쟁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실제로 대회기간 히로시마 곳곳에서는 아베총리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를 위한 추념식’에 참여한 아베총리의 연설 중에도 반대구호가 추념식장까지 들려왔다.

아베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세력은 평화헌법을 일본의 족쇄로 생각하는 반면, 일본의 평화세력과 양심적 지식인들은 평화헌법이야말로 일본국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쟁취해낸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대회 중간에는 전국의 민의련 회원들과의 교류회가 열렸다. 만찬과 공연이 함께하는 자리였지만 원전사고를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국가에 의한 국민 살인으로 규정하는 후쿠시마 대표단, 미군기지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오키나와 대표단의 보고시에는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였다.

▲ 민의련 참가자 교류회

그런데 이 두지역의 보고 이후에는 사회자의 요청으로 우리 참가단이 함께 무대에 올라 어깨동무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하며 기념 사진을 남겼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 시키는 미군기지문제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의 문제를 한국과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 덕분에 오키나와와 더불어 후쿠시마의 참가자들과도 깊은 동변상련의 연대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히로시마 세계대회는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의 반전반핵 서명용지를 앙헬 유엔군축대표에게 전달하며 막을 내렸다.

짧은 기간이지만 대회참가를 통해 필자는 몇 가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선, 히로시마에 흐르는 독특한 분위기다. 이는 전쟁의 참상이 집중된 도시가 갖는 당연한 특색을 넘어서는 것이다. 짧은 기간 방문한 외부인의 주관적이고 편향된 시각일지 모르나 전쟁과 원폭의 참상을 반전평화운동의 동력으로 삼는 히로시마만의 분위기 말이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원폭의 참상을 고발한 박물관과 추모관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 곳곳에는 원폭투하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있다. 유명한 원폭돔 주변에서는 8월 6일을 즈음해 히로시마 초등학생들이 제작한 각양각색의 반전평화메시지가 담긴 촛불이 밝혀지고 강가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등을 띄운다.

▲ 히로시마 유등 행사

이 촛불과 등의 제작을 위해 히로시마의 초등학생부터 일반시민들은 몇 달 전부터 부산스럽다. 피폭자들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피폭관련 법률과 지원책들을 해설해주며 지원한다. 피폭자단체들은 여전히 히로시마의 가장 강력한 조직이며, 히로시마를 방문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생생히 들려주는 건강한 피폭 활동가들이 있다. 피폭자들의 경험을 동영상으로 담아내고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인터넷에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 동아리도 있다.

끊임없이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흔적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전쟁이 아닌 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희생을 반전평화운동의 동력으로 전환하여 매년 전 세계에 평화와 탈핵을 위한 보다 강력한 조치들을 촉구하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노력은 원폭투하의 참상을 자신들의 전쟁책임을 무마하는 것에 교묘히 활용하는 보수정권의 행태와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방문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 하나는 우리를 초청한 민의련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다. 우리들에게도 이제 수 십년동안 활동하는 단체라고 말할만한 여러 보건의료단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보건의료운동단체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해왔고 성과를 남겼다.

때로 일본의 민의련 활동가들이 한국보건의료단체들의 활동상황과 젊은 회원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단체들이 민의련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여기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건의료단체들과 민의련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같은 이름의 단체가 한국에도 있었기에 무심코 넘겼으나 일본의 민의련은 의료기관의 연합회이다. 개인이 가입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의료기관들의 단체인 것이다.

이들 의료기관들은 개인병원이 아닌 비영리 법인이거나 협동조합의 형태이며 민의련의 의료인들은 각각의 의료기관에 속해 활동한다. 자신이 속한 병원을 성장시키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민의련회원들의 주요한 활동이 되는 것이다.

이는 민의련을 의료인들만의 단체가 아닌 의료기관의 모든 구성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로 만들고 있으며 수많은 활동의 강력한 기반이 된다. 조직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 그리고 회원들의 삶과 함께하는 활동을 고민하는 한국의 보건의료단체들이 진지한 고민을 해볼 만한 지점이라 여겨진다.

여름휴가를 대신한 원수폭금지 히로시마 세계대회 참가. 휴가지의 편안함과 부산스러움을 넘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초청해준, 그리고 일정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일본의 민의련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철신 (구강보건정책연구회, 인치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